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11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바로에게와 이집트 땅 위에 한 가지 재앙을 더 내리겠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에서 내보낼 것이다.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에서 너희를 마구 쫓아낼 것이니,

2 이제 너는 백성에게 일러서, 남자는 이웃에 사는 남자에게, 여자는 이웃에 사는 여자에게 은붙이와 금붙이를 요구하게 하여라."

3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감을 가지게 하시고, 또 이집트 땅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이 이 사람 모세를 아주 위대한 인물로 여기게 하셨다.

4 그래서 모세가 바로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밤중에 이집트 사람 가운데로 지나갈 것이니,

5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이 모두 죽을 것이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맷돌질하는 몸종의 맏아들과 모든 짐승의 맏배가 다 죽을 것이다.

6 이집트 온 땅에서, 이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큰 곡성이 들릴 것이다.

7 그러나 이집트의 개마저 이스라엘 자손을 보고서는 짖지 않을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을 보고서도 짖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나 주가 이집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였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8 이렇게 되면,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나에게 와서, 내 앞에 엎드려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백성은 모두 나가 주시오' 하고 사정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에야, 내가 여기서 떠나겠습니다." 모세는 매우 화를 내면서, 바로 앞에서 나왔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직도 더 많은 이적을 이집트 땅에서 나타내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서 이 모든 이적을 행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바로의 고집을 꺾지 않으셨으므로, 바로가 그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않았다.

 

NIV

The Lord had said to Moses, “Pharaoh will refuse to listen to you—so that my wonders may be multiplied in Egypt.”(9절).

 

 

주석

금과 은을 구함(2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 사람으로부터 금은 패물과 옷(다른 본문들에 언급됨)을 구하라고 지시하신 것은 십중팔구 그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위해 잔치를 벌일 것이라는 개념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그런 행사 때는 장신구를 걸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며, 이스라엘 종들이 그러한 사치품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제 이집트 사람들은 재앙 때문에 절망에 빠져 있었을 것이며, 잔치를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매우 협조를 잘 했을 것이다(IVP 배경주석).

 

최후의 재앙은, 재물을 주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고 싶을 정도로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릴 것입니다(1-2절). 이집트 땅에 처음 난 것이 모두 죽을 것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받을 것입니다(5-7절). 그 후에야 바로의 신하들이 ‘나가달라’고 모세에게 사정할 것입니다(8절). 끔찍한 재앙의 예고를 듣고도, 바로는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더 많은 이적을 보이시기 위한 것입니다(9-10절).

 

마지막 재앙은 모세와 아론의 중개나 아론의 지팡이를 거치지 않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동입니다. 하나님께 끝까지 거역하는 인간 앞에 놓인 최후의 재앙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4절). 열 번째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모세를 부르셨을 때 하신 말씀(3:20-22)과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6:6)을 그대로 행하십니다. 주권자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과 뜻을 알리시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예수 안에 있는 내게 주신 구원과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실 것을 신뢰합니까?

 

[오늘의 묵상]

모세가 화를 낸다. 

하나님께 들은 재앙의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 

맏아들이 싸그리 죽게 된다. 

모든 가정이 제사를 치르게 된다. 

몇 명이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왕의 첫째 아들부터 시작해서 가축의 첫째도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런 재앙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재앙이다. 

한 마음, 한 지역이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등으로 통으로 사라지거나 멸망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별개의 가족들의 첫째 아들만 죽는다는 것은 자연현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며, 그야말로 신적 재앙이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재앙에 직면하도록 고집을 피운 파라오에 대한 분노가 모세에게 있다. 

모세는 화를 낸다. 

 

모세의 화는 생명이 죽어나갈 때까지 고집을 피우는 파라오에 대한 분노다. 

생명을 죽이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우려도 섞여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대결구도 왔지만, 모세가 통로가 되어 그렇게 많은 생명이 죽어나가는 것에 대한 아픔과 고통이 함께 섞여 있겠다. 

모세가 원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누구를 죽이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저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키고 약속의 땅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실지 꿈도 꾸지 못했다. 

파라오가 원망스럽고, 하나님도 원망스럽다. 

이런 학살에 가까운 죽음에 자신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왜 양쪽 다 고집을 꺾지 않는가? 

하나님도 너무 하신 것 아닌가? 

모세는 화를 낸다. 그것도 극심한 화를 낸다. 

 

그동안 파라오와 이집트의 집권세력들이 펼쳤던 정책은 그야말로 살인과 학살과 다름없었다. 

히브리 부부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면 죽여버렸다. 

이것은 민족 말살정책이며, 살인이며, 학살이었다. 

이제 그 잘못에 대한 벌을 받는다.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사람들을 광야로 보내지 않으면, 그 끔찍한 죄에 대한 끔찍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고집을 피운다는 사실이었다. 

