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15일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54 예수께서 무리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55 또 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 “어찌하여 너희는 옳은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58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관원에게로 가게 되거든, 너는 도중에 그에게서 풀려나도록 힘써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로 끌고 갈 것이고, 재판관은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형무소 관리는 너를 옥에 처넣을 것이다.5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절대로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The Message

Frauds! You know how to tell a change in the weather, so don’t tell me you can’t tell a change in the season, the God-season we’re in right now(56절).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계속해서 마지막 때의 일들을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서 새로운 세상이 등장했고, 그것은 마지막 때의 시작이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가 마지막 때이다. 

마지막 때는 평안과 불안이 공존한다. 

소망과 절망이 공존한다. 

예수님은 계시지만 또한 계시지 않는다. 

오셨지만 다시 가셨다. 

예수님 스스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내가 세상을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눅 12:51)고도 말씀하신다. 

마지막 때는 역설이 가득한 때이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 마지막 때를 분간해야 한다.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눅 12:40).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 재림의 징조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라고 사칭하는 이단들이 득세한다(마24:5-14) 

전쟁, 기근, 지진, 박해, 거짓예언자, 불법. 

“불법이 성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마24:12). 

1, 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신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재림하시지 않으셨다. 

날짜를 특정하는 것은 이단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지금 2023년에 오신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전쟁, 기근, 지진, 박해, 거짓 예언자, 불법이 성행한다. 

전쟁의 기운이 전 세계를 감싸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해 기근이 심각하다. 

자칭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불법이 넘치니 공동체 신뢰가 깨지고, 사랑이 식는다. 

당장 오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나님 나라가 2천년 전에 강력하게 임했고, 이제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때를 분별하고 죄악을 멀리하고 깨어서 준비해야 한다. 

이게 옳은 일이다. 

고소하는 자와 빨리 합의를 해야 심한 처벌을 면할 수 있다(눅12:58). 

옳은 일을 스스로 판단하여 실행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왔으니, 그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이며, 그걸 분별하고 분간할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이 판단은 때로 가족 간의 긴장을 낳는다. 

서로 자신만의 아젠다가 있다. 

그 아젠다는 대체로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을까로 귀결된다. 

그 관점에서 일치하기에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그들만의 성을 쌓아 간다. 

그러나 예수님의 아젠다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실 세계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다가올 하나님 나라 완성의 시대에서의 생존과 성공이다.

그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현실의 때를 분별하고, 깨어서 준비해야 한다. 

시대적 종말(마지막 때)도 준비해야 하지만, 개인적 종말(마지막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 

개인에게 죽음은 시대적 종말의 시작이다. 

가족 간의 긴장이 생기더라도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여기서 옳은 일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깨어서 준비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난 여전히 꿈을 꾼다. 

하나님 나라가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는 꿈. 

하나님의 통치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꿈. 

하나님의 통치 결과인 성령님의 열매가 곳곳에서 맺히는 꿈.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진실, 온유, 절제(갈 5:22). 

모든 사람이 주님께 순종함으로 서로를 사랑으로 대하는 곳. 

이걸 위해 깨어서 준비하고 노력한다. 

위선이 아니라 진실한 변화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꾼다. 

 

일제의 압제로부터 구출시켜주셨다. 

사람들은 자유를 누렸다. 

자유가 없이 진실한 사랑이 불가능하다. 

자유가 없이 기쁨과 화평이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 나라에게 자유와 기쁨을 주셨다. 

광복절 아침,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진정한 해방, 진정한 광복은 당신이 이 세상이 다시 오시는 겁니다. 

전세계는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습니다. 

오셔서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소서.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도록 역사하소서. 

때를 분별하게 하소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면서 옳은 일에 집중하기 원합니다. 

옳은 일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통치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성령님의 열매가 개인과 공동체에 더 확고히 드러나는 일입니다. 

예수님, 우리를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2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22 갖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 하십시오.

 

 

바울은 일상의 자리에서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할 것을 권면합니다(16-18절). 그리고 성령과 예언을 굳게 붙들며, 분별력을 가지고 선을 행할 것을 이야기합니다(19-22절).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분의 주되심을 인정하게 될 때, 결국 기쁨과 감사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구절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암송했었다. 

그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참 지키기 어려운 권면이며, 명령이라는 사실이다. 

항상 기뻐하는 것도,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도,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도리어 항상 기뻐하는 것,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주 비판하고 자주 문제 제기하는 것이 기독 지성인의 일이며, 책무며, 삶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 생각에 100%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반기를 들고 싶다. 

