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08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1 주님께 감사드려라. 그는 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3 동서 남북 사방에서, 주님께서 모아들이신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4 어떤 이들은 광야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며, 5 배고프고 목이 말라, 기력이 다 빠지기도 하였다. 6 그러나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셔서,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8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9 주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에게 을 실컷 마시게 하시고, 배고픈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해주셨다.

 

ESV

Let them thank the Lord for his steadfast love, for this wondrous works to the children of man!(8절)

 

주석

구속의 사랑(2절) 이 시 전체를 통해 언급되는 ‘인자하심’은 자신을 위해 선택하신 자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실 여호와의 헌신적이고 변치 않으며 사랑 많은 결의를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주님의 인자하심은 그가 선택하신 이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구원의 사랑입니다(2절). 주님은 변치 않는 사랑으로 광야에서 굶주리고 지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이들을 구원하시고, 길을 잃어 헤매는 이들을 바른길로 걷게 하십니다(4-7절). 그것은 그 백성의 고통에 찬 부르짖음에(6절), 주님이 신실하게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2절). 시인은 이러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감사하며 주님을 높입니다(8절). 

 

광야 같은 삶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도 합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이라는 경제적 문제, 방황과 무기력이라는 마음의 문제가 우리를 절망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부르짖음에 신실히 응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구원의 손길이 이 세상의 고통의 현장에 임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시편의 말씀은 달콤하다.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예수님에 대한 신약의 저자들의 인식과 매우 유사하다. 

하나님은 대적의 손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광야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도우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물과 먹을 것을 공급하신다. 

우선적으로 출애굽 상황이 그려진다. 

이집트 군대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셨다. 

광야에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다. 

시내산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과 교제하셨다. 

바위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백성들을 먹이셨다. 

출애굽의 상황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시인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사실 시편의 저자라고 불리는 다윗의 삶이 이런 삶이었다. 

사울이라는 대적자로 인해 고난을 당했다. 

갈 길을 몰라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춥고 배고프고 먹을 물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구원하셨으며, 그러하기에 그는 찬양을 그치지 않았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런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도 재현된다. 

백성들을 사단의 손에서 구출하신다. 

갈 길 몰라 방황하던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그들에게 사명을 맡기신다. 

먹을 물을 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신다. 

그분은 구약의 하나님을 빼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인간들 대신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신 사건이다. 

누군가는 십자가 위에 하나님의 분노가 쏟아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바, 나무에 달린 사람은 저주를 받은 것이다. 

신명기 21장에서도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사야에서 예언하기를, 하나님은 그에게 인류의 죄를 담당시키셨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이사야 53:6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오래된 저주를 담당하셨다. 

그것은 신학적 진술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시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고 계신 것은 아니다. 

억지로 부들부들 떨면서 주체할 수 없는 화를 십자가 위에 쏟아붓고 계신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그것은 오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랑을 사람들에게 확증하기 위해(로마서5:8) 십자가를 사용하셨다. 

다른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었다. 

도리어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신할 뿐이었다. 

온갖 좋은 것으로 제공하고, 먹을 것을 주고, 마실 물을 주고, 땅과 그 소산을 주고, 평화롭게 살게 해도, 결국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의 길을 갈 뿐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는 사람은 너무 드물며, 그나마 완전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모두들 하나님을 실망시켰으며,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에 실패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아는 것에는 반나절이 걸리지 않는데, 그분이 사랑스러운 분으로 아는 데는 인생 전체가 걸려도 쉽지 않았다. 

하나님의 최후 수단, 오랫동안 남겨 두었던 그 수단은 바로 자신이 사람들을 대신 해서 죽음으로써, 사람들이 져야할 저주와 죄의 징벌을 대신 받음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는지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래야 사람들은 바뀔 것이다. 

그래야 성령님은 더 자유롭게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할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성령님의 활동 환경을 우호적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강력한 작동이었다. 

십자가 덕분에 사람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함을 배우고 느끼고 경험했다. 

십자가 덕분에 성령님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유로이 넘나들며 역사하시기 시작하셨다.

성령님은 자신을 의지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반대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시기가 어려운 분이시다. 

성령님은 민감하시고 예민하신 분이시면 사람들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 속에서 굳이 적극적으로 일하시지 않으신다. 

그만큼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하시며, 대리통치자였던 사람들의 위치를 귀하여 여기신다. 

성령님은 당신을 우호적으로 초대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일하신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이 형성되는 것이다.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갖고 성령님을 적극적으로 초대하여 그분의 도우심과 인도를 받는 새로운 존재 말이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말이 여기서 진실이 된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님의 영향에 마음을 열고, 그분의 인도 받기를 즐겨한다. 

쾌락에 노예가 되지 않고, 영적인 것을 추구한다.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바로 그것이다. 

지식도 논쟁도 그친다. 

그분의 사랑이 남아 나를 이끄신다. 

일상의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관심이 눈에 들어온다. 

성령님의 섬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영적인 세계의 문을 연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면 더욱 더 찬양이 깊어진다. 

선하고 인자하심이 영원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찬양하게 된다. 

그렇게 찬양을 선포한다. 

 

[오늘의 기도]

십자가에서 당신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보여주신 하나님, 

저주와 진노 이전에 하나님은 사랑으로 가득하신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저는 믿습니다. 

그 사랑에 기대어 주님께 찾아갑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더욱 필요합니다. 

사람의 말보다 필요한 것이 당신의 도우심입니다.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도우심으로 채우소서. 

 

소통을 위해 말하라고 재촉합니다.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는 당신의 손길입니다. 

저를 통해 당신의 손길이 느껴지도록 인도하소서. 

 

섬세하신 성령님, 

당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싶습니다.

수 많은 쾌락의 유혹들에 귀기울이지 않고 오직 당신의 음성과 사랑에 기대고 싶습니다. 

주님, 다른 것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주님으로 제 마음을 채워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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