9개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았고, 그 와중에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했지만, 여전히 파라오는 고집을 피운다. 

모세의 경고에도 꿈쩍이지 않는다. 

모세를 죽이지 않았다는 점이 의아하긴 하다. 

죽이겠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는가!

나 같으면 이판사판,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뛰어들어 모세와 아론을 죽였을 것 같은데, 그건 하지 못한다.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재앙을 고스란히 당하고만다. 

어리석은 것인가? 아님 어떤 자신감이 생긴 것인가? 

 

계속된 재앙에 대한 묵상이 내 맘과 몸을 무겁게 만든다. 

고집피우는 인간의 죄악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10가지 재앙이 가지는 효과와 의미를 알고는 있지만,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하는 의문도 올라온다. 

인간이 처한 상황이 이토록 고통스럽다니… 참 괴롭다. 

악한 권력구조가 가져다주는 이런 비참함에 참담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평범한 인간들의 딜레마가 괴롭다. 

재앙을 내리는 선두에 선 모세의 상황도 안쓰럽다. 

왜 그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았는지 이해가 된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슬픔이 더욱 깊어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매일 매일 치고 올라온다. 

몸과 마음이 아파 일상이 버겁다. 

나도 화가 난다. 

모세의 화가 전이된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이 상황… 화가 난다. 

인류의 참담한 상황에 화가 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은 이상하게 화가 납니다. 

마음 속에 알지 못하는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무력한 인간인 제 모습이 안따깝고 화가 납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인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을 구해주시고, 이재민들을 살려주소서. 

위기에 빠진 인류와 지구를 살려주세요. 

당신의 계획을 실행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08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서,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죄를 지었다. 주께서 옳으셨고, 나와 나의 백성이 옳지 못하였다.

28 너는 주께 기도하여, 하나님이 나게 하신 이 천둥소리와 하나님이 내리신 이 우박을 그치게 하여 다오. 내가 너희를 보내겠다. 너희는 더 이상 여기에 머물지 않아도 괜찮다."

29 모세가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성을 나가는 대로, 나의 손을 들어서 주님께 빌겠습니다. 그러면 천둥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온 세상이 우리 주님의 것임을 임금님께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30 그래도 임금님과 임금님의 신하들이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31 이 때에 이미, 보리는 이삭이 나오고, 삼은 꽃이 피어 있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모두 피해를 입었다.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이삭이 팰 때가 아니었으므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

33 모세는 바로 앞을 떠나서, 성 바깥으로 나갔다. 그가 주님께 손을 들어 기도하니, 천둥소리와 우박이 그치고, 땅에는 비가 더 내리지는 않았다.

34 그러나 바로는, 비와 우박과 천둥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서도, 다시 죄를 지었다. 그와 그의 신하들이 또 고집을 부렸다.

35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말씀하신 대로, 바로는 고집을 부리며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않았다.

 

주석

우박의 피해(31-32절) 우박은 사람과 짐승뿐만 아니라 농작물도 파괴한다. 본문에는 어떤 농작물이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는데, 그로 보건대 때는 1월이나 2월이었을 것이다(IVP 배경주석). 

 

바로는 처음으로, 죄를 지었다는 것과 주님이 옳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어서 우박 재앙을 멈추어 달라고 요청합니다(27-28절). 모세는 바로의 진정성 없는 회개에 반응하기보다 ‘온 세상이 주님의 것’임을 알리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따라, 우박 재앙을 멈춰달라고 기도합니다(29-30, 33절). 우박 재앙이 그치자, 바로는 다시 죄를 짓고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습니다(34-35절).

 

반복되는 바로의 고집스러움, 변덕, 거짓을 대면해온 모세의 심정이 어떠할지 묵상해 봅시다. 겉과 속이 다르고, 고집불통인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거북하고 지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날 때, 불편해진 감정으로 반응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반응하며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온 세상 주님 되신 하나님”이라는 찬양이 있다. 

오랫동안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찬양이었다. 

단순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그저 감격이었다. 

교회 안에서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주일 하루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전 세계의 온 영역의 하나님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따르겠다고 고백했던 때가 기억이 난다. 

하루 종일 감격에 겨웠다. 

이 찬양을 부르며 나 혼자 그렇게 벅찬 가슴으로 살았던 시간이 새삼 떠오른다. 

 

파라오는 하나님의 우주적 능력에 대해 인식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죄를 지었다는 고백까지 했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 우박을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회개는 회심이 아닌 그저 상황 모면 용, 면피 용이었다. 

당장의 상황만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7번째 재앙을 경험하면서, 바보가 아니라면 학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계속 강도가 높아지는 것을 볼 때, 만약 다음 재앙이 온다면 그것은 우박보다 더 심한 것이 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파라오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다. 

다시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대체 파라오 주변에는 제대로된 책사, 참모, 신하가 없단 말인가? 