기독 지성인의 책무는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지, 어떻게 쉬지말고 기도할 수 있을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야 한다. 

비판하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가? 

문제제기 하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가? 

이것이 가장 어려운 고도의 지적, 심적 작업 아닌가!! 

 

기쁨이 사라진 문제제기, 감사가 빠진 비판이 얼마나 오래갈까. 

그것은 관계를 망가뜨리고, 스스로도 망가뜨린다. 

마음 속에 기쁨을 유지하고, 감사의 마음을 강화하고, 하나님께 기도의 제목을 언제나 올린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감지하고,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랑과 정의가 더욱 확산되는 방향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욕하거나 무시하거나 힐난하지 않고 이슈와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협력할 바를 찾고, 거부할 것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좀 더 나은 건설적인 대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 비판적 생각을 연습하기 위한 비판, 인격을 모독하는 비판은 삼간다. 

비판적 생각을 연습하기 위해 자기 생각을 공개하지 않을 글로 정리해서 논리성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화를 내고, 남을 깎아 내리고, 비판의 생각의 꼬리를 끊어내지 않고, 인격을 모독하는 등의 관계 파괴형 비판은 금물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면서, 문제제기가 삶의 디폴트 값이 되어 버렸다. 

문제 제기 하는 사람이 결국 영향력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한다. 

문제 발견형 감각과 논리 구조가 몸에 박혀 있다. 

기계처럼 반응한다. 

기쁨, 감사, 기도가 작용하지 못한다. 

사역자들 가운데도 많은 경우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설교를 하는 것, 글을 쓰는 것이 문제 찾기 일환이다. 

 

그러니 “비판/문제제기”와 “기쁨, 감사, 기도” 사이의 모순 관계가 놓이게 되며, 둘 다를 지혜롭게 잘 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바울은 이 난제에 해답을 성령님으로 보는 것 같다. 

성령과 예언을 대뜸 들이댄다. 

성령님이 없이는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성령님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이끌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래야 기도가 끊어지지 않는다.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의 기쁨을 유지하라. 

피곤함이 주관하지 않도록, 기쁨과 감사가 내면에 흐르도록, 성령님께 기쁨 호수의 댐 수문을 주장하시도록 맡겨야 한다. 

성령님이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들을 계속 묵상해야 한다. 

지식만이 아니라 더 크게 풍성한 감정의 물꼬를 열어두어야 한다. 

 

예언 관련해서는 분별이 핵심이다. 

과연 이 예언, 즉 대언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사탄의 속임수인지, 아님 나의 욕망과 내면의 소리인지 구분해야 한다. 

그 구분이 핵심이다. 

그걸 구분할 수 있으면 성령님의 역사를 더욱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더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다 .

그러면 기쁨과 감사가 찾아온다. 

더불어 기도가 끊어지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즐거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어떤 즐거움보다도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 기쁨이 찾아오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저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예수님, 

도우시고 이끄시고 실마리를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 

오늘도 기쁨과 감사가 사그라드는 이 세상에서 오직 주님으로 인해 기쁨과 감사가 다시 살아나게 하소서.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이미지에 주목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이 더욱 자주 생각나게 하소서.

예언의 말씀을 분별, 분간, 구분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인식, 알아차림, 이해하게 하소서. 

그것이 마음의 내적 기쁨을 낳고, 감사를 흐를게 하고, 기도의 끊을 더욱 붙잡게 합니다. 

부담스런 모든 시간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3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7 나는 여러분을 높이기 위하여 나 자신을 낮추었고, 또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죄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8 나는 여러분을 섬기기 위하여 삯은 다른 여러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에서 빼앗아 낸 셈입니다.

9 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빈곤하였지만,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누를 끼친 일은 없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10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실을 걸고 말합니다마는, 아가야 지방에서는 아무도 나의 이런 자랑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11 내가 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12 나는 지금 하고 있는 대로 앞으로도 하겠습니다. 그것은, 자기네가 자랑하는 일에서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인정을 받을 기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기회를 잘라 없애기 위함입니다.

13 이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입니다.

 

14 그러나 놀랄 것은 없습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15 그렇다면,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조금도 놀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이 행한 대로 될 것입니다.

 

주석

8절 바울은 재정적인 유익 때문에 가르치던 궤변론자로 보이지 않으려고, 또는 고린도인에게 의존해서 사는 후견 대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사례 받는 것을 피해 왔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9절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그들의 도움은 거절하면서 마케도니아에서 도움받았던 일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던 것 같다. 거짓 사도들은 그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탐욕스럽게 거둬들였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자신을 낮추고 값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7-9절). 재정적 유익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 접근하는 거짓 사도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사례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12절). 바울은 자신의 이런 행동이 오해받는 것에 비탄을 금치 못합니다(10-11절). 하지만 바울은 오해와 거짓에 지지 않기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12-15절). 

