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1-6

복음의 얼개#4_새로운 통치_Disciples

2019. 9. 22. 김혁수

 

0. 들어가며 

복음의 얼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세상을 통치, 다스리고 싶어하셨습니다. 사람을 2인자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나라의 초대 총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사단의 말을 따른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총리로서 절대 있을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총리가 다스리던 세상은 저주를 받아 생존의 경쟁과 죽음의 공포를 낳았습니다. 인간사는 미움과 전쟁으로 가득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완벽한 총리인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새로운 통치를 시작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회복의 강물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와 교회를 통해 세계로 흘러가는 원대한 꿈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네 번째 시간입니다. 새로운 통치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우리는 통치의 어느 시점에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럼 본문을 같이 읽어볼까요? 

 

1.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

1) 권위(1-2) 

8장에서 예수님은 12제자들에게 사역의 본을 보여주십니다. 풍랑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십니다. 또한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을 고치시죠.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사역들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연을 다스리시고, 사단의 세력을 쫓아 내시며, 병을 고치시고 죽음을 정복해가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다시 세상에 내려온 겁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원래의 통치와 다스림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스림을 이제 제자들에게 맡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 자신만이 아니라 그분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권위 부여하십니다. 권한을 주시고 그에 걸맞는 능력 부여해주십니다. 그것이 1, 2절의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열둘을 자리에 불러놓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게 하시려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놓으시고 그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단순히 좋은 교육을 받고 지식이 많아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가르치시고 본을 보이신 이유는 그들도 예수님 처럼 세상을 회복시키는 다스리는 , 총리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아담과 하와로 그들을 세우시는 겁니다. 다스림의 위치로 사람들을 올리시고 세우시는 장면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아담  사람의 범죄 때문에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예수 그리스도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_로마서 5:17

 

2) 신뢰(3) 

이제 제자들은 , 새로운 총리들은 아담, 하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 , 순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3절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지팡이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속옷도 벌씩 가지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돈을 가지고 다니면서 물건을 사고 숙식을 해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돈을 주더라도 받지 말라라는 의미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서 세상에 다니는 겁니다. 현재 돈이 없어도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겁니다. 그분을 신뢰함으로 회복의 다스림을 실천합니다. 이게 원래 아담과 하와가 가져야 태도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아담과 새로운 하와가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3) 확산(4) 

신속하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다닐 것을 예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합니다. 굳이 부잣집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마을이건 제자들을 환영하는 집이면 족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다스림은 빠르게 선포됩니다. 

 

4) 심판(5)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과 마을이 있을 겁니다. 마음을 닫고 제자들을 환영하지 않는 집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마을이 있을 겁니다. 때에는 먼지를 떨어버리면서 마을을 벗어납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했기에 미래에 심판을 받게 것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마을을 떠날 , 신발의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이방인의 땅이 되는 처럼 하나님의 백성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 하나님 나라의 확산의 일등공신(6)  

이렇게 제자들은 여러 마을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들은 복음(6) 전했습니다. 그리고 병을 고쳤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복음은 무엇인가요? 이들이 전한 복음은 무엇인가요? 십자가의 복음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았다는 복음입니까? 부활의 복음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소식입니까? 아닙니다. 이들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소식입니다. 오래전부터 예언되어왔던 메시야가 가운데 왔다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소식을 누가 전달하고 나르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말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을 내어쫓습니다. 병자를 낳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임한다는 말도 했겠지요. 

 

2. 새로운 총리들_제자

그럼 이제 새로운 총리들이 어떤 힘으로 그들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지 살펴봅시다. 

