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20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석]

7절. 경건한 유대인은 세리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의 음식을 먹는 것을 몹시 싫어했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8절. 그가 약속한 배상은 바리새인의 율법에서 규정한 양보다 훨씬 많았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사람들이 수군댄다. 

그 소리가 삭개오(스가랴_히브리말)에게도 들린다. 

오랫동안 수군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살았다. 

대놓고는 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한쪽 구석으로 가서 말한다. 

‘저놈은 민족의 배신자야. 죄인이야’

안들리게 말한다고 하지만 다 들린다. 

사람들이 모여서 말할 때마다 신경쓰인다. 

그들은 삭개오를 비난하고 정죄한다. 

어쩔 수 없다. 

그게 그의 직업이다. 

먹고 살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벌써 많이 들었다. 

그가 죄인들의 친구라는 소문도 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세리도 있다더라. 

어린 아이, 창녀, 과부, 여인들… 그야말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이 많은 분이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병도 고쳐주셨고, 귀신들린 사람들도 낫게 하셨단다. 

점점 사람들이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삭개오, 즉 스가랴(깨끗한, 무죄한 -> 의로운 사람)도 관심이 갔다. 

자신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놀림받는 것 같다. 

'결백이는 죄인이야.’

이름과 반대되는 서술어가 붙는다. 

자신의 이름과 반대되는 삶이다. 

그런데 이런 죄인들과도 식사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신단다. 

한번 꼭 보고 싶었다. 

 

어렵게 예수님을 보았다. 

키가 작은 것이 언제나 콤플렉스였다.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언제나 소외되었다. 

세리장이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대로 구경을 못해서기도 하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매번 물어봐야 하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고… 

직접 봐야 하는데, 키가 작으니 보이지도 않고…

애처롭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나무에 올라가 앉는 것이다. 

나이들어 체면이 구기지만, 그래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예수님의 얼굴만이라도 제대로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죄인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구원하신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될 터다. 

 

예수님이 스가랴를 보셨다. 

나무에 올라가 있는 세리장에게 다가가신다. 

그리고 내려오라고, 너의 집으로 가자 하신다. 

무슨 일인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얼떨떨하다. 

집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를 준비하는데, 또 수군댄다. 

‘죄인인 결백이의 집에 예수님이 있대.'

‘결백이는 죄인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거기에서 식사를 하실 생각을 하시지?’

진절머리 나는 저들의 뒷담화.

하지만, 수군대는 소리는 점점 뒤로 흩어지고, 예수님의 얼굴만 부각된다. 

그리고 그분이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기 시작한다. 

 

감사는 곧바로 반응으로 이어진다. 

소유의 절반, 강제로 뺏은 것은 4배로 갚겠다는 결심을 피력한다.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 

오랫동안 해결하고 싶었다. 

정말 결백이가 되고 싶었다. 

죄인이라고 몰아세우는 사람들 앞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죄인을 구하러 오신 분, 이 분 앞에서 결심을 말하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예수님은 구원에 대해 말씀하신다. 

결백이의 집에 구원이 임했다. 

원래 스가랴는 유대 사람이었지만,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손가락질 했었다. 

그러나 이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스가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해 주셨다. 

진정 예수님은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라 오신 분이시다. 

 

자격없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배척받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그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다. 

자신의 자격으로 으시대던 사람들은 부끄럽다. 

지금도 예수님은 스스로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더 극적으로 다가가신다. 

스스로 자격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우회적으로 그들의 교만을 깨닫게 하신다. 

그걸 깨닫는 자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나의 교만을 직시하고 주님의 깊은 뜻에 감탄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스스로 부족하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을 새롭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의 자녀 삼으시고, 당신의 제자로 만들어 주소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6월 08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27 그 뒤에 예수께서 나가셔서,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28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많은 세리와 그 밖의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서, 그들과 한자리에 앉아서 먹고 있었다.

30 바리새파 사람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불평하면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

31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ESV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32절)

 

주석

세리(27절) ‘세리’는 로마인을 위해서 일했기 때문에 바리새인은 그들을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했으며, 그들이 동족 유대인을 착취해서 자기들 주머니를 채웠기 때문에 증오의 대상이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레위 

마태라고도 하는 세리 레위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특히 이상하다. 

예수님이 따라오라는 단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간 인물이다. 

세관에 앉아 있다는 말은 업무 중이라는 말이다. 

로마에 복역했지만, 그만큼 직업 안정성이 뛰어나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자리다. 

똑똑해야 하며, 처신을 잘 해야 한다. 

비록 동족들에게는 미움을 샀지만, 그렇다고 그 선을 너무 넘으면 척결 대상 1호가 되니, 선을 잘 지켜서 처신해야 했다. 

로마 관원들에게도 밑보이지 않아야 한다. 

동족들에게도 적당히 봐주기도 하면서 나름의 관계맺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직장에서 일하다말고 예수님이 부르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예수님만 초대한 것이 아니다. 

다른 세리들, 그리고 다른 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초대했다. 

거대한 잔치가 마련되었다.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을 나눠주고, 누군가에게 빼앗은 경우에 4배나 갚겠다고 했던 것은 아마도 레위에 영향이었을 것이다. 

