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8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9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20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21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22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4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26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9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31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한 대로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3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5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 본문도 그렇지만, 교회 분열에 대한 바울의 해법은 분명하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수많은 지혜가 있고, 아름다운 말들이 있으며, 매혹적인 디자인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일을 찾는다. 

그런 추구의 결과는 피할 수 없는 분열이다. 

서로 공통점이 없는 가운데 자신들의 열망을 분출하면 서로 분열될 수 밖에 없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다. 

십자가 중심성을 잃어버리고, 닻을 그곳에 내리지 않고,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지에 집중했다. 

누가 더 설교를 잘 하는지, 누가 더 성경을 잘 풀어내는지, 누가 더 탁월한지, 누가 더 리더십이 있는지를 서로 비교하며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자신에게 세례를 준 사람의 장점과 강점을 강조한다.  

십자가라는 자기 부인의 용광로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깊이 느낄 때 흐르는 뜨거운 용암과도 같은 눈물의 세례를 거부하거나 잊어버렸다. 

그러니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세상의 지혜로는 이 십자가의 지혜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멋진 수사로 꾸며진 연설이 아니라 투박하고 괴팍한 듯 보이지만 하나님의 십자가에서의 처형이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지혜가 진정한 지혜이며 강력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지금 분열, 분쟁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 대부분이 세상의 지혜하고도 원래 멀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사람을 자랑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능력을 자랑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성취한 성과를 자랑할 일이 아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한다. 

십자가의 복음이 여전히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십자가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주목해야 한다. 

 

31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한 대로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이 말하는 바, 바울은 끝까지 주님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싶어한다. 

물론 다른 서신에서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한 것(빌립보서 3:17)을 떠올려보면 그의 말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빌립보서에서도 바울은 바울 자신의 능력이나 탁월함을 본받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빌립보서의 핵심 주제인 "자기 부인"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가려는 자신을 본 받으라는 것이다. 

즉 겸손하게 주님을 따라 살려는 자신을 본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도 비판/비난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끝까지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내세우면 될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일면 동의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한 완벽주의자의 비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님이며 그분의 십자가이다. 

이걸 잊고 다른 몇가지 특징과 장점을 내세우려고 한다면 본질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순간적인 유행을 따를 수는 있다. 

사람들을 끌수 있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공동체가 가진 장점과 능력이 아니라, 

예수, 십자가, 성령. 이런 요소가 본질로 다가가야 한다. 

그게 복음이다. 

 

복음이 더 잘 전달되기 위한 노력이야 끊어지지 말아야 하겠다. 

동시에 그 복음의 본질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잘 지켜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감당하는 것이 현장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사역자들의 몫이다. 

 

묵상하다보니 오늘도 조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너무 어려운 일들을 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 십자가의 본질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복음의 표현의 양식과 스타일과 플랫폼은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선도해야겠지만, 

복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음을 중고생과 대학생에게 전하기 위해 그 외형에 변형을 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여전히 팔팔하게 살아서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왜냐하면 그 두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질과 형식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성령님 지혜를 주세요. 

성령님께서 역사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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