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 사람은 이와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2 이런 경우에 관리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실성입니다.

3 내가 여러분에게서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을 환히 나타내시며, 마음 속의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MESSAGE

“여러분은 우리 지도자들을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지, 그분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엄한 비밀들로 여러분을 인도하는 안내인이지, 그 비밀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경비원이 아닙니다. 좋은 안내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믿음직스러움과 정확한 지식입니다.”(1-2절)


바울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거부한다. 

교회의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의 역할은 공동체를 잘 돌보고 관리하는 일이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역할을 대체해서는 안된다. 

그저 신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복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공동체가 그 복음을 잘 간직하도록 돕는 일. 그 일이면 족하다.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를 만들지 말라. 

그렇게 판단하지 마라. 그런 식으로 심판하지 마라. 

분파를 만든다는 말은 자신의 분파의 수장을 높이고, 상대방 수장을 비판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런 식의 심판/판단은 인간들의 성향과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을 환히 나타내시며, 마음 속의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분파를 나눠 교회를 분열시키면서, 서로서로 판단하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심판하는 일을 그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뿌리를 오직 예수님에게만 두되, 라인을 형성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일을 그쳐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신앙 형성에 도움을 준 사람을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신앙인들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사상의 급진성, 생각의 급진성은 언제나 반갑고 신선하다. 

생각할 재료를 공급해주고, 생각의 바운더리를 확장시켜준다. 

그러나 비판과 비난의 급진성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싶다. 

아쉽고 서운할 수 있다.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치판에서 그렇게 하듯 비난과 욕설과 비아냥으로 공격하는 것이 쉽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복음을 위해 함께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더욱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칭찬하거나 긍정하자는 말은 아니다. 

분별하고 판단해야 하는 순간 순간이 있다. 

급진적인 비판과 비난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나를 찾으려면 내가 아닌 것을 판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금만 부주의해도 분별이 비난으로 흐른다. 

내가 아닌 것을 부정하다 보면 타자는 부정의 대상이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정신은 타자에 대한 존중이어야 하는데, 이건 인간 본성에 반한다. 

모더니즘 시대에는 자기 공동체 밖에는 진리가 없다고 주장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자기 외에는 진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1인 미디어가 이런 흐름을 더욱 강화한다. 

비난하면서 자신을 찾는다. 

과연 이런 방식의 “자기 찾기”가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너무 다양하며, 기독교 신앙의 표현도 어쩔 수 없이 다양하다. 

비난과 심판에 앞서 겸손히 말씀 앞에 십자가 앞에 서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심판이라는 단어의 쓰임을 더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이 심판이라는 단어를 어떤 늬앙스로 썼는지 전후 문맥과 당시의 이 헬라어의 쓰임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문맥만 놓고 보면, 바울은 자신을 심판하고 있는 고린도교회의 일부 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행동을 멈춰달라는 의미로 읽힌다. 

이것이 맞는지 아닌지 좀더 본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도 기록된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히 알고 싶다.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하나님, 

사랑으로 연합해계시는 삼위 하나님, 

주님의 사랑이 공동체에 흐르게 해 주세요. 

비판과 비난보다 사랑의 말과 격려의 말이 앞서게 해주세요. 

물론 분별하고 분석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여정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사용되는 정치적 공격, 비난, 비판, 욕설, 비아냥 등은 점점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기도의 시간이 확보되게 해주세요. 

좀더 깊이 있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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