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1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4 시간이 되어서,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시니, 사도들도 그와 함께 앉았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다시는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다.”

17 그리고 잔을 받아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이것을 받아서 함께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

19 예수께서는 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0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 잔을 그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21 그러나 보아라, 나를 넘겨줄 사람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다.

22 인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23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이런 일을 할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자기들끼리 서로 물었다.

 

[ESV]

And when the hour came, he reclined at table, and the apostles with him. And he said to them, “I have earnestly desired to eat this Passover with you before I suffer.”(14-15절)

 

[주석]

14-15절. 명절 때는 친밀한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다. 보통 한두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 하나의 가족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식사 때는 ‘앉았지만’ 유월절과 같은 명절 때는 ‘기대어서’ 먹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유월절 음식 먹기를 진심으로 바라셨다. 

제자들과 함께 말이다. 

“참으로 간절히”라는 말씀이 와 닿는다.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들과 식사 교제를 원하신다. 

함께 먹고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 

시내산 모세 언약 당시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귀한 자들, 장로들과 함께 더불어 먹고 마셨다(출애굽기 24:11).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을 때, 이렇게 식사 교제를 하신다. 

그것도 "참으로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다. 

 

이 마지막 성만찬은 새로운 언약식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새로운 언약을 맺는다. 

이것은 영원한 언약이다. 

예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기로 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약속을 한다. 

자신의 생명으로 인류가 겪고 있는 죄, 고통, 죽음, 사탄으로부터 해방시켜주셨다. 

따라서 이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구원자와 구세주로 섬긴다. 

구원자로만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식사를 즐기기가 어렵다. 

구원은 한 번으로 끝난다. 

그러나 구세주, 즉 주님은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사귐에서 식사는 필수다. 

예수님은 사람들은 구원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언약을 통해 당신과의 식사 자리로 부르신다. 

영원한 관계를 위해 계속적으로 식사 자리로 부르신다. 

 

성만찬은 기본적으로 기억의 공간이다. 

빵은 예수님의 몸이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다.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예수님의 삶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한다. 

주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바로 성령님의 제 1 사역이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영원히 기억해야 할 규례, 율법을 말한다. 

자손대대로 그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이제 예수님은 성만찬을 통해 자신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새로운 언약의 내용을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약속을 기억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동일하다. 

구약은 모세가 받아온 율법을 기억하라고 한다. 

신약은 몸소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법조문보다 인격을 기억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예수님을 기억한다. 

오늘도 예수님을 기억한다.

 

[오늘의 기도]

새로운 언약을 만드시고 초대하시는 예수님, 

오늘도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뜻, 말씀, 행동, 비전을 떠올립니다. 

모든 인류가 주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주님, 

주님의 뜻을 기억하며

증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성령님께서 더욱 열정적으로 알려주셔서 예수님을 더 잘 떠올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3월 10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7 돌판에다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그 광채 때문에, 비록 곧 사라질 것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에도 이러한 영광이 따랐는데,

8 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9 유죄를 선고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으면, 의를 베푸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10 참으로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영광으로 빛나던 것이, 이제 훨씬 더 빛나는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1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것도 생길 때에 영광을 입었으니, 길이 남을 것은 더욱 영광 속에 있을 것입니다.

 

주석

7-8절 바울은 옛 언약에 영광이 동반된 것을 인정하지만 새 언약에는 더욱 큰 영광이 동반된다고 주장한다(IVP 성경주석).

 

돌판에 새긴 옛 언약은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새 언약은 사람을 살립니다(6-8절). 옛 언약은 유죄를 선고하지만, 새 언약은 의를 베풉니다(9절). 새 언약의 영광이 훨씬 더 빛나기 때문에, 옛 언약은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10절). 옛 언약은 사라질 것이지만, 새 언약은 빛나는 영광 속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11절).

 

옛 언약을 강조한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정죄했습니다. 하나님과 만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새 언약은 의를 베풀며 성령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과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옛 언약은 무엇인가요? 다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오늘의 묵상]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다가 갑자기 신학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추천장 사건이 신학적 사고로 이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문서로 작성된 추천장이 아니라, 바울이 전도하고 가르친 사람들 마음 속에 새겨진 새로운 언약이 바울의 추천장이었다. 

그러기에 그 추천장에 대한 설명을 더욱 신학적으로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영이 대조를 이룬다. 