 

악의 간교함에 비하면, 선은 너무나도 약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심지어 자세를 낮추고 값없이 베푸는 방식은 이용당하기 십상입니다. 악은 선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립니다. 그러나 바울은 진실을 알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마음을 다잡습니다. 악이 노리는 기회를 잘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리석음으로 복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상당히 고뇌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떄로는 성도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지적하고, 자신의 비판자에 대해 변론하며, 자신의 진정성을 확인시켜가면서, 다양한 어조로 설득하고 있다. 

아주 피곤한 일일다. 

정서적으로 엄청나게 소진되는 일을 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는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있었다. 

대체로 아가야 지방의 교회에서는 돈을 받지 않고 선교 사역에만 집중했다.

파송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나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들에서 생활비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부족했던 것은 스스로 텐트를 만들어 팔면서 충당했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했다.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이런 바울의 선의 조차도 어떤 교인들에게는 비판의 거리가 된다. 

다른 선생들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돈을 받고 가르치는 것이 정당하며 그래야 가르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등의 논리가 등장했던 모양이다. 

짐이 되지 않으려고 시작했던 일들이 도리어 오해를 낳았다. 

이런 오해를 푸는 것도 바울의 몫이다. 

아무런 말 없이 지나갈 수 있었지만, 계속 놔두면 그것도 교회를 분열시키는 명분이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변호하며 자기 자랑을 한다. 

정직이 최선의 방법이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난제를 풀어가는 지름길이다. 

이리저리 재봐야 한 번 꼬인 관계가 쉽게 풀릴 일이 없다. 

때로는 욕을 먹더라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 

단순함이 승리하는 것이다. 

 

리더십, 선생님,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받는다. 

뒤에서 수군수군 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한다. 

뒷담화든 공식적인 비판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의 첫번째는 정직함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덕을 세움이다. 

두번째를 너무 의식하면 정직함을 잃게 된다. 

눌러두고 참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가능하면 정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 좋다. 

혼자 비난을 감수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함께 상황을 공유하고 필요한 만큼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한 사람의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빛을 가장한 사탄의 일을 간파하고 있었다. 

사탄의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마치 아주 선한 사람인 양 행동한다. 

교인들은 그 사람의 간계에 속아 때로는 신앙의 본질 조차도 흔들린다.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에 대한 가르침에 유혹당한다. 

뭔가 더 신비로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전에 배웠던 것은 저차원이라고 생각한다. 

참 복음에서 점점 멀어진다.

빛을 가장한 사탄의 일꾼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천지의 경우 일반적인 교회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의 교회로 데리고 간다. 

그런 사람들을 잘 분별하는 것이 교회 지도자들, 리더들의 몫이다. 

 

바울도 예수님처럼 그들의 실체는 행위의 열매로 알게 된다고 말한다. 

당장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결국은 파국이며 분열이며 미움이다. 

바울이 아무리 노력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이상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정통 교회는 일상을 중시한다. 

사이비는 일상에서 분리를 종용한다. 

일상의 관계를 더욱 영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세상과 분리되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다. 

1. 정직함으로 대응하기 

2. 사탄의 속임수와 미혹을 분별하기 

오늘의 적용이다. 

 

 

[오늘의 기도]

정직을 원하시는 하나님, 

바울처럼 정직하길 원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정직하게 표현하길 원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되, 정직하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길 원합니다. 

현재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상황과 제 자신을 포장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정직이 모두에게 최선임을 배우게 하소서. 

 

빛 되신 성령님,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눈을 허락하소서. 

거짓, 과장, 축소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거짓을 일삼습니다. 

사탄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맞서 더욱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한 주의 시작을 다시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5 08 토요일

 

여는 기도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피난처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22 때에, 다윗의 부하들이 요압을 따라 습격하러 나갔다가, 많은 노략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아브넬은 때에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않았다. 다윗이 이미 그를 보내어서, 그가 무사하게 곳을 떠나갔기 때문이다.

23 요압이, 함께 데리고 나갔던 군인을 모두 데리고 돌아오자, 누군가가 그에게 알려 주었다. "넬의 아들 아브넬이 임금님을 찾아왔는데, 임금님이 그를 그냥 보내셔서, 그가 무사하게 곳을 떠나갔습니다."

