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27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36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청하여,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들어가셔서, 상에 앉으셨다.

37 그런데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는데,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숫고 계신 것을 알고서,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등 뒤에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

 

주석

죄인인 한 여자(37절) 이 여자가 ‘죄인’이라는 것은 창녀 아니면 적어도 도덕적으로 방탕하다고 알려졌거나 아마도 남사스러운 어떤 것을 추구하고 있는 여자임을 의미할 수 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어떤 바리새인

 

예수님에 대해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 바리새인도 있었다. 

민족의 지도자 그룹,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 그들이 바리새인이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다른 바리새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따로 진진하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분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분의 성격에 대해서도,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정말 그분이 소문대로 메시야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라고 해서 식사 자리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세리 레위가 회심하여 큰 잔치를 열었을 때도 기꺼이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지셨다. 

그동안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비판했던 예수님 입장에서 바리새인의 식사 초대를 거절할 이유가 없지는 않으셨다. 

가봐야 좋은 소리 할 것 같지도 않다. 

심지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모여 예수님을 잡아 가두고 죽일 모의를 한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의 식사 초대에 응하신다. 

제자들과 함께 가셨다. 

바리새인이 물어보는 질문에는 언제든지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자신에 대해,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할 말이 많으셨다. 

간단한 식사 대접이면 그거대로 좋다. 

만약 토론이 벌어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제자 레위는 사실 움찔하며 긴장했을 수도 있다. 

그동안 자신을 죄인이라고 단죄하던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간 것이다. 

레위로서는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분명 죄인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면서, 왜 소위 스스로 의인이라고 칭하던 바리새인 집에 들어가 그와 식사를 하시려는가! 

레위 입장에서는 의문이 들 수도 있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구원의 기회를 주신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거부한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초대한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절대적인 원이이 아니라 그의 교만함 때문이다. 

세리이건 바리새인이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로 입장할 수 있다. 

그분은 세리의 잔치건 바리새인의 식사초대건 마다하지 않으신다. 

 

때로 예수님을 자신의 사회적 신분,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편이긴 하지만 상대방 편을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예수님을 나의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태도는 오판이다. 

내가 그분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분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욱 크고 위대하신 분이시다. 

 

 

2. 동네의 죄인

 

예수님과의 식사 자리지만,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의 집에 다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갑자기 좌중이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곧바로 웅성대기 시작한다. 

그 동네에 죄인이라고 소문이 난 한 여인이 등장한 것이다.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죄인이다. 

정확히 어떤 죄였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죄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녀가 죄인으로 낙인찍혔다는 것이 중요하다. 

바리새인 집에 죄인이 등장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죄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죄인들과 식사를 하게 되면 자신도 죄인이 되기 때문이며, 죄인으로서 지불해야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 여인이 조용히 예수님 등 뒤에 선다. 

예수님이 식사 중이셨으니 소파나 바닥에 앉아 계셨을 것이다. 

여인이 예수님 앞으로 나가더니 울기 시작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모두가 놀란다. 

이 식사의 호스트인 바리새인도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아무도 설명할 길이 없다. 

눈물로 발을 씻긴다. 

아마도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종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유대인들의 식사 예법에는 밖에서 들어온 손님의 발을 물로 씻긴 후에 음식 대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바리새인은 그 절차를 무의식적으로 놓쳤거나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주인 대신 이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씻긴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는다. 

아무리 눈물로 씻기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도, 예수님의 발은 깨끗하다고 볼 수는 없다. 

눈물로 얼룩진 발, 머리카락으로 씻겨진 발, 그 발에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비싼 향유를 주님의 발에 바른다. 

 

조금만 상상해봐도 이 상황은 예사롭지가 않다. 

도대체 이 여인은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이 여인이 죄인이라고 꺼려했다. 

예수님이 죄인들의 친구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라는 말도 들렸다. 

거룩한 분에게 죄인인 자신이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죽을 일이다. 

하나님의 분노가 자신에게 내릴 수도 있는 일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돌맞아 죽을 수도 있다. 

각종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예수님께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일이다. 

향유도 자신의 전재산을 모아 산 것이다. 

죄인으로 이렇게 평생 사느니,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님에게 자기 존재를 다 드리기로 결정했다. 

그분이 어떻게 반응하시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다. 

12제자와 똑같이 살 수는 없지만, 예수님을 위해 평생 살아갈 마음의 준비도 했다. 

그녀는 모험을 걸었다. 

인생을 걸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마음이 그러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갔던 그 여인. 

그 여인이 오늘 마음에 남는다. 

예수님께 절박함으로 나아가 그분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일. 

이 일이 나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면 좋겠다. 

자신의 의와 선행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과 그분의 다스림을 믿는 것. 

다가오는 수련회와 여러 행사들을 통해 그런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고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여인의 이상한 행동을 그대로 바라보고 계셨던 예수님, 

아마도 예수님은 그녀의 행동 이면에 마음을 보셨을 줄 압니다. 

예수님, 

저도 순수하게 저의 전심을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것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해 주세요. 

주님이 일하시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수련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나아와 주님의 발 앞에서 자신의 모든 눈물을 쏟아내는 학생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고 오직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고백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4 07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1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12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4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15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알고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16예수께서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라부니!하고 불렀다. (그것은선생님!’이라는 뜻이다.)

