5 그랬더니 악마는 예수를 높은 데로 이끌고 가서,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6 그리고 나서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 7 그러므로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7절) 육체적 필요와 욕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예수님은 세상의 참 주인이 되실 것이다. 하지만 마귀처럼 지위와 권력에 무섭게 집착하지 않고, 겸손한 섬김으로 그 자리까지 오르실 것이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악마는 예수님께 세계 모든 나라를 보여주며 세상의 주권자가 되라고 유혹합니다(5-6절).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악마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이었습니다(7절).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에게 절했던 것처럼, 자신을 숭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라는 말씀으로 악마의 시험을 단호히 물리치십니다(8절).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은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려면 꼭 따라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신을 계속해서 섬겼고 결국 그 땅에서 흩어지고 맙니다. 예수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권력에 집착하는 대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십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가 따라야 할 명령이기도 합니다. 오늘 나는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겨야 할까요? 세상이 주는 유혹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으로 맞서는 하루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사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첫째, 사람을 이끌고 가서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예수님을 시험한 악마는 아마도 가장 교묘하고 가장 파워풀한 악마였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광야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물리적으로 이끌고 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예언자들을 이끌고 가는 성령님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볼 때, 사단은 물리적이 아닌 영적인 측면에서 이끌고 갔을 것이다.
에스겔을 이끌고 가셔서 여러 환상을 보게 하신 하나님,
요한을 이끌고 가셔서 천국의 환상을 보게 하신 하나님,
이런 것들을 고려할 때, 사단도 비슷한 환상을 보게 만든 것 같다.
예수님의 시야를 순식간에 바꿔서 온 세상을 보여준다.
둘째, 거짓말과 허세다.
사단은 거짓말과 허세가 정말 쩐다.
모든 권세와 영광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짓이다.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고 확언한다.
거짓이다.
모든 권세와 영광은 사단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다.
오랜 세월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연 만물과 인간 역사의 모든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나님도 자신이 영광과 권세가 왜곡되고 훼손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다.
그러니 사단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고 했지만,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실제로는 주는 것이 아니고 주는 척 하는 것이다.
악마는 사람을 자신의 거짓으로 통제하고 다스리려고 하는 것이지 실제로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의 말은 거짓과 허세 작렬이다.
사단은 밤에 꾸는 꿈을 통해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영적 존재다.
마음 속에 달콤한 속삭임을 계속 넣어 줄 수 있는 영적 존재다.
죽음의 음침한 분위기와 목소리를 반복적으로 심을 수 있는 존재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계속 속인다.
거짓으로 속여서 사람들을 얽어맨다.
한번 그에게 속기 시작하면, 왠만해서는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사람의 세계관을 장악하면 그 메트릭스에서 길을 잃고 만다.
두려움이 작동하는 종교적 세계관에 빠지면, 두려움을 주는 존재에 대한 감각이 너무 예민해지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사단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다.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 그에게조차 사단은 시험을 걸어온다.
마치 이 세상이 다 자기 것인양, 거짓말로 예수님께 다가온다.
예수님이 받아 주시는 것이 이상하다.
그저 악마의 존재를 사멸시킬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성경의 말씀으로 사단의 거짓과 유혹을 궤멸시키신다.
경배를 받을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예수님은 마치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려고 사단의 유혹을 허용하신다.
사전 차단도 가능하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셨다면, 우리 성도들도 시험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영적 현실이다.
세상의 영광과 권력을 얻기 위해 아무에게나 넙죽 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오늘 하루도 마음 속에 올라오는 숱한 음성들 가운데 사단의 음성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고 싶다.
1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시장하셨다.
3 악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4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주석
시험을 받으시다(2절) 이 이야기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 그분의 명령에 대해 그럴듯한 거짓말을 속삭이는 뱀의 모습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잔상이 남아 있다. 광야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의 잔상도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불평했고, 우상 숭배로 재앙을 자초했으며, 하나님을 끊임없이 시험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성령이 예수님을 이끄신 곳은 ‘광야’였습니다(1절). 그곳에서 예수님은 심한 굶주림과 유혹에 맞닥뜨리십니다(2절). 오래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굶어죽겠다고 불평했고, 애굽으로 돌아가 종살이를 하는 것이 났겠다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출 16:3-8). 온 세상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자리에서 친히 시험을 받으십니다(3절).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드시는 대신, 사람이 먹는 것뿐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 8:3)고 선언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실패를 영원한 승리로 바꾸십니다(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제 그 실패를 승리로 바꾸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필요를 위해 돌을 빵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하셨지만, 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시고(눅 9:16), 마지막에는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주셨습니다(눅 22:19). 나는 어떤 빵을 쫓고 있습니까?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 주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서 딱 드는 질문은, '어떻게 성령에 충만한데,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는가'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가?
