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08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9 , 주간의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말씀을 하시고 나서,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21[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우리는 주님을 보았소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나는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어 보고,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7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손을 만져 보고,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30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31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두려움 속에 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평화(샬롬-히브리어) 인사를 받고 기뻐합니다(19-20). 주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보낸 것처럼 제자들을 보내시며,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 용서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21-23). 그러나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제자들의 예수님 목격 소식을 듣고도,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없다고 말합니다(24-25).

 

예수께서 도마에게 찾아가십니다. 자신의 못자국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도마는 예수님께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드립니다(27-28).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불신에서 믿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나의 삶에는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

나의 나의 하나님

 

1. 공포영화

두려움은 때로 함께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가된다.

작은 공간에 모인 제자들, 그들은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였듯이,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약식재판을 통해 그랬듯이, 자신들도 언제든지 잡아서 죽일 있다고 생각했다. 

십자가의 치욕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언제든지 다가올 있는 일이었다. 

 

마가의 다락방일 가능성이 높은 바로 공간에서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공포영화의 장면이었다. 

 

실제로 덜덜 떨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적막이 흐른다. 

노래라도 부르고 싶지만, 혹여 들킬까봐 작은 미소조차 조심스럽다.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 때문에 혼란만 가중되었다. 

시체는 사라졌다. 

누가 가져갔을까 서로의 생각을 나눴지만, 어느 순간 말소리 조차도 끊겼다. 

두려움의 숨소리만 커져가고 가끔씩 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았다고 , 두려움을 뚫기는 어려웠다. 

그도 이제는 체념하듯 조용하다. 

용기를 북돋을 말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밥먹는 것도 곤욕이다.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 

먹는 내내 소화가 되지 않는다. 위장이 멈췄다. 위장의 기쁨이 사라지니 뇌가 멈추는 같다. 

나이 어릴수록 분위기에 적응이 안된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보고 싶다. 

수소문이라도 해야 같은데, 괜히 그랬다가 유대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을지 모른다. 

 

2.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생각과 두려움에 떨고 있을 , 예수님이 등장하신다. 

두려움이 아니라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 샬롬!!’

두려움은 평안을 해친다. 두려움은 매순간 눈치를 살핀다. 안절부절, 다음 해야할 ,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정상적인 판단 기능이 멈춘다. 

평소에 보이던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이 어느새 들어와 있었는데,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없었다. 

이해는 간다. 저녁이고, 어둑컴컴한데다 문까지 걸어 잠그고, 창문도 닫았으며, 가능하면 불이 바깥으로 새지 않게 커튼도 쳤다. 촛불에 의지하여 아른거리는 서로의 그림자만 바라볼 , 촛점을 맞춰 사람들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허기사 지금은 거실이 너무 밝다. LED 영향이다. 그때야 밤이 되면 자연시계에 맞춰 잠들어야 하는 노멀이다. 

 

예수님은 작은 공간을 거닐면서 제자들의 표정을 살핀다. 

두려움과 의문 투성이의 눈빛을 보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은신 건가? 시체는 어디로 간건가? 혹시 우리 제자들 중에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빼돌린 것은 아닌가? 가룻유다가 배신 했는데, 혹시 이곳으로 병사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아닌가? 아니 그는 배신을 하고 지랄인가?’

두려움, 비난, 욕지거리, 답답함, 의문, 원망, 후회후회두려움

 

그제서야샬롬!”

깜짝 놀란다. 적막을 깨뜨리는 평화롭고 맑은 목소리가 울린다. 지난 삼일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목소리다. 아무도 그런 맑은 하늘 높은 소리를 적이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신다. 

사이에, 빛이 다락방에 가득하다.

대반전 

진짜 살아나신 것이다. 마리아의 말이 맞았다. 12제자만 있었을까? 아니다. 남자 여자 없이 예수님의 깜짝 등장에 눈물이 쏟아진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쉰다. 

 

자신의 몸만 드러내신 것이 아니다. 

어두운 마음의 기운을 그분의 숨으로 몰아내신다. 

~~ 새로운 기운이 스며든다. 

성령을 받아라

그분의 숨은 공기가 아니라 영이었다. 

하나님의 , 예수님의 , 거룩한 ,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의 영이다. 

서로 비난 했던 모든 사람들이 이제 용서할 때가 되었다. 

두려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미워했던 사람들, 원망했던 모든 상황들, 심지어는 예수님에 대한 원망과 비난의 말들조차, 이제는 사랑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해 용서할 있게 되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비난을 멈추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라.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에 마음 문을 열어라. 

너희가 쉬는 숨은 공기가 아니라 이제 내가 보내는 성령이다. 

성령은 너희가 세상에 살아갈 힘과 용기다. 지혜요 사랑이다. 

성령의 숨을 쉬어라. 

 

3. 나의 나의 하나님

도마의 의문은 정당하다. 

그에게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라도 그랬겠다. 

나에게 엄청난 영광의 순간이 빗겨갔을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의문의 소리를 예수님이 들으셨다. 그리고 다시 오셨다. 

도마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제자들 전체의 하나됨을 위해서다. 

저자 요한은 하나됨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청한 것은 서로 사랑함과 하나됨이었다.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의 마지막 대제사장적 기도의 핵심도 그것이다. 하나됨 

그러니 영광의 순간을 도마를 위해 재연하셨다. 

8 동안 도마는 하나됨을 누릴 없었다. 

기쁨의 소식을 혼자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재연은 대성공이었다. 

누구도 도마처럼 직설적으로 예수님을 부르지 못했다. 

마리아는 라부니(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제자들은 예수님이라고 불렀겠다. 

도마의 고백은 예수님을 따르는 후대의 모든 제자들의 교본이 되었다. 

예수나의 , 나의 하나님 

이것은 신적 고백이었다. 

예수님 직접 입김으로 성령의 숨을 주시지 않았더라도, 그곳은 성령의 숨으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도마는 이미 고백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다시 자기에게도 나타나주시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성령의 숨은 도마의 고백을 만들었다. 고백은 도마 자신이 만든 것으로 보기 어렵다. 

고백은 성령님의 작품이었다. 

8일간 성령님은 도마의 마음 속에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의 , 나의 하나님!”

 

——

부활의 예수님, 

성령의 숨으로 저를 채워주소서. 

제가 머무는 모든 공간을 채워주소서. 

 

사랑과 용서가 더욱 빛나는 공간이 되게 하소서.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사람을 용서하게 하소서. 

죄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도록 역사하소서.

잘못한 사람이 피해자의 치유 과정에 겸손하게 임하게 하소서. 

 

나의 나의 하나님, 

고백이 끝까지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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