이게 무슨 일인가?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다. 

잘 못인 줄 뻔히 알면서, 호랑이 굴인지 뻔히 알면서, 죽을 줄 알면서 그 길을 걸어간다. 

무슨 순교도 아니고, 이상향을 위한 자기 헌신도 아니고, 타인을 위한 희생도 아니다. 

고집이다. 자존심이다. 

이렇게 고집 센 사람 곁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숨을 죽인다. 

아무도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 

 

현실의 누군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대통령이라면 고집을 피우기보다 전체 국민의 삶을 위해 헌신하고 섬기는 것이 맞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듣기에 이리도 어리석은 판단과 결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란이 아랍에미리트의 적이라느니, 탈중국을 하겠다느니 등의 발언이 미치는 파장을 왜 계산하지 않는가!

역대급 적자를 기록하고, 물가는 치솟고, 경제는 망가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국민의 힘 당대표 선거에 왜 그리도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

대통령의 자리를 고집피우는 자리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애가 끓는다. 

경제가 곤두박질치면 결국 경제적 약자들은 죽음의 지름길로 접어든다. 

삶을 포기하지 말도록 국가가 힘을 써야 한다.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대로 된 보수 정권을 경험하고 싶다. 

기분좋게 선택할 수 있는 보수 정당을 우리도 한 번쯤 갖고 싶다. 

이건 보수가 선택하는 판단들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야 한다. 

 

본문의 재밌는 표현은, 34절에 나온다. 

“그와 그의 신하들이 또 고집을 부렸다”이다. 

파라오 혼자 고집을 피운 것이 아니었다. 

신하들도 똑같다. 왕을 닮아 신하들도 한 고집한다. 

나라를 엉망으로 만드는 주범은 최고 권력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든 정보와 모든 권한을 가지고 나라를 좌지우지한다. 

재정권과 인사권을 가지고 사람들을 주무른다. 

종교적 권력과 사법적 권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이집트 백성들을 죽이고 있다. 

자신들의 고집이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 도구며 살해 의지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저 노예를 해방하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고집을 피운다. 

 

제대로된 참모를 두라. 

반대할 수 있는 친구를 두라.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직원을 두라. 

그래야 나도 살고, 공동체도 살고, 더 크게는 하나님 나라도 산다. 

 

 

[오늘의 기도]

온 세상 주인 되신 하나님, 

저의 고집을 꺾어 주소서.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소서. 

그런 분별 속에서 혹시라도 주변의 누군가를 통해서 말씀하신다면 그것을 잘 파악하고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쓴 소리하는 사람들을 옆에 두게 하시고, 때로 하나님의 음성이 그를 통해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게 하소서. 

독단, 아집, 고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시고, 주님의 뜻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 나라를 보호하소서.

정치가 시민들을 살리고 미래 세대를 잘 키우는 데 선용되기 원합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지진으로 인해 고통받는 국민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한 생명이라도 구출해 주시고, 남은 자들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1월 21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 그 뒤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하셨습니다."

2 그러나 바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주가 누구인데, 나더러 그의 말을 듣고서,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주를 알지도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도 않겠다."

3 그들이 말하였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을 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무서운 질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 것입니다."

4 이집트의 왕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들어라. 너희는 어찌하여 백성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느냐? 어서 물러가서, 너희가 할 일이나 하여라."

5 바로가 말을 이었다. "그들이 이집트 땅의 백성보다도 더 불어났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들이 하는 일을 중단시키려 드는구나."

6 바로는 그 날로, 이스라엘 백성을 부리는 강제노동 감독관들과 작업반장들에게 명령하였다.

7 "너희는 벽돌을 만드는 데 쓰는 짚을 더 이상 이전처럼 저 백성에게 대주지 말아라. 그들이 직접 가서 짚을 모아 오게 하여라.

8 그러나 벽돌 생산량은 이전과 같게 하여라. 만들어 내는 벽돌의 수가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게을러서, 그들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하면서 떠든다.

9 그들에게는 더 힘겨운 일을 시키고, 그 일만 하게 하여서,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여라."

 

주석

그 주가 누구인데(2절) 바로는 모세와 아론, 특히 하나님을 향해 철저한 모욕을 드러냈다. ‘여호와가 누군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여호와’를 아는 주제가 이후의 장들에서 빈번하게 되풀이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IVP 성경주석).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주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지만, 바로는 그 ‘주’가 누구냐고 모욕하며 비꼽니다(1-2절). 모세는 바로의 거절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지만 쫓겨나고 맙니다(3-4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전보다 더 강도 높은 노역을 시키도록 명령합니다(6-9절).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무능함 사이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넘어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갖고 바로에게 당당하게 나아갔지만, 강력한 반대를 마주합니다.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다가 강한 반대에 직면한 적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내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파라오는 역시 왕이었다. 