돌판에 새긴 율법의 역할은 대체로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기록해 두었고, 그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어겼을 때 어떤 처벌을 받는지가 주를 이룬다. 

물론 제사 제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와 언약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율법의 메인은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고, 십계명에서 파생된 여러 규정들이며, 이는 해야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한다.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을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처벌하고 구제한다. 

율법에 은혜가 없는가? 

아니다. 율법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담겨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사랑과 은혜를 강조하기보다 법률로 해석하고 처벌의 기준으로 삼으며, 때로는 이 법률로 사람을 처형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은 사람을 돌로 쳐죽이는 길거리 집단 사형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 성령의 법은 다르다. 

사람을 죽이는대신 살리는 일에 집중한다. 

회복시키고, 원형을 보존하고, 다시 시작할 힘과 용기를 공급하신다. 

죄인의 죄인됨을 율법의 규정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 양심의 법으로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돕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도록 돕는다. 

따라서 영은 생명이며, 그 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의 직분을 갖고 사는 것이다. 

율법도 영광 속에서 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다. 

그러나 성령의 법은 더욱 큰 영광으로부터 왔으며, 더욱 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전 우주적 영광을 통해 성령님이 폭발적으로 운행하시게 되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영광을 사람들 마음 속에 그야말로 각인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아차리고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게 하신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직접 성령님을 통해 일하신다. 

육체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이제는 영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오셨다. 

영원한 진리이며, 이로써 모든 영광보다 뛰어난 영광이 되셨다. 

 

사람들은 이제 성령님을 통해 새 언약으로 들어간다. 

새 언약은 마음 속에 새겨지고, 언제든지 확인이 가능하다. 

성령님의 마음 속 역사를 감지하게 된다. 

사람들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그 사람들을 통해 세상의 역사를 이끄신다. 

따라서 세상에 개입하시는 성령님을 감지하는 능력도 조금씩 길러진다. 

악한 영의 개입도 많기 때문에 분별하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씩 알아간다. 

하나님 나라를 추동하시는 성령님의 개입을 알아차린다. 

새 언약 백성들은 그렇게 성령님의 일하심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거짓을 폭로하시는 성령님을 본다. 

JMS를 비롯해서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거짓을 세상에 알린다. 

이만희, 정명석같은 자들의 거짓을 폭로하신다. 

병을 고친다고 하고 미래를 알아 맞춘다고 해서 모두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무당이 하는 일이다. 

성령님의 역사는 그 열매로 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여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섬기셨다.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려 놓으셨다. 

신도를 강간하고 가스라이팅하고 죽인다고 협박하는 교주가 어떻게 예수님이요 메시아라고 할 수 있는가? 

왜 성경을 비유로 풀려고 하는가? 

성경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서사가 있으니, 모든 것을 비유로 풀려는 시도는 사이비의 전유물이다. 

 

성령님은 거짓을 폭로하고 진리를 보존하신다. 

역사를 왜곡하려는 자들은 성령님과 거리가 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함부로 왜곡한다. 

진리를 추구하기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다. 

진실을 기반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중심으로 결정한다. 

거짓 속에 탐욕이 있고, 그 탐욕을 이용해 사단이 활동한다. 

성령님은 진실을 좋아하시고,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신다. 

감추지 않으시고 빛으로 드러내셔서 만천하가 알게 하신다. 

사람의 약함도 진실이고 사람들의 악함도 진실이다. 

약함과 악함을 드러내고 인간이 그 자체로 신이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신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예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함을 다시 알려주신다. 

 

영광스러운 영의 직분을 맡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영광이 더욱 영화롭게 드러나길 고대한다. 

사이비, 조폭, 권력에 의한 폭력, 학폭 등등 

숨겨지고 조작되고 그래서 피해자는 더욱 고통스럽고, 가해자는 도리어 땅땅거리며 살아가는 거짓의 세상에 영화로운 성령님의 빛이 임하길 기도하고 고대한다. 

거짓은 물러가고 모든 것은 밝은 빛 앞에 드러나라. 

 

 

[오늘의 기도]

영광의 하나님, 

새로운 언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생명의 법이 작동하도록 도와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성령님이 역사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령님을 더 빠르고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더 분명히 드러나길 기도합니다. 

 

사이비 교주의 거짓말에 속아 고통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세요. 

