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17. 김혁수

 

[본문_창세기 28:10-22_새번역]

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하란으로 가다가, 11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12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13주님께서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14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것이다.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17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18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위에 기름을 붓고, 19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20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21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22제가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0. 들어가며 

- 통치의 방향과 방식 

10 들어 주간, 우리는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세상을 그저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에덴의 비전을 회복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대리 통치자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조화롭게 돌보길 원하셨습니다. 에덴의 비전으로의 회복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 방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번째 방식은 무엇인가요? 맞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대로부르심입니다. 데라를 부르시고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공간으로 부르십니다. 

 

- 번째?

오늘은 하나님의 통치 방식의 번째입니다.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통치하십니다. 통치를 떠올리면 법률, 규정, 재판, 행정 조치 등이 먼저 생각나곤 합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법과 규정이 없으면 세상을 돌아가지 않습니다. 헌법과 법률을 근거를 나라를 통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의 근간은 그분의 은혜입니다. 그런지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베델의 은혜 

1)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오늘 본문에서는 야곱이 등장합니다. 아브람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둘째 아들이 야곱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야곱은 도망가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고 있어요. 여러분, 지명 중에 조금 익숙한 지명이 보이시나요? 지난 주에 데라의 가족들은 바빌로니아 우르라는 도시를 떠나 처음에 어디에 정착했나요? 그렇습니다. 바로 하란입니다. 하란에 아브라함의 친척들이 살고 있었죠. 그럼 브엘세바는 어딘가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져 있습니다. 가나안 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아래에는 네게브라는 사막 같은 광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지역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이 정착을 했구요.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장자의 권리를 빼앗습니다. 에서는 힘도 세고 사냥도 잘했습니다. 형의 미움을 받아 죽겠다 싶었던 야곱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외삼촌 라반을 찾아 하란으로 여행중입니다. 

 

2) 베델에서의 하룻밤 

북쪽으로 올라가던 브엘세바에서 80km 떨어진 루스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삼사일을 빠르게 걸어야 도착할 있는 거리입니다. 형의 살해 위협을 피해 삼사일을 처음가는 길을 따라 북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란까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쉽게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피곤한 몸을 눕힙니다. 하루 종일 걸어본 사람은 알죠. 눕자 마자 잠에 빠져듭니다. 그리곤 꿈을 꿉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가 있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리고 꼭대기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분은 야곱을 축복하십니다. 

 

13주님께서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14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것이다.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주십니다. 위의 모든 사람들이 야곱을 통해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것이라는 하나님의 축복이 말씀이었습니다. 

 

3) 은혜로 부르심 

하나님은 야곱에 대해 은혜를 베푸십니다. 도망자, 처량한 신세, 돌베게를 베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외로운 여행을 떠난 야곱입니다. 형과 달리 야곱은 집안에서 곱게 자랐습니다. 어머니를 도와 음식과 집안일에 소질이 있었지 이렇게 야외에서 생활하는 것은 그에게 두려움을 주는 일이었을 겁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고, 축복과 함께 언약의 말씀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사람을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부르심은 선물 혹은 은혜라고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는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능력과 권세와 돈으로 기준을 세워 부르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계획에 의해 당신의 선물을 베푸십니다. 그것이 은혜인 것이죠. 야곱은 지금 하나님의 은헤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량한 도망자 신세, 야생 동물들의 밥이 되거나 사냥이라면 당대 최고의 사냥꾼이었던 에서의 추적으로 죽을 수도 있는 신세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돌베게가 눈물에 젖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비참한 신세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은혜가 하나님의 번째 통치 방식입니다. 

 

2. 역사속 은혜의 순간들

1) 이집트의 히브리인

좀더 예를 들어 볼까요! 이집트에서 고통받던 히브리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반응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방식으로 통치를 실현해갑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출애굽기 2:23-25)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 민족은 자신들의 고통에 못이겨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들 조상의 하나님께 SOS 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에 반응하고 계십니다. 에덴 비전을 회복시키는 방향을 가지고 제사장 나라로 이스라엘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을 구출하시죠. 은혜를 베푸신 겁니다. 

