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25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0 그래서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새끼에게 젖을 빨리는 암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우리에 가두었다. 

11 수레에는 주님의 궤를 싣고, 금 쥐와 그들의 악성 종양 모양을 본떠서 만든 물건들도 상자에 담아 실었다. 

12 그 암소들은 벳세메스 쪽으로 가는 길로 곧장 걸어갔다. 그 소들은 큰길에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벗어나지 않고, 울음소리를 내면서 똑바로 길만 따라서 갔고, 그 뒤로 블레셋 통치자들이 벳세메스의 경계까지 따라서 갔다.

13 그 때에 벳세메스 사람들은 들에서 밀을 베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궤를 보고는 기뻐하였다. 

14 수레는 벳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와서 멈추었는데, 그 곳에는 큰 바위가 있었다. 그들은 나무 수레를 쪼개어 장작으로 삼고, 그 소들을 번제물로 살라서 주님께 바쳤다. 

15 레위 사람들이 수레에서 주님의 궤와 그 곁에 있는, 금으로 만든 물건들이 든 상자를 내려다가, 그 큰 바위 위에 올려 놓았다. 그 날 벳세메스 사람들은 주님께 번제물을 바치고, 다른 제물도 바쳤다. 

16 블레셋의 다섯 통치자들도 이것을 다 보고 나서, 그 날로 에그론으로 돌아갔다.

17 블레셋 사람들이 주님께 속건제물로 바친 악성 종양 모양의 금덩이들은, 아스돗 몫으로 하나, 가사 몫으로 하나, 아스글론 몫으로 하나, 가드 몫으로 하나, 에그론 몫으로 하나였다. 

18 금 쥐도 바쳤는데, 그 수는 요새화된 성읍과 성곽이 없는 마을 곧 다섯 통치자가 다스리던 블레셋의 모든 성읍의 수와 같았다. 사람들이 주님의 궤를 올려 놓았던 그 큰 바위, 곧 벳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있던 그 큰 바위는, 오늘날까지도 거기에 그대로 있다.

 

주석

14절. 언약궤가 놓여 있던 큰 바위는 초기의 제단이나 입석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오늘의 묵상]

1. 두 암소

요사이 사람들이 들으면 끔찍하다고 할 이야기다.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던 암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끌게 했다. 

암소들은 다시 새끼를 보러 올 수 없게 되었다. 

블레셋 경계를 넘어 이스라엘로 가야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통 제사법에 따라 제물이 될 터였다. 

송아지들은 어미를 잃었다. 

암소는 새끼들을 잃었다. 

암소가 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생살 같은, 분신 같은 새끼를 떨어뜨리고 제물이 되기 위해 언약궤를 메고 국경을 넘는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들은 자신이 죽을 것은 안다고 한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어미소들이 불쌍하다.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사제도가 몹시도 불편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최선의 것으로 신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암소 같은 가축은 그들에게, 한 마을의 귀중한 자산이었다. 

암소 한 마리가 가져다주는 노동력은 성인 남자 몇십 명과 맞먹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자가 정확히 계산해 놓은 것이 있을 것이다. 

가장 귀중한 것으로 신의 노여움을 푸는 행위가 그들의 의도였다. 

지구 상의 거의 모든 민족들이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자연을 다스리는 신들을 달래는 것이 제사장의 몫이었으며, 그들은 언제나 최상의 것으로 신에게 대접하라고 백성들을 가르쳤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런 당시의 문화를 활용하여 당신에게 예배하라고 알렸다. 

모세의 율법을 통해, 대속제물의 필요성을 가르쳤고, 따라서 이스라엘의 예배는 제사 예배였다. 

암소는 중요한 제물이었다. 

 

예수님은 송아지를 놔두고 먼 길을 떠나는 암소같이 제자들을 남겨두고 십자가로 걸어가셨다. 

그분은 완벽한 제물이 되셨다. 

그리고 그 완벽한 제물은 제사 예배를 찬양 예배로 예배 문화를 바꾸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칭송하고 찬양하는 예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 

피와 살 냄새가 진동하는 피의 제사는 더는 필요없다.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와 그분에 대한 신뢰 및 순종에 대한 결심이 주가 되는 찬양 예배가 중심이 된다. 

그 은혜에 반응하여 우리는 그분의 뜻을 따른다. 

암소보다 더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린다. 

바로 우리의 존재, 삶 전체다. 

 

2. 블레셋의 속건제 

주의 깊게 볼 것이 있다. 

블레셋은 모세 율법의 규정과는 전혀 다른 속건제를 드렸다. 

악성 종양 모양의 금덩이들과 쥐 모양의 금조각을 속건제물로 드렸다. 

피의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물질로 제사를 드렸다. 

 

또한 언약궤의 운반도 율법 규정에 어긋났다. 

율법에서는 레위 제사장들이 언약궤의 네 귀퉁이를 들고 옮겨야 했다. 

수레에 실어서는 안되었다. 

언약궤는 동물에 의해 운반되어질 물건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특별하게 다뤄져야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블레셋의 속건제를 받으신 것으로 보인다. 

수레로 옮겼다고 진노하시지도 않으셨다. 

후에 웃사 사건과 비교하면 하나님은 상당히 너그럽게 블레셋을 대하신다. 

그들의 금 제물을 받으셔서 블레셋에게 내렸던 심판을 멈추신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궤를 돌려보낸 것 그 사실이다. 

그 본질이 충족되어서 그런걸까? 

방식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연하게 대하신다. 

 

어찌보면 하나님은 각 시대의 문화를 존중하시는 분이 아니신가 싶다. 

그들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이 있는가가 핵심이다. 

방식은 어찌보면 부차적이다. 

이스라엘도 제사 제도 자체가 본질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분의 뜻을 따르려는 의지, 그분의 비전에 깊이 순응하려는 태도가 핵심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유연함을 의심하지 마라. 

그분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그런면에서 그분은 본질주의자이시다. 

 

[오늘의 기도]

완벽한 제사를 당신 스스로 만드신 하나님, 

당신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하신 일들을 다시 기억합니다. 

온 인류를 다시 당신께로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더 깊이 사랑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개입을 간구드립니다. 

무속 신앙에 빠진 사람들을 구출하여 주소서. 

사탄과 귀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자들을 구원하여 주소서. 

교인 중에 점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고쳐주소서. 

 

오직 우리가 찬양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음성은 당신의 음성 뿐입니다. 

제 마음의 중심을 주님께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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