 

1) 총리의 확신 

가장 먼저, 새로운 총리들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권위가 무엇인지 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거죠. 훈련소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훈련 하나는 관등성명말하기 입니다. 127 훈련병 김혁수, 조교가 말할 , 지시할 마다 소리로 외치게 합니다.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훈련을 받고 있음을 계속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총리로 부름받은 제자들은 계속 반복적으로 자신들이 그러한 존재임을 확인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 십자가와 부활

십자가와 부활이 입니다. 죄의 권세,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원한 절대적인 사건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자신들을 얽어매던 죄의 고리가 끊어졌음을 확인합니다. 부활을 통해 죽음의 권세를 이겼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상 아담과 하와에게 내려졌던 저주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아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돌려주지 않는 상황, 그래서 정글같은 세상에서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상황, 게다가 생명의 나무 열매를 먹을 없게 되어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상황, 그래서 죽음의 공포를 항상 느끼며 살아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한 저주가 깨졌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이걸 매번 공동체가 모일 마다 확인합니다. 그것이 성만찬이요. 주일 예배입니다. 성만찬은 십자가 사건을 상징합니다. 새로운 언약이 체결되는 순간을 기념합니다. 주일 예배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유대인의 예배는 안식일이라 불리던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예배는 주일입니다. 그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이 재정된 것입니다. 

 

- 사랑의 승리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했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승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십자가와 부활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과 의도를 신뢰하고 의지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겁니다. 속에서 확신을 갖고 새로운 총리의 삶을 시작하는 겁니다. 12제자 아니라 선교여행을 했던 70명의 제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제자, 그리고 초대교회의 수많은 제자들이 사랑의 승리를 믿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완승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세계에 흩어질 있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것이 확신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우리에게 이런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 사랑의 승리로 인해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나를 하나님 나라의 총리로 임명하셨구나 이런 확신말입니다. 

 

2) 다스림의 방법 

그럼 총리가 우리가 사용하게 다스림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려나가야 할까요? 

 

- 산상설교_하나님 나라의 헌법(마태복음 5-7) 

먼저, 하나님 나라의 헌법과 법률인 산상설교에 힌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선포하시고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가르치신 내용이 바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설교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부터 시작해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헌법 조항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죽음의 세력이 다스리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식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슬퍼하고 의를 위해 살고 온유하며 자비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시공간입니다. 그런 시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새로운 총리들이 해야 일입니다. 

 

회복적 써클 교육 받고 왔습니다. 써클은 대화방식을 의미합니다. 회복적 써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에 회복될 있도록 돕는 대화모임입니다. 대전에서 있었던 2 3일간의 회복적 써클 교육은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합니다. 경청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됩니다. 사실 확인과 자기 정당성 주장만으로는 서로의 상처가 아물지 않습니다. 복수심만 증폭시킵니다. 그래서 많은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일어나서 학폭위가 일어나기 전에 회복적 써클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저도 그렇고 우리 모두 대화법을 배우고 몸에 익히면 좋겠습니다. 

 

- 예수님의 _섬김(발을 씻기심과 십자자)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다스림의 방법을 가르쳤다면 뒤로는 직접 자신이 본을 보입니다. 가장 드라마틱하게 나타난 곳은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과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중동 팔레스타인의 길거리는 모래먼지, 흙먼지로 가득합니다. 날씨도 더워서 주로 슬리퍼 형식의 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발이 더러워집니다. 종들은 주인들의 발을 씻겨줍니다. 그게 종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허리춤에 수건을 두르시더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겁니다. 충격입니다. 제자들은 이렇게까지 섬겨야 되는지는 몰랐을 겁니다. 결국 십자가의 죽으심도 제자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총리들은 아담과 하와 처럼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돌리는 책임회피의 죄를 짓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안고 갑니다. 이런 섬김과 희생으로 세상을 다스립니다. 세상을 돌봅니다. 이웃을 회복시킵니다. 

 

3) 총리의 안식_삼위일체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섬기는 새로운 총리들은 어떻게 일을 지속시킬 있을까요? 이게 중요합니다. 이걸 배우지 않으면 어느 순간 총리의 직분을 망각하고 방식대로 살게 됩니다. 경찰, 검찰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갑자기 시민을 섬기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 일할 , 사회는 엉망이 됩니다. 새로운 총리들도 언제든지 그런 잘못을 저지를 있습니다. 새로운 총리들도 충분히 쉬면서 그들의 역할을 감당할 새로운 힘과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시공간이 어디입니까? 

