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22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23 배를 타고 바다로 내려가서, 큰 물을 헤쳐 가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은,24 주님께서 하신 행사를 보고, 깊은 바다에서 일으키신 놀라운 기적을 본다.25 그는 말씀으로 큰 폭풍을 일으키시고, 물결을 산더미처럼 쌓으신다.26 배들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깊은 바다로 떨어진다. 그런 위기에서 그들은 얼이 빠지고 간담이 녹는다.27 그들이 모두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흔들리니, 그들의 지혜가 모두 쓸모 없이 된다.  

 

28 그러나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그들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29 폭풍이 잠잠해지고, 물결도 잔잔해진다.30 사방이 조용해지니 모두들 기뻐하고, 주님은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다.31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32 백성이 모인 가운데서 그분을 기려라. 장로들이 모인 곳에서 그분을 찬양하여라.

 

주석

배, 바다(23절) 항해는 이생에서의 경험을 보여주는 완벽한 영상이다. 모든 계산을 뒤엎어 버리며 소중히 여기는 위안거리를 파괴시켜 버리고 우리를 완전히 위압적인 세력에 붙들리게 하여 무방비 상태로 두는 폭풍이 온다. 모든 폭풍은 기도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폭풍이며 폭풍을 일으킨 동일한 손이 때가 되면 그것을 잔잔케 하실 것이다(IVP 성경주석).

 

묵상

시인은 항해 중에 큰 폭풍을 만나서 거의 죽게 된 자들을 이야기합니다(23-24절). 거대한 폭풍 앞에서 뱃사람의 지혜는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26-27절). 그러나 한 가지, 그 폭풍이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25절).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폭풍을 잠재우시고 그들을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십니다(28-30절).

 

계산 밖의 일이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른다는 점에서 인생은 항해와 닮아 있습니다. 내 삶에 안전하고 합리적인 일만 일어나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폭풍과 물결이라는 곤경이 삶에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기도 하십니다.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릴 때,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폭풍을 잠잠하게 하실 하나님의 강한 손입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내 삶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안전한 항구가 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시인의 노래가 오랫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들려왔다. 

여호와 하나님은 풍랑에서 건져주시는 분이시다. 

말씀으로 폭풍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며 말씀으로 물결을 잔잔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 일을 실제로 하신 분이 계시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폭풍으로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제자들을 구해 주신다. 

풍랑 가운데 우뚝 서셔서 말씀으로 폭풍을 잠잠케 하신다. 

그러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공동체의 오랜 신앙 고백과 노래에 적합한 인물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고 의아할 수 밖에 없다. 

두렵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하나님이 실제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제하신다. 

시편의 노래가 물리적 현실이 된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외부적 폭풍과 내면의 폭풍을 맞이한다. 

그 둘을 같이 맞딱뜨리면 참 곤란하다. 

난 지금 내면의 폭풍을 견뎌내고 있다. 

속이 너무 시끄럽다. 

항상 도피처를 찾는다. 

드라마는 좋은 도피처다. 

특별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휘몰아친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내라는 말이 거슬린다. 

만족하나 만족스럽지 않다. 

행복한 듯 행복하지 않다. 

내면과 일상이 변화되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은 아닌가 싶다. 

몸도 마음도 또 한 번의 변화를 감지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집중하고 싶다. 

피정이 필요하다. 

마음의 복잡함을 내려놓고, 오직 그분의 뜻을 분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드라마라는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정서적 위안 거리를 내려놓고, 

본질을 향해 다시 나아가야 한다. 

생명과 에너지의 근본 되신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면의 폭풍을 잠재울 수 없다. 

바쁘다는 말로 대신하지 마라. 

바쁘다는 말로 허비하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 

젊음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말들을 나에게 던지고 또 던진다. 

 

 

[오늘의 기도]

주님, 

폭풍같은 제 마음을 주님께 보여드립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할 일이 많다고 계속 투정입니다. 

루틴을 망가뜨리는 모든 행사가 괴롭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엷어지니 포용능력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폭풍같은 제 마음을 다스려 주소서. 

피곤한 육체를 다스려 주소서. 

약해진 의지를 고쳐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4. 18.

 

[본문_요한복음 21:1-14] 

1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2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사람이 자리에 있었다. 3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하니, 그들이우리도 함께 가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밤에는 고기를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4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 잡았습니다.” 6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7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저분은 주님이시다하고 말하였다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8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작은 배를 채로, 고기가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 90미터)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9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11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3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14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번째였다.

 

[설교]
0.
들어가며
4
월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중심으로 전후의 변화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당시의 가장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해왔던 그들의 깊은 기대와 믿음은 송두리째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3년간의 기대가 바뀔 , 누군가는 크게 저항하고 싶었을 겁니다. 완전히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그들을 새로운 출발선으로 데려왔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혹시 우리에게도 새로운 출발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새로운 출발선에 봅시다. 