도대체 사십일 동안 시험을 받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무슨 시험을 받으셨는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십 일 동안 아주 다양한 시험을 받으셨을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시험이 세 가지 시험이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 성전에서 떨어지라는 시험, 사단에게 절을 하라는 시험.
이 세 가지 시험음 최종적인 시험이다.
그 사이에 사십 일이라는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시험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시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했던 숱한 율법이 과연 인간들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은 이기적인 분이신 것 아닌가? 그분은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이런 식의 말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받았던 시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안보이니, 우상을 만들자.
앞날이 깜깜하니 이집트로 돌아가자.
광야에서 죽느니 차라리 이집트에서 고기 먹다가 죽자.
가나안 사람들이 이렇게 덩치가 좋으니, 우린 다 죽은 목숨이다.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런 생각들로 사단이 공격한다.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숱한 시험들, 그 시험을 예수님도 받았을 것이다.
과연 내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곳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생고생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나를 이곳에 보냈는가?
강고한 예루살렘과 로마의 기득권과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이건 예수님 자신의 생각일 수도 있고, 사단이 주는 시험일 수도 있었다.
예수님이 이런 생각을 했을지, 안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단이 이런 의문을 품게 하고, 예수님의 소명을 갉아 먹는다.
세 가지 시험의 범주와 유사한 시험이 40일간 계속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육체의 배고픔으로 대별되는 부에 대한 시험.
명예욕에 대한 시험.
권력욕에 대한 시험.
모든 영적인 존재들이 갖고 있는 욕망에 대한 시험이다.
사단은 사실 이런 욕망들의 극단에 서 있다.
사단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물질욕, 명예욕, 권력욕에 의해 일어난다.
하나님보다 더 많은 풍요로움과 더 많은 명성과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참담하게 무너졌다.
박혁이라는 전도자가 남미를 다니며 축사사역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세련된 동영상이 유툽에 올라온다.
극단적 평가가 뒤따른다.
예수님의 사역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부흥운동의 시발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여느 이단들처럼 큰 귀신의 힘으로 작은 귀신들을 일시적으로 내쫓는 사탄의 사역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내 평가는 “열매로 안다”이다.
그의 사역으로 사람들이 사단과 귀신의 억압으로 사람들이 구출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의 사역이라면,
1) 귀신으로부터 구출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섬기게 될 것이다.
2) 구출된 사람들 삶에 성령님의 열매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3) 전도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될 것이다.
4) 사역자의 사역으로 인해 자신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건강하게 세워지게 될 것이다.
그동안 숱한 이적으로 사람들을 모았다가 그 사역자 개인이 하나님처럼 되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매진하다가, 사단의 시험에 져 버린 경우도 많다.
사역의 처음의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끝까지 사단의 시험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단의 시험이 도사린다.
이것을 분별해 내는 것이 기독교 지도자들의 일이다.
박혁 전도자가 건강한 신학 교육을 받아, 성경과 교회 전통 속에서 건강하게 사역을 하길 바란다.
나는 하나님의 자유를 믿는다.
그분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분이시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신으로 둔갑시키는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다.
사단의 속임수에 속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이 시대에도 당신의 사역자를 통해 신유와 축사를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인기를 얻는 사역자는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올라 갈 수 있음을 알고 항상 겸손하게 사역해야 한다.
아벱이나 송죽이나 언제자 사단의 시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신의 욕망의 수위를 살피고, 그 욕망에 달라붙는 사단의 속임수에 속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욕망의 방향이 오직 예수님이 되게 하라.
그게 사역자가 살 길이다.
[오늘의 기도]
오랜 기간 사단의 시험을 견디신 예수님,
이 시험을 이겨내시는 과정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의 소명을 온전히 정리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