 

- 예수님과의 식사 

먼저는 왕이신 예수님과의 식사입니다. 총리들은 왕과 자주 식사를 나눠야 합니다. 회의만 자주해서는 안됩니다. 식사를 나누고 사적인 대화도 나누고 세상 섬김의 고충에 대해서도 함께 나눠야 합니다. 부활후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시고 그들의 아침밥을 챙겨주셨습니다.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퍼부었던 수제자 베드로에게 번이나 사랑 고백을 하게 하심으로써 그의 영혼을 회복시켜주십니다. 그것이 식사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통해 제자들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총리들은 바로 예수님과의 식사시간을 즐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급해주시는 음식과 말씀을 자주자주 먹고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매일 큐티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매주 공동의 식사를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교회 공동체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끼라도 같이 밥을 먹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성만찬을 진행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 예수님의 기도 

특히 제가 사랑하는 본문인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삼위 하나님께로 초대하는 장면 나옵니다. 그분의 사랑의 연합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연합하여 삼위 하나님께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을 섬길 있습니다. 그런 연합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세상을 섬긴다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를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게 됩니다. 

 

3.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

총리의 확신과 통치의 방식, 그리고 총리의 안식에 대해 같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그건 예수님 시대의 제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거지 과연 나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건가? 맞습니다. 저도 그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고 말합니다. 

 

1) 70명의 총리들(10:1-2) 

성경에서는 처음 12명의 제자들을 세상을 회복시키는 총리의 일로 부르셔서 세상에 보내십니다. 이것이 오늘 누가복음 9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가보면 12명이 아니라 70명을 보내십니다. 

일이 있은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일흔[]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_누가복음 10:1-2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이제는 70 혹은 72명을 보내십니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많은 추수꾼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추수꾼이 있습니다. 

 

2) 모든 제자들의 파송(1:8) 

게다가 누가복음과 원래 묶음이었던 사도행전에서는 어떻게 됩니까?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끝에까지 이르러 증인이 것이다.”_사도행전 1:8

부활 후에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하신 말씀이십니다. 성경에는 말씀에 순종하여 전세계를 다니면서 총리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사도 바울이 대표적이죠. 바나바도 있습니다. 실라와 마가도 그러합니다. 그런 동역자의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 있는 곳이 로마서 마지막 장입니다. 로마서 16 대부분이 그런 총리들의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4. 나가며 

- 송청제자 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통치

세상을 섬기는 송청제자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봤습니다. 할일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과 관련해서 가지만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경청입니다. 영혼의 갈망을 들을 있는 경청입니다. 상대방의 진심을 들을 있는 경청의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회복이 일어납니다. 서로 연결되는 경험은 서로의 존재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의 갈망을 들을 비로소 일어납니다. 회복적 써클 프로그램 경청 훈련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이 말하면 아무말 하지 않고 따뜻한 주목 속에서 듣습니다. 그러다 침묵이 흐르면 침묵도 언어임을 받아들이고 잠시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이렇게 3-4번을 묻습니다. 물을 때마다 깊은 자신의 갈망을 말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서로의 영혼의 갈망을 경청하고 함께 갈망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기도회 

1.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총리로 부르십니다. 그분과 공동통치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두렵고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지만, 세상을 회복시키시고 아름답게 다스리는 총리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이런 의식을 조금씩 조금씩 많이 갖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2. 총리로서의 확신 중요합니다. 다스림의 방법을 아는 중요합니다. 동시에 저는 총리의 안식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총리는 너무 많은 일에 시달릴 밖에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직장에서 많은 일들로 시달립니다. 그러면 그럴 수록 총리는 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의 식사가 필요합니다. 특히 삼위하나님과의 연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쉼을 누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일을 위해 기도합시다. 예수님 주님 안에서 안식하게 주세요. 

 

3. 섬기기 위해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상대방 영혼의 중심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있도록 훈련받아야 합니다. 정보와 정당성의 근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영혼의 갈망에 집중하는 겁니다. 그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던지고 또한 듣는 우리가 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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