 

2) 페르시아 시대 예루살렘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여러분, 솔로몬 시대에 최전성기의 국력을 자랑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우상 숭배를 하자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공격을 받아 포로가 되고 맙니다.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지역에서 새롭게 일어난 나라가 페르시아였는데요, 페르시아 통치 시대,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벽이 없어서 크게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부르짖음과 기도에 응답하시는 장면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있습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가 말이다. 이십년 기슬르월, 내가 도성 수산에 있을 때에, 2나의 형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다에서 왔기에, 이리로 사로잡혀 오지 않고, 곳에 남아 있는 유다 사람들은 어떠한지예루살렘의 형편은 어떠한지를 물어 보았다. 3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사로잡혀 오지 않고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거기에서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에 탔습니다.” 4 말을 듣고서, 나는 주저앉아서 울었다. 나는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5아뢰었다.”(느헤미야 1:1-5)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고통 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성벽을 다시 재건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계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3) 로마 시대 유대인

마지막 예가 있습니다. 로마 시대 유대인의 삶도 고단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황제의 명령에 어쩔 없이 따랐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그들의 삶의 단면을 있습니다. 

 

“1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2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3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누가복음 2:1-3)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통치가 닿는 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호적을 하기 위해 자기 고향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제국의 인구를 파악하고, 그들을 통제하고, 세금을 걷게 하기 위한 다목적의 명령이었습니다. 명령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지 상상해 보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고향을 찾아야 합니다. 이게 고대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개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출해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시므온 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25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누가복음 2:25)

 

예수님이 태어났을 , 그분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되시는 분임을 알아본 안되는 사람이 바로 시므온이었습니다. 그는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그에게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3. 은혜로 통치하심 

1) 약속 & 약자 

우리는 이런 예들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은 능력과 돈이 많은 사람들보다는 고통받는 약자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사람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참고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는 힘과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장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꿈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끝까지 신뢰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집트에서 고생하던 히브리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랬던 겁니다. 페르시아 시대의 예루살렘의 주민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았으며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로마시대의 유대인들도 비슷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경향성을 갖고 계십니다. 

 

2)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대리 통치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걸까요? 이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나타나셔서 도움을 주시는 걸까요? 그것은 은혜를 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리 통치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교만하고 자기 성취가 강한 사람은 대리 통치를 거부하곤 합니다. 그들은 대리 통치가 아니라 단독 통치를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밑에서 세상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탑이 되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세상을 맘대로 주무르기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보다 자신의 성공, 명예, 부를 우선시 합니다. 그들은 고통의 자리에 머무르기보다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을 쉽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봤자, 선물을 자신을 위해 사용합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처럼 자신들이 신이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리 통치자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며, 고통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좋아하시는 겁니다. 그들이 비록 고통의 트라우마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때로는 그로 인해 실수도 많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태도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4. 나가며 

- 눈물의 베개

하나님은 밤에 야곱의 눈물의 돌베게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하셨던 약속을 야곱에게도 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눈물의 베게는 무엇인가요? 때로 잠을 설치게 만드는 고통스런 상황은 무엇인가요?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제대로 이루는 밤은 없었나요? 하나님은 자신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약점이 많아 고통받는 사람에게 은혜로 다가오십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의 일을 맡기십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오늘 밤에 이렇게 기도하면서 잠이 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은 신뢰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주신 약속을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상황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듭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구원해 주세요

눈물의 베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불러오는 좋은 통로가 있습니다. 

그분의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기]

1. 하나님은 당신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통 속에서 당신에게 부르짖는 사람에게 은혜 주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중히 생각하나요? 아픔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계시나요?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2. 혹시 최근 여러분의 정서 상태는 어떠한가요? 슬픔, 아픔, 고통, 두려움, 외로움, 좌절, 실망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나요? 우리는 이런 아픔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아픔에 찾아와주셔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함께 드립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의 특징이 있나요?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를 베푸신다고 생각하나요?       

 

2. 최근에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있었나요? 무엇이었나요? 사건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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