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지휘자를 따라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다윗의 시]

 

1하나님,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내 기도 소리를 귀담아 들어 주십시오.

2내 마음이 약해질 때, 땅 끝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내 힘으로 오를 수 없는 저 바위 위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3주님은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들에게서 나를 지켜 주는 견고한 망대이십니다.

4내가 영원토록 주님의 장막에 머무르며,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겠습니다. (셀라)

5주님은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 내 서원을 들어주시고,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유업을 내게 주셨습니다.

6 왕의 날을 더하여 주시고, 왕의 해를 더하여 주셔서, 오래오래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7주님 앞에서 우리 왕이 오래도록 왕위에 앉아 있게 하시고,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진리로 우리 왕을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8그 때에 나는 주님의 이름을 영원토록 노래하며, 내가 서원한 바를 날마다 이루겠습니다.


이 시는 다윗의 시이기도 하고 다윗을 위한 시이기도 하다. 

다윗 개인의 시이기도 하고 예배드리는 회중의 시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공동체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시다. 

동시에 한 개인의 부르짖음도 들으시는 분이시다. 

고통받는 공동체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어 이집트에서 탈출시키시고, 가나안의 여러 민족들로부터 구해주시고. 페르시아에서 탈출시켜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시켜주셨다. 

그러나 자칫 이런 큰 공동체의 부르짖음에 대해서만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하나님은 한 개인의 부르짖음에 대해서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시인은 그 사실을 믿고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있다. 

다윗의 개인사에서 “부르짖음”은 큰 역할을 했다. 

사울에게 쫓길 때,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여서 죄로 인해 고통 받을 때,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부르짖는 사람이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영성 중 하나가 부르짖음이다. 

상실과 외로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새 다른 것들이 그 부르짖음을 대체하였다. 

부르짖음 대신 숨어버린다. 감정을 무시한다. 예능으로 도배한다. 잠으로 도피한다. 

그분께 부르짖는 것을 천박한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순복음 전통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정말 고통스런 사람은 부르짖을 수 밖에 없다. 

악 소리 뒤에 찾아오는 간절한 “하나님”이라는 부르짖음이 자연스럽다. 

그 자연스러움을 억지로 통제하려고 하면 우리의 영은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피상적이다. 

평온한 순간에 하나님이 떠오른다면 이는 참 멋진 신앙이겠으나,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이는 신앙의 기본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외부로 발산하는 물리적 소리의 여부가 핵심은 아니다. 

마음 속에서 크게 부르짖을 수 있다. 

있는 힘을 다해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심장의 소리다. 

가슴을 울리는 심장의 소리가 핵심이다. 

 

시인은 마음이 약해질 때, 땅 끝에서도 주님을 찾고 부르짖겠다고 고백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해서 문제를 풀겠다는 태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그분의 보호를 의지하고, 그분을 자신의 피난처요 은신처로 삼겠다는 의미이다. 

문제가 많고 스트레스가 많은 순간에 주님을 쉼터로 삼을 수 있는가? 

그분이 나의 진정한 쉼터로 여기고 있는가? 

오늘도 수많은 결정들 앞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겠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서 그 선한 영향력을 끝까지 미쳐야 한다. 

오늘 시편으로 노래 부르는 회중들은 다윗 왕이 선한 대리 통치자, 좋은 대리 통치자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왕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한 대리 통치자들을 귀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그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대행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 

죄에 빠지지 않도록,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경제적인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며 살아가는 샤람들이 그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기도와 응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주님,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을 부릅니다. 

나의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나님의 뜻을 잘 대행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주세요. 

강인한 체력과 온유한 마음과 지혜로운 머리를 주셔서 상당히 복잡한 상황과 환경에서

주님의 뜻을 온전히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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