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27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13 그러나 그들은, 어느새 주님이 하신 일들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14 그들은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었고 사막에서는 하나님을 시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15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습니다.

16 그들은 또한, 진 한가운데서도 모세를 질투하고, 주님의 거룩한 자 아론을 시기하였습니다.

17 마침내 땅이 입을 벌려 다단을 삼키고, 아비람의 무리를 덮어 버렸습니다.

18 불이 그들의 무리를 불사르고, 불꽃이 악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19 그들은 호렙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보고 절을 하였습니다.

20 그들은 자기들의 영광이 되신 분을 풀을 먹는 소의 형상과 바꾸어 버렸습니다.

21 그들은 또한, 이집트에서 큰 일을 이룩하신, 자기들의 구원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22 함의 땅에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도, 홍해에서 행하신 두려운 일들도, 그들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23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셨으나, 주님께서 택하신 모세가 감히 주님 앞에 나아가 그 갈라진 틈에 서서 파멸의 분노를 거두어들이시게 하였습니다.

 

NIV

So he said he would destroy them—had not Moses, his chosen one, stood in the breach before him to keep his wrath from destroying them(23절).

 

용서의 은혜를 알고서도 또다시 이스라엘은 주님을 잊어버리고 불순종합니다(13절). 주님의 공급하심에 싫증을 내고 하나님을 시험합니다(14절). 주님이 세우신 권위를 시기하고 반기를 들다가 심판을 받습니다(16-18절). 호렙산에 올라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빨리 잊어버리고,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체해 버립니다(19-22절). 주님은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셨으나, 모세의 중재로 분노를 거두십니다(23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계속되는 죄의 양상을 마주할 때,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신앙의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중재자이신 예수님(히 8:6)은 죄로 인해 나와 하나님 사이에 갈라진 틈을 메우십니다. 또한 주님은 공동체와 세상 가운데 중재자로 당신의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중보해야 할 가정과 공동체의 갈라진 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중보기도는 위대한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출애굽기를 묵상하는 가운데, 시편 106편을 함께 묵상하니 시너지가 생긴다. 

시편기자의 출애굽기 해석이 오늘따라 신선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오경을 자신들의 정경이요 교과서로 삼았다. 

그 이야기들로 시를 만들고 노래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는 계속 기억되어야 하며, 대대로 이어져야 했다. 

시편 106편도 이런 기능을 담당한다. 

사람들에게 과거의 역사를 요약하고, 기억하기 쉽게 압축하고, 시와 노래로 만든다. 

사람들은 시를 외우고, 노래를 부르면서 과거로 돌아간다. 

시와 노래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유효하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새긴다. 뇌리에 박힌다. 

평생 기억하게 되는 노래들은 어린 시절 불렀던 것들이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것들이다. 

만화주제가 같은 것들, 어린 시절 불렀던 CCM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시편 106편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폭로한다. 

엄청난 이적과 기적을 경험하고도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불평과 불만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광야에서 그들은 허망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이집트에서 보기만했던, 누리지는 못했던, 그 호화로운 삶을 광야에서 추구하고 있다. 

광야의 삶에 만족하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즐기지 않았다.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시와 노래가 그치고, 비평과 평가만 남았다. 

시인의 창의성은 사라지고 평론가의 비판만 남았다. 

욕구는 채웠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졌다. 

 

15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습니다.

 

15절이 마음에 꽂힌다. 

욕망이 충족되지만 영혼은 파리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열망하고 노력하는데, 자칫하면 그 욕망과 욕구가 하나님의 뜻을 넘는 경우가 생기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간다.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들의 결말은 거의 좋지 못하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경우도 있다. 

정당한 욕망이 왜 없겠는가!! 

과도한 욕망,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는 욕망은 우리 영혼에 독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그 욕망의 추구가 결국 과거를 잊게 만든다. 

원래 어떤 존재였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구출하셨는지 잊어버린다. 

 

욕구하는 것, 바라는 것이 없을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욕구와 바람이 너무 커지는 것은 아닌지 항상 돌아볼 일이다. 

욕구의 질주를 막아야 한다. 

욕망의 전차를 막아세워야 한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세우는 일에 욕망의 방향을 맞춰야 한다. 

그것도 참 잘하는 일인데, 잘 맞춰진 방향으로 돌진하려는 욕망의 관성과 속도도 조절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보다 앞서서 하려는 인간의 욕심, 욕망을 관찰해왔다면, 속도조절조차 해야 한다. 

방향의 제시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그 방향을 향해 달리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는 그 방향을 향해, 주님의 속도계에 발을 맞추면 걷거나 뛰는 것이다. 

그걸 놓치고 너무 빠르게 달리면 과거를 잊어버린다. 

지금 왜 이렇게 열심히 달리는지 잊어버린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놓치게 된다. 

그게 영혼의 파리함이다. 

 

내 영혼은 건강한가? 파리한가? 

과연 그분에 대한 감각이 계속 살아 있는가? 

그분을 느끼고 경험하게 하는 내면의 감각이 활성화되어 있는가?

그분의 음성과 표정과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잘 작동하는가? 

그분의 음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엠프와 스피커가 내면에 있는가? 

그분의 얼굴 표정에 집중할 수 있는 눈과 안경을 가지고 있는가? 

 

그분은 나와 공동체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오늘도 그분의 음성에 주목한다. 

그분의 사랑에 기대본다. 

욕조에 금이 갔다. 

몇달전부터 집안 리모델링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자꾸 미루는 나의 성격을 주님이 일깨우시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의 게으름이 나와 가족과 아랫집에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이라면 기쁘게 감당하고 싶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 일하셨던 그 모든 순간들을 잘 기억하게 하소서. 

큰 산처럼 각양 좋은 선물들을 주셨던 하나님, 

큰 독수리처럼 날개 아래로 저를 보호하시고 지키셨던 하나님,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끝까지 잘 기억하게 하소서. 

평생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소서. 

 

저의 욕망으로 저의 영혼이 파리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소서. 

제 영혼을 주님으로인해 더욱 풍성해지고, 풍요로워지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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