왠만한 말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 신이라고 여기고 있다. 

수 많은 신들이 있는데, 도대체 어떤 신이 자신들의 노예를 데려간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신이 신전을 짓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을 데려간단 말인가? 

납득하기 어렵다. 

안그래도 인구가 늘어 산아제한 정책을 펴기도 하고, 노동 강도를 높여 가며 통제하고 있는데, 

그들이 광야에 나아가 몇십만명이 집회를 가지면, 그동안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성토 대회를 가지면, 

그 위력과 위협이 얼마나 클 것인가? 

파라오 입장에서는 결코 허락해 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모세와 아론이 뭐기에… 

모세는 왕궁에 있었던 히브리 사람이지만, 과거에 살인을 저질러 광야로 도망친 작자 아닌가? 

아무런 권세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와서 몇십만명의 노동자들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하니, 이건 미쳤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파라오 입장에서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이 두 사람을 없애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집트의 왕은 역시 파라오였다. 

 

파라오는 묻는다. 

도대체 그 주가 누구냐고. 

도대체 히브리 백성을 끌고 나오라고 말하는 신이 누구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신의 명령을 들을 리 만무하다. 

도리어 더 강력한 노동명령을 내린다. 

노동강도를 더 높여서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도록 강경책을 구사한다. 

모세와 아론의 말들이 파라오의 화를 돋구었다. 

 

상황은 더 악화일로다. 

자칫하면 파라오의 근위병에게 잡힐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소식을 접하면 모세와 아론에게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박해고 고난이다. 

상황을 타개할 만한 일들이 보이지 않는다. 

며칠 동안 모세와 아론이 겪었을 고통이 눈에 들어온다.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가족들은 챙길 여력이 없다. 

상황을 통제하기 어렵다. 

겨우 몸을 일으켜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대로 진행하려고 해도, 모든 일이 다 수월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꼬이고, 사람들의 마음도 묶인다. 

꿈과 비전을 말하고, 미래의 소망을 말해도 꿈쩍도 안한다. 

도리어 비난과 비판이 난무하고, 인신공격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왜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 어렵고 힘든 길을 제시하는지 묻는다. 

마음이 떠나고 몸도 떠난다. 

공동체가 와해되고 하나됨이 무너진다. 

갈등과 긴장이 증폭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진다. 

한 팀이 되어야 할 사람들끼리 와해되고 분열되어 산산히 흩어진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도 왜곡되고 저 운악산 꼭대기에 버려진다. 

 

그런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계속 말할 수 있는가? 

과연 하나님의 뜻이란 것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겠는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혹시 잘못된 것이라고 회의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헬륨 풍선처럼 북녘으로 사라진다. 

 

절망의 순간, 실패의 순간, 비통의 순간, 원망의 순간. 

우리 인간이 겪는 삶의 많은 부분이 이런 순간들이다. 

기대가 낭패가 되고, 소망이 원망이 되며, 비전이 허상이 된다. 

포기하고 싶어진다. 

원래도 그렇게 예상했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예상했었고, 그 중에 하나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 원망의 마음이 돌아간다. 

왜 나를 부르셨나? 왜 나를 이곳으로 이끄셨나? 

모든 것이 그분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날이 있다. 

그런 일주일이 있다. 

그저 그럴 때는 그냥 있어야 한다. 

그분이 일하시길 멍하니 쳐다본다. 

하늘이 조율해 주시길…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길… 

기도의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흩어졌던 꿈들이 다시 모이기를 바라며 운악산 정상을 쳐다본다. 

 

 

오늘 본문에서 도출할 수 있는 사실과 적용이다. 

 

1. 세상은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 파라오는 일의 관점에서만 히브리 백성들을 대한다. 

- 모세와 아론에게도 너희가 할 일이나 하라고 말한다. 

- 노동강도를 더 높여서 다른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 원래도 그랬지만, 당시에는 안식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 

-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 예배드리는 그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려고 한다. 

- 공동체적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한다. 

 

3. 한 번의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마라. 

- 파라오에게 한 번 협상해서 실패했다고 그것이 실패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 원래 큰 일일수록 오랜 걸리는 법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라. 남북의 통일은 아직도 달성되지 못했다. 

- 실패로 여길 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으로 전환하라. 

 

구정이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세상의 효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관점에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자. 

그리고 실패의 순간에도 절망하지 말고 다시 그분의 일하심을 기대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새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 명절을 통해 새해를 다시 시작하게 하시고, 

새로운 다짐들을 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세상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지 않게 하시고, 

예배드려야 살 수 있는 예배자의 관점으로 보게 하소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을 때,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처량한지 알게 하소서. 

주님, 세상의 변화가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임을 알게 하소서. 

그 올바른 관계에서 올바른 변화가 일어남을 믿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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