레위는 예수님이 좋았다.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드시는 것과 쉬시는 것이 맘에 들었다. 

다른 세리들도 즐거워했다. 

소위 메시아라는 분이 자신들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레위 근처에는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된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가 같이 했다. 

어부들은 세금을 바치는 사람들이었고, 레위는 세금징수자였다. 

어색하지만 그들은 이제 함께 있다. 

큰 무리가 모여서, 집 안팎에 자리를 잡고 서로 웃고 떠들면서 잔치를 벌인다. 

잔치에는 포도주가 빠지지 않는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만 포도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잔치를 벌일 때마다 포도주가 가득했다. 

특히 레위는 세관원으로서 부자이기도 했고, 때로 포도주로 세금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고급 포도주가 나올 때마다 이곳저곳에서 환호가 쏟아진다. 

잔치 자리에서는 예수님도 흥겹게 즐기셨다. 

사람들을 치료하시는 일은 잠시 쉬었다. 

예수님을 만나러 왔던 사람들 중에는 얼떨결에 잔치에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새롭게 예수님의 제자가 된 레위에 대해 의아해하면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고 여겼다. 

세리가 회개하여 새로운 메시야 운동에 제자가 된 것이다. 

 

2.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함께 잔치 자리에 있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점점 불편해졌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죄인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세리는 죄인이었다. 

동족들을 팔아 넘기는 죄인. 

이스라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앞잡이. 

세리나 창녀는 로마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이다. 

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경멸했던 바리새인들은 메시아라고 불리는 예수가, 그것도 자신의 입으로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했다고 말하고 다니는 예수가, 죄인들을 멀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마뜩치않았다. 

불평했다. 

예수님에게 대놓고 불평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의 첫 제자 4명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약간 들리게 말한 것 같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 

제자들에게 말했지만, 예수님에게도 들렸다. 

그리고 잔치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죄인”, 이 단어를 듣자마자 시선이 쏠렸다. 

모두 그 단어에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사실 죄인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숨을 죽이는 사람도 있고, 씩씩거리는 사람도 있다. 

남의 잔치에 와서 흥을 다 깨고 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의 말소리를 듣고, 조금 큰 소리로 대답하신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예수님의 말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반박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바리새인들은 꼬리를 내린다. 

자기가 그런 소명을 가지고 왔다면, 받아들일 일이다. 

바리새인들 기준에서, 그런 소명을 가진 사람은 메시아일 리가 없다고 결론 지으면 그만이다.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다라고 결정하고 원래 하던 일이나 하러 가면 된다. 

남의 잔치 자리에서, 술이 거하게 들어간 자리에서, 괜히 더 싸움만 커지면 자신들에게 손해다. 

바리새인들 고정관념엔,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신다. 

노아나 욥이나 당대에 의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인들을 그저 제거해버리는 분도 아님을 알고 있었다. 

예수라는 작자가 죄인들, 병든 사람들을 위해 왔다고 하면, 그건 좋은 일이다. 

세리나 창녀 같은 죄인들이 회개해서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된다면, 그래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교 중심으로 들어오다면 그건 바리새인들 입장에서 완전 땡큐다. 

그러니 그건 그대로 넘길 일이다. 

다만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만 부정하면 된다. 

 

문제는 예수가 계속 자신을 메시아라고 하면서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건 용납할 수가 없다. 

이 자리에서는 한 발 물러서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나 볼 일이다. 

메시아는 하나님 앞에 흠없는 존재로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하나님 나라로 세워가야 한다. 

과거 다윗이나 솔로몬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 

오랜세월 주변 강대국에게 먹혀 하나의 나라 구실도 못하게 된 이 시점에, 거룩한 메시아가 등장해서 예언을 성취하고 이스라엘 부귀영화를 가져다 주어야 한다. 

그런데 죄인인 레위 같은 사람과 어울리면서 메시아라고 주장한다고!! 

기가 막힐 일이다. 

 

이 지점에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의 차이였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사회적 낙인자들을 모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삼는 것이다. 

죄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의 제자, 통치자로 서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베드로는 아주 멋진 고백을 했다. 

바로 자기 스스로 죄인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중심에 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명받아 회개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 

베드로도 그렇고 레위도 그렇고… 죄인들이 회개하여 제자가 된다. 

 

죄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운동에 지분이 없다. 

베드로, 마태, 바울 모두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죄인이었다. 

원죄의 교리를 굳이 들이대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러니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자신의 욕심대로, 욕구대로, 바램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 

마음을 고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들로 만드신다. 

마음을 회복시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만드신다. 

의사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을 기억한다. 

의사이신 그분께 내 마음의 수술을 맡긴다. 

내 마음을 고치시고 새롭게 해주셔서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살게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의사로 오신 예수님, 

제 마음을 고쳐주세요.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사랑하는 존재로 성장하게 해 주세요. 

마음은 언제나 탈이 납니다. 

단순히 여러 감정을 느끼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발하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무기력해지고, 무심해집니다. 

주변의 어떤 요구에도 반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님, 오늘도 저의 마음을 고쳐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