24 말을 듣고, 요압이 곧바로 왕에게로 가서 항의하였다. "임금님이 어찌하여 이렇게 하실 있습니까? 아브넬이 임금님께 왔는데, 임금님은 어찌하여 그를 그냥 보내어서, 가게 하셨습니까?

25 넬의 아들 아브넬은, 임금님께서 아시다시피, 임금님을 속이려고 것이며, 임금님이 드나드는 것을 살피고, 임금님이 하고 계시는 일도 모조리 알려고 것입니다."

26 요압은 다윗에게서 물러나오자마자 사람들을 보내어서 아브넬을 뒤쫓게 하였다. 그들은 시라 우물이 있는 곳에서 그를 붙잡아서, 데리고 돌아왔다. 그러나 다윗은 일을 전혀 몰랐다.

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니, 요압이 그와 조용히 이야기를 하려는 듯이, 성문 안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요압은 거기에서, 동생 아사헬의 원수를 갚으려고, 아브넬의 배를 찔러서 죽였다.

 

28 다윗이 소식을 듣고서 외쳤다. "넬의 아들 아브넬이 암살당하였으나, 나와 나의 나라는 주님 앞에 아무 죄가 없다.

29 오직 죄는 요압의 머리와 아버지의 집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앞으로 요압의 집안에서는, 고름을 흘리는 병자와, 나병환자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다리 저는 사람과, 칼을 맞아 죽는 자들과, 굶어 죽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30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아브넬이 그들의 동생 아사헬을 기브온 전투에서 죽였기 때문이다.

31 다윗은 요압을 비롯하여 자기와 함께 있는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백성은 옷을 찢고, 허리에 굵은 옷을 두른 뒤에, 아브넬의 상여 앞에서 걸어가면서 애도하여라." 그리고 다윗 왕도 몸소 상여를 뒤따라갔다.

32 백성이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지내니, 다윗 왕이 아브넬의 무덤 앞에서 목을 놓아 울었고, 백성도 울었다.

33 다윗 왕은 아브넬을 두고, 이렇게 조가를 지어 불렀다. "어찌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죽듯이, 그렇게 아브넬이 죽었는가?

34 그의 손이 묶이지도 않았고, 발이 쇠고랑에 채이지도 않았는데, 악한들에게 잡혀 죽듯이, 그렇게 쓰러져서 죽었는가?" 그러자 백성이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며, 다시 울었다.

35 날이 아직 저물지 않았을 때에, 백성이 다윗에게 와서 음식을 들도록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였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내가 빵이나 어떤 것을 맛이라도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벌을 내리셔도 마땅하다."

 

36 백성이 그것을 보고서, 일을 좋게 여겼다. 다윗 왕이 무엇을 하든지, 백성이 마음에 좋게 받아들였다.

37 때에야, 비로소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에게서 비롯된 일이 아님을, 백성과 이스라엘이 깨달아 알았다.

38 그런 다음에 왕은 신복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이 아는 대로, 오늘 이스라엘에서 훌륭한 장군이 죽었소.

39 스루야의 아들들이 나보다 강하니, 비록 내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라고 하지만, 보다시피 이렇게 약하오. 그러므로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에게, 주님께서 죄악에 따라 갚아 주시기만 바랄 뿐이오."

 

주석
22-39: 아브넬이 살해되어 다윗은 매우 곤경에 처했다. 그를 살해한 자는 다윗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 하나였으며, 따라서 다윗이 아브넬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의심스러운 소문이 멀리 퍼져 나갔을 것이다. 다윗이 있는 유일한 변호는, 자신이 살인 사건과 관련하여 무죄하다는 사실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이었다(IVP 성경주석).
요압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아브넬을 죽입니다(22-27). 요압의 행동은 다시 이스라엘에 위기를 초래합니다. 다윗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아브넬의 죽음이 자신과는 무관함을 밝히며 요압을 저주합니다. 그리고 백성과 함께 슬피 울며 아브넬을 장사합니다(28-35). 이로써 백성들의 마음은 여전히 다윗을 향하고, 신복들에게도 동정을 얻게 됩니다(36-39).
왕은 아브넬을 평안히 돌려보냈지만 요압은 아브넬을 평안히 돌려보낼 없었습니다. 일차적 동기는 동생에 대한 복수였습니다. 개인적인 감정과 원한이 눈을 가리었고, 그로 인한 행동은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립니다. 삶을 들여다봅시다. 개인적인 서운함과 원망, 복수심으로 그릇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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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

 

1. 꿈을 꾸다. 

굉장히 오랜만에 꿈을 꾸었는데, 상당히 생생했다. 