17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18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마리아에게 천사들은 우는지 묻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고, 어디에 있는지 없다고 대답합니다(11-13). 마리아가 찾던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지만, 그는 동산지기로 생각하여 예수님의 시신의 행방만을 묻습니다(14-15). 마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익숙한 음성을 듣고 나서야 예수님이신 것을 깨닫습니다(16).

 

주님은 자신을 붙잡고 있으려는 마리아에게, 형제들에게 가서 자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전하라고 하십니다(17).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것과 예수님께 들은 말씀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18). 예수님의 부활은 슬픔과 절망에 있던 마리아에게 기쁨과 소망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어떻게 다가옵니까?

 

——

기쁨의 탄성, 라부니

 

1. 천사들의 위치 

오늘 본문엔 질문거리가 많다. 12절에 등장하는 천사들의 위치가 의아하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천사들은 무덤 속에 있는가? 천사들 명은 예수님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명은 발치에 있었다. 이렇게 앉아 있는가? 굳이 다르게 앉아 있을 이유가 있는가? 그렇게 넣은 장소도 아닐 텐데, 이렇게 자리를 잡은 것이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 

 

순전히 추측을 해본다. 주석들을 찾아보는 노력과 열심을 기울이지 않고, 기존 정보와 상상을 통해 추측해 본다. 

아마도 예수님의 삼베옷과 머릿수건을 벗겨 가지런히 개켜 놓은 존재가 천사들이 아니었나 싶다. 천사는 예수님의 머릿수건을 벗겨냈다. 다른 천사는 예수님의 삼베옷은 목에서부터 발까지 걷어냈다.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도운 존재들이 바로 천사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다시 찾아 달려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명확하게 증언한다. 자신들이 시신을 감싸는 옷들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부활의 첫번째 증인이었으며, 그것도 명이나 되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베드로나 요한도 열심히 달렸지만, 어제 오늘 본문의 사건 전개를 재구성하면, 막달라 마리아도 상당히 많은 거리를 열심히 달렸다. 제일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가서 사실을 알렸으며, 베드로와 요한이 열심히 달려가던 길을 쫓아 다시 무덤에 도착했고, 베드로와 요한이 시신 도난 사건에 대해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혼자 남아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11). 그러다가 던지시 무덤 속을 쳐다본 마리아는 깜짝 놀라게 된다. 천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절실하다. 새벽녘 마리아의 울음을 상상한다. 슬픈 울음 소리에 천사들이 등장한 것이다. 마리아의 슬픔에 대한 반응이었다. “여자여, 우느냐?”(13)

 

2. 라부니

결국 베드로도 요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제자들이 아니었다. 제일 처음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무덤 밖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던 그였다. 천사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도 함께 계셨다(14). 슬픔과 눈물에 젖어 있었던 마리아는 그토록 애정하던 예수님을 눈에 알아보지는 못했다. 설마 예수님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던 며칠 전에 로마의 병정이 옆구리를 찌르던 모습을 보았던 , 몰약과 침향을 바르던 모습을 지켜봤던 , 돌무덤에 가두고 돌로 막던 모습을 봤던 , 마리아는 도저히 상상할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수님이 마리야를 부르신다. “마리아야”(16). 

마리아야그의 이름을 부르신다. 

부르심에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다정하고 위엄있고 따뜻하고 권위있는 음성이 들린다.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의 목소리, 어투였다. 

그제서야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본다.

라부니”, “선생님

목숨을 눈물에 그는 보답을 받았다. 가장 처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라부니라고 부를 있었다. 

 

3. 부활체

오늘 본문에서 가장 궁금한 하나가 17절이다. 

 

17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사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제자들을 찾아 만날 때, 예수님은 도마에게 자신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보라고 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는, 마리아 때는 안되고 도마 때 되었다면, 사이에 아버지께로 올라가셨단 말인가? 부활하시자마자는 아직 아버지께로 가시지 않았지만, 곧바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제자들을 만나신 것으로 정리할 수는 있겠다. 

 

그렇게 정리는 되지만, 쉽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승천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쉽게 일어날 있는 일인가? 아님 승천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통해서인가? 

여튼 질문이 많아지는 구절인 것은 확실하다. 

 

질문과는 별개로, 마리아가 예수님을 와락 끌어 안으려고 했다는 데에 만원을 걸겠다. 

애정하던 예수님을 실제 다시 보았다. 

그토록 찾고 바라던 예수님이 눈앞에 살아서 계신 것이다. 

손이라고 잡고 싶었다. 감동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슬픔의 눈물이 감동의 눈물로 더욱 강하게 흐른다. 

제자들과는 비교할 없을 정도의 드라마다. 감정의 곡선이 요동친다. 

 

예수님을 경험하고 싶다. 

더욱 그분을 사랑하고 싶다.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꾸시는 그분을 오늘 만나고 싶다. 

 

——

예수님, 나의 라부니,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여주셨던 드라마를 저에게도 보여주세요. 

슬픔으로 가득찬 시공간 속에서도 오직 주님을 바라보게 도와주세요. 

 

미얀마의 시민들이 결국 수류탄을 던지게 되었답니다. 

내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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