전쟁도 극악하지만, 사이비들의 거짓과 가스라이팅도 그에 못지 않게 극악하고 더럽습니다.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젊은이들을 보호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3월 09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치켜올리는 말을 늘어 놓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가, 여러분에게 보일 추천장이나 여러분이 주는 추천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2 여러분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읽습니다.

3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입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말을 합니다.

5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서 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나님에게서 납니다.

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은 사람을 살립니다.

 

주석

추천장(1절) 추천장은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보다 더 많은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IVP 성경배경주석).

 

2절 바울은 고린도에 갔을 때 추천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대해 대답하고 있다. 그 비난은 아마도 거짓 사도들에게서 나왔을 것이며 바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IVP 성경주석).

고린도 교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으로 쓰신 편지입니다(3절). 이 편지는 바울을 천거하는 추천장이며(2절), 사람을 살리는 새 언약이기도 합니다(6절).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자격으로 이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했습니다(3-6절).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고린도 교인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3절).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당시 거짓 사도들은 돌판에 새겨진 옛 언약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옛 언약은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영(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성령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도우십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도 새 언약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아침부터 마음이 참 분주하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말씀을 다시 바라본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의 마음이 이런 걸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 일부는 바울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혹은 다른 권위자로부터 추천장을 받아서 방문하기를 바랬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교회에서 설교하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다른 권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바울의 권위를 쉽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마 형식적으로는 그게 좋았을 수도 있다. 

 

바울의 항변은 다음과 같다. 

추천장도 좋지만, 사실은 고린도교회 설립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 바울의 선교였다. 

바울의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 덕분에 복음을 받아들였고,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의 처음을 아는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에 있다. 

그들이 바울의 추천장이다. 

바울의 일거수일투족을 봐왔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기억 속에, 마음 속에 바울의 행동과 설교와 가르침이 남아 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구약의 메시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들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여러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바로 그들이 바울의 추천장이다. 

 

이런 사람들의 변화는 모세의 율법으로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돌판에 씌여진 것은 모세의 율법이요,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삶의 기준,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이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알고 삶과 정치에 적용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는 새로운 한 길이 놓여졌는데, 그것은 성령님께서 마음 속에서 하시는 역사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판에 새겨진 것으로서,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다. 

돌판보다 더 생생해서 한 사람의 인생에 강력하게 역사한다. 

외부에 있는 돌판의 자구가 아니라, 한 개인의 마음과 영혼에 깊이 각인되어 언제라도 밝게 빛나는 등불이 된다. 

마음 속 등불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매일 매일 생명의 삶을 살아간다. 

바울은 이 차이를 알았다. 

구약에 정통한 바울, 모세 율법에 정통한 바울은 이 차이를 깊이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언약의 백성이 탄생한다. 

혈통으로 묶인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성령님의 각인으로 서로 묶인 영적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 

이제 새로운 언약의 백성은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바울의 추천장이다. 

행정 서식과 절차에 의해 추천되는 강사가 아니라 삶의 실제적인 모델이 있는 추천장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용기를 내어 다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 

이 아름다운 비유의 당사자가 바로 고린도 교회의 성도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고 이 비유는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된다. 적용되어야 한다. 

요사이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난한다. 

교회를 비판하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을 비판한다. 

그 비판이 일리가 있다. 

그리스도의 향기여야 하고 편지여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악취가 나고 저주문이 읊어진다. 

사랑으로 약자를 품지 못하고, 자신들의 옳음을 주장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사람을 살리는 영, 성령님의 역사를 교회 이기주의로 가둬둔다. 

사랑의 실천이 점점 약해진다. 

아쉬움이 크다. 

나부터도 그렇다. 

사랑의 넓이가 커지지 않는다.

안따깝고 부끄럽다. 

 

다시 한번 그분의 은혜를 구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인 저와 우리 기독인들이 주님을 부끄럽게 만들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좋은 향기, 좋은 편지가 되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더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만들고 싶은데, 

자꾸 비판과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을 하는 기독인들을 보게 됩니다. 

 

성령님, 

마음 속에 강력하게 임하셔서 주님의 말씀을 새겨주세요. 

잊지 않게 하시고, 때로 떠오르게 하시고, 무엇보다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더욱 사랑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오늘 하루 주님의 편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도움 없이는 참 삶이 뻑뻑합니다. 

마음과 몸에 힘을 공급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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