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19 토요일

여는 기도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피난처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31 때에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도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왕이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요단 가에 이르렀다.

32 바르실래는 아주 늙은 사람으로, 나이가 여든 살이나 되었다. 그는 부자였으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왕에게 음식을 공급하였다.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말하였다. "노인께서는 나와 함께 건너가시지요. 나와 같이 가시면 내가 대접하겠습니다."

34 그러나 바르실래는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얼마나 오래 산다고, 임금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습니까?

35 나이가 지금 여든입니다. 제가 나이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어떻게 가릴 알겠습니까? 종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신들, 맛을 알기나 하겠습니까? 노래하는 남녀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들, 제가 나이에 알아듣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종이 높으신 임금님께 다시 짐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36 종은 임금님을 모시고 요단 강을 건너려는 뿐인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이러한 상을 저에게 베푸시려고 하십니까?

37 부디 종을 돌아가게 하셔서, 고향 마을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 곁에서 죽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신에 종의 아들 김함이 여기에 있으니, 그가 높으신 임금님을 따라가게 하시고, 임금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그에게 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38 그러자 왕이 약속하였다. "물론, 내가 김함을 데리고 가겠소. 그리고 노인께서 보시기에 만족하도록, 내가 그에게 대하여 주겠고,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이루어 드리겠소."

39 드디어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넜고, 왕도 건너갔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복을 빌어 주니, 바르실래가 자기의 고장으로 돌아갔다.

40 왕이 길갈로 건너갈 때에 김함도 왕을 따라서 건너갔다.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따라서, 요단 강을 건너갔다.

41 그런데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이 왕에게 몰려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우리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이 우리와 의논도 없이, 임금님을 몰래 빼돌려 임금님과 임금님의 가족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를 모시고 건넜습니까?"

42 그러자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임금님과 가깝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런 일로 그렇게 화를 이유가 무엇이냐? 우리가 임금님께 조금이라도 얻어 먹은 것이 있느냐? 임금님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주신 것이 있어서 그러는 아느냐?"

43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은 유다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께 요구할 권리가 너희보다 갑절이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우리를 무시하였느냐? 높으신 임금님을 우리가 다시 모셔와야 되겠다고 먼저 말한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아니었느냐?" 그래도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강경하였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머무를 때 음식을 공급했던 바르실래가 왕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다윗을 도운 공적으로 그의 가문 전체가 왕의 곁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합니다. 왕에게 짐이 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바르실래는 아들 김함을 왕에게 부탁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31-40절). 북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는 왕을 사이에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41-43절).

 

아첨과 속임수로 권력에 빌붙기 위해 혈안인 사람들 속에서 바르실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순수하게 다윗을 돕고자 했고 욕심 없이 물러설 줄 알았습니다. 모함과 배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사람, 나를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을 진실하게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길 기도합시다.

 

 

——

반역은 진압되었다. 

왕의 귀환이 시작되었다. 

행렬이 뒤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왕을 축하하고 축복한다. 

왕도 나이가 들었지만, 나이가 많았던 바르실래가 왕을 배웅한다.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함께 간다. 

왕은 그동안 바르실래의 재정적 섬김을 통해 유익을 누렸다. 

그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예루살렘으로 같이 가자고 요청한다. 

그러나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나이가 많고 몸이 쇠하여 조용히 고행에서 죽고자 한다. 

대신 자신의 아들 김함을 추천한다. 왕의 통치에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거한 것이다. 

바르실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할 , 사람은 추해진다. 

노욕은 더욱더 그렇다. 

누릴 만큼 누린 사람이 죽을 때까지 보이는 욕망은 그야말로 욕이 나온다. 

그러나 인간은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먹을 것에 대한 의지도 끝이 없고, 잠자는 , 섹스 하는 것의 욕망도 끝이 없다. 

 

절제를 배우는 ,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많이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절제다. 

그런데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욕구하는 것이 심리적 현실이다.

쾌락은 강도 높은 쾌락을 낳는다. 

경험은 높은 농도의 경험을 욕구한다. 

그러니 나이가 많을수록 절제를 장착하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아는 이상, 굳이 욕망을 절제해야 이유가 별로 없어진다. 

돈과 권력이 주는 달콤함을 알고, 게다가 끝의 허망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순간의 쾌락을 굳이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이는 그렇게 절제를 멀리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언약이 더욱 절실하다. 

세대를 넘어 가르쳐야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욕망 추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라면, 오랫동안 절제가 주는 유익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참고 인내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있겠다. 그게 언약의 힘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세대를 넘어서 전달되어야 한다. 언약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간 관계의 언약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언약은 신실함을 전제한다. 그러니 언약을 알고 언약을 오랫동안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추해질 있는 것이다. 

 

약속을 깨는 것이 너무 쉬워지는 세상이다. 

사소한 약속도 소중하지만, 중요한 약속에 대해서는 정말 목숨 걸고 지켜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요사이 군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보고 듣는다. 

강철부대 군인들의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배운다. 

대의를 위해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여군 특전사의 모습에 감동이 된다. 

군인정신의 핵심은 대의를 위한 자기 헌신이요. 국가 공동체와의 약속을 목숨을 바쳐 지켜내는 충성이다. 

어찌보면, 기독 공동체가 잃어버린 정신이 바로 군인 정신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군대 문화의 불의함을 모르지 않으며, 대의에 의해 개인이 말살되는 현실이 옳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로 기독인들이 보이는 절제에 대한 나약함은 안쓰럽다. 

끝까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지켜내는 . 언약에 충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감당해야 일이 많은데 기도의 자리에서 나의 욕망을 확인하고 때로 절제하는 훈련을 하고 싶다. 

나의 욕망을 하나님께 두는 훈련. 

때로 불가능해 보이는 훈련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감당하고 싶다. 

 

——

주님, 

제어하지 못하는 여러 욕망들을 봅니다. 

주님께 마음을 집중하고 다시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으로 성장할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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