아는 목사님이 등장하셨는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가셨다. 

그의 메시지는 개인적 맞춤형 메시지였는데, 나만을 위한 개인 포스터를 만들어서 그분의 메시지를 담아 주셨다. 

영화의 장면들을 활용해서 메시지를 만들었는데, 매우 강렬했다. 

대중문화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워딩이 그대로 생각나면 더욱 좋겠지만, 그건 떠오르지 않는다. 

오랜만에 목사님이 꿈에 나타난 것도 신기했지만, 메시지가 나의 영성생활을 때로 가로막는 대중문화에 대한 것이어서 더욱 실감났다. 

꿈에 등장하는 메시지 전달 방식(개인 맞춤형 포스터) 내용(대중문화에 매이지 말라) 하나님에게서 왔을지 아니면 나의 내면의 소리인지는 분별이 필요하다. 

형식과 메시자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도록 이웃을 사랑하도록 이끌고 있다. 

꿈에서 깨자마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오랜만에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꿈을 통해서 전달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커졌다. 

그리고 깨자마자 주변의 나를 오랫동안 후원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웃사랑의 방향으로 마음의 흐른 것이다. 

현재로서는 하나님의 음성과 인도로 판단하고자 한다. 

 

어제 마음의 피곤함이 있었다. 

고질적인 성향의 약점이 순간순간 드러난 하루였다. 

남과 비교하기 

동안 비교로부터 조금 멀어졌다고 여겼는데, 어제는 여러 대화와 읽은 속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나를 스스로 초라하게 생각하는 우를 범했다. 

 

요사이 영적으로 예민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느끼는 순간부터 자신에게로 몰입하는 경향이 다시 보인다. 

5월들어 조금 속도가 붙고 있다. 

무조건 좋다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제어할 것도 아니다. 

신앙은 여정이고,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5월에 좀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에 집중하길 원하신다면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 

다만, 너무 매몰되어 자신의 강점과 은사를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은혜에 대한 확신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고 싶다. 

억지로 자신에게 가하는 학대가 되지 않도록 도우심을 구한다. 

 

2. 요압의 충성 vs. 사심

본문은 요압의 개인적 복수심 때문에 다윗이 그동안 전체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한 정치적 기반을 뒤흔들어버리는 결과를 낳은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요압은 사심으로 아브넬을 사살, 암살했다고 성경 저자는 기록했다. 

다윗의 전국 통일을 뒤로 후퇴시키는 개인의 앙갚음이었다. 

이런 성경 저자의 의견에 십분 동의한다. 

 

그런데 요압이 내건 정당화 근거는 상당히 일리가 있다. 

 

25 넬의 아들 아브넬은, 임금님께서 아시다시피, 임금님을 속이려고 것이며, 임금님이 드나드는 것을 살피고, 임금님이 하고 계시는 일도 모조리 알려고 것입니다.

 

충분히 타당한 근거다. 

아브넬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반란군의 수괴라고 생각했다.

다윗에게 찾아와서 그동안 이스보셋과의 일들을 이야기했겠지만, 그게 사실인지 꾸민이야기인지 방도는 별로 없다. 

사실 다윗 자신도 아기스 왕에게 찾아가 거짓으로 미친 하지 않았는가!

히스기야 시절, 바빌로니아 사절단에게 왕궁의 모든 것을 보여준 그의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은 남유다의 멸망을 확정지으셨다(왕하 20:12-19)

다윗이 적의 장군을 왕의 진지 안으로 들이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요압의 말은 상당히 타당하다고 있다. 

 

공동체에는 저마다의 사정 속에서 각자의 근거가 있다. 

근거는 상당히 일리가 있으며, 듣기에 따라 매우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 욕심과 동기가 원천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분별하는 것이 리더십의 역할이다. 

개인적인 욕심과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전체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무엇인지 필요가 있다. 

 

자신에 대해서도 항상 살펴야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서도 동기를 면밀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온전히 수야 없겠지만, 그동안의 행동의 결과가 그의 동기를 파악하는 도움이 것이다. 

그것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겸손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면밀하게 정보를 들어야 한다. 

사람의 역사를 알고 기억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충성인지 사심인지 알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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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통해서도 알려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영적으로 더욱 깨어서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게 주세요.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이웃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과민하여 자신을 해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사람이라도 깊이 기도하고 사랑을 표현하게 해주세요. 

마음의 중심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 거짓된 동기들을 파하시고 오직 하나님 나라에 대한 거룩한 열망을 품게 해주세요. 

우리 공동체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주님 나라를 위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주께서 역사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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