 

1. 디베랴/갈릴리 호수로 돌아온 제자들

마가의 다락방에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돌아옵니다. 디베랴는 갈릴리 호수의 서쪽 연안에 자리잡은 매우 도시였습니다. 지난 달은 제자들에게 충격 자체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만 해도 백성들의 환호와 기대에 눈빛을 보며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을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맥없이 잡히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절망과 고통 속에 있을 ,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끝나고 이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일이 없었다는 , 평온한 갈릴리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말에 원래 어부였던 제자들이 하나 베드로를 따라 나섭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고기를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과는 별개로 제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헤야 할지 막막하고 열매가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보는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제자들은 갈릴리에 왔는가? 원래는 예루살렘 성에 머물러서 성령이 내려오실 때까지 기도에 전념했던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입니다. 성경 마태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은 제자들 보고 갈릴리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기를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것이라고 하여라”( 28:7) 
 때에 예수께서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가서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그러면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28:10)

 

그러니 단순히 제자들이 낙담하여 자신들의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왔다고 해석하면 그건 반쪽짜리 해석일 겁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라고 했을까요? 어차피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2. 기억의 소환

제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부였습니다.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90미터 떨어진 뭍에서 사람이 소리칩니다. “여러분, 무얼 잡았나요?” 새벽녘 갈릴리 호수의 고요함을 깨는 크고 분명한 목소리에 다들 흠칫 놀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별거 없습니다.” 그러자그럼, 그물을 오른편으로 던져 보세요. 그럼 잡힐 겁니다.” 배의 오른편이나 왼편이나 얼마나 차이가 나겠습니까? 밤새 어부들이 오른편 왼편 던져보지 않았을까요? 말을 들은 제자들은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왠일입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생선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이 그분이 예수님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장면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의 상황과 똑같습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겠습니다. 

 

4예수께서 말씀을 그치시고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5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6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누가복음 5:4-6)

 

뿐만이 아닙니다. 물고기를 잡아 오자 벌써 예수님은 제자들의 아침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생선을 굽고 계셨고, 빵도 이미 가져다 놓으셨습니다. 밤새 고기잡느라 허기진 제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시면서 먹을 것을 건네 주십니다. 여러분, 장면은 무엇과 유사한가요? 맞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오는데, 장소가 디베랴 호수 근처였음을 우리는 있습니다. 모세 시대 만나의 기적을 재현하여 진정한 메시아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신 사건이었습니다. 때는 제자들이 돌아다니면서 빵과 생선을 나누어 주었죠.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3 전의 사건들이 제자들에게 떠오릅니다.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과의 처음 만난 장면과 백성들의 흥분에 기대의 소리를 다시 기억해냅니다. 아마 예수님은 이런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다시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같습니다.

 

3. 새로운 출발선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제자들, 그들에게는 다시 출발선에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다시 주어져야 했습니다. 지난 3년이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에서 따라다녔던 기간이라면, 이제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로 세상에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섭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갈릴리로 부르셨습니다. 유사한 장면을 연출하심으로써 제자들을 다시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돌려놓으셨습니다. 

 

4. 나가며_나의 사명은? 

여러분,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분명있습니다. 때로는 사명을 새롭게 하고 다시 출발선에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실패하기도 하고, 잘못된 기대와 기준으로 다루다 보니 어긋난 결과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시 부르심의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목표, 새로운 목적, 새로운 사명이 생겼던 때가 있었나요? 무엇이었나요? 누군가는 가족을 섬겨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겠다. 교회를 살리겠다. 청소년들을 섬기겠다. 주변에 가난한 이웃을 섬기겠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만물의 보호를 위해 애쓰겠다. 이런 결심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분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꿈과 비전을 주십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기억들이 있을 압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의 결심은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세상의 관점과 생각에 의해 왜곡되거나 오염되기도 합니다. 나의 동기가 예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 우리가 해야 일이 있습니다.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다시 처음 부르셨던 예수님과의 만남의 장소로 추억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대체로 예수님과의 깊이 있는 만남의 시간은 수련회와 같은 집중된 말씀 공부와 공동체적 활동을 통해 경험됩니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 때문에 그것이 막혀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저는 이미 경험했던 분들이 그때를 회상하면서 하루 이상의 시간을 떼어놓고 충분히 기도와 묵상으로 들어가면 좋겠다고 추천드립니다. 성경과 기도책 그리고 노트를 들고 하루 피정을 떠나는 겁니다. 곳에서 오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거죠. 나의 갈릴리는 어디인가? 내가 처음 만난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등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다시 출발선에 서는 겁니다. 부디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아침식사를 맛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함께 생각해 문제 & 기도] 

1. 갈릴리에 돌아온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을까요?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매번 허탕을 치고 있는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3.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에, 그분이 나에게 주신 소명/사명/목표/목적은 무엇이었나요? 나는 지금 소명을 따라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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