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07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1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12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4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15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알고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16예수께서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라부니!하고 불렀다. (그것은선생님!’이라는 뜻이다.)

17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18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마리아에게 천사들은 우는지 묻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고, 어디에 있는지 없다고 대답합니다(11-13). 마리아가 찾던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지만, 그는 동산지기로 생각하여 예수님의 시신의 행방만을 묻습니다(14-15). 마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익숙한 음성을 듣고 나서야 예수님이신 것을 깨닫습니다(16).

 

주님은 자신을 붙잡고 있으려는 마리아에게, 형제들에게 가서 자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전하라고 하십니다(17).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것과 예수님께 들은 말씀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18). 예수님의 부활은 슬픔과 절망에 있던 마리아에게 기쁨과 소망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어떻게 다가옵니까?

 

——

기쁨의 탄성, 라부니

 

1. 천사들의 위치 

오늘 본문엔 질문거리가 많다. 12절에 등장하는 천사들의 위치가 의아하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천사들은 무덤 속에 있는가? 천사들 명은 예수님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명은 발치에 있었다. 이렇게 앉아 있는가? 굳이 다르게 앉아 있을 이유가 있는가? 그렇게 넣은 장소도 아닐 텐데, 이렇게 자리를 잡은 것이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 

 

순전히 추측을 해본다. 주석들을 찾아보는 노력과 열심을 기울이지 않고, 기존 정보와 상상을 통해 추측해 본다. 

아마도 예수님의 삼베옷과 머릿수건을 벗겨 가지런히 개켜 놓은 존재가 천사들이 아니었나 싶다. 천사는 예수님의 머릿수건을 벗겨냈다. 다른 천사는 예수님의 삼베옷은 목에서부터 발까지 걷어냈다.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도운 존재들이 바로 천사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다시 찾아 달려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명확하게 증언한다. 자신들이 시신을 감싸는 옷들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부활의 첫번째 증인이었으며, 그것도 명이나 되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베드로나 요한도 열심히 달렸지만, 어제 오늘 본문의 사건 전개를 재구성하면, 막달라 마리아도 상당히 많은 거리를 열심히 달렸다. 제일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가서 사실을 알렸으며, 베드로와 요한이 열심히 달려가던 길을 쫓아 다시 무덤에 도착했고, 베드로와 요한이 시신 도난 사건에 대해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혼자 남아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11). 그러다가 던지시 무덤 속을 쳐다본 마리아는 깜짝 놀라게 된다. 천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절실하다. 새벽녘 마리아의 울음을 상상한다. 슬픈 울음 소리에 천사들이 등장한 것이다. 마리아의 슬픔에 대한 반응이었다. “여자여, 우느냐?”(13)

 

2. 라부니

결국 베드로도 요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제자들이 아니었다. 제일 처음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무덤 밖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던 그였다. 천사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도 함께 계셨다(14). 슬픔과 눈물에 젖어 있었던 마리아는 그토록 애정하던 예수님을 눈에 알아보지는 못했다. 설마 예수님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던 며칠 전에 로마의 병정이 옆구리를 찌르던 모습을 보았던 , 몰약과 침향을 바르던 모습을 지켜봤던 , 돌무덤에 가두고 돌로 막던 모습을 봤던 , 마리아는 도저히 상상할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수님이 마리야를 부르신다. “마리아야”(16). 

마리아야그의 이름을 부르신다. 

부르심에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다정하고 위엄있고 따뜻하고 권위있는 음성이 들린다.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의 목소리, 어투였다. 

그제서야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본다.

라부니”, “선생님

목숨을 눈물에 그는 보답을 받았다. 가장 처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라부니라고 부를 있었다. 

 

3. 부활체

오늘 본문에서 가장 궁금한 하나가 17절이다. 

 

17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사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제자들을 찾아 만날 때, 예수님은 도마에게 자신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보라고 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는, 마리아 때는 안되고 도마 때 되었다면, 사이에 아버지께로 올라가셨단 말인가? 부활하시자마자는 아직 아버지께로 가시지 않았지만, 곧바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제자들을 만나신 것으로 정리할 수는 있겠다. 

 

그렇게 정리는 되지만, 쉽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승천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쉽게 일어날 있는 일인가? 아님 승천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통해서인가? 

여튼 질문이 많아지는 구절인 것은 확실하다. 

 

질문과는 별개로, 마리아가 예수님을 와락 끌어 안으려고 했다는 데에 만원을 걸겠다. 

애정하던 예수님을 실제 다시 보았다. 

그토록 찾고 바라던 예수님이 눈앞에 살아서 계신 것이다. 

손이라고 잡고 싶었다. 감동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슬픔의 눈물이 감동의 눈물로 더욱 강하게 흐른다. 

제자들과는 비교할 없을 정도의 드라마다. 감정의 곡선이 요동친다. 

 

예수님을 경험하고 싶다. 

더욱 그분을 사랑하고 싶다.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꾸시는 그분을 오늘 만나고 싶다. 

 

——

예수님, 나의 라부니,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여주셨던 드라마를 저에게도 보여주세요. 

슬픔으로 가득찬 시공간 속에서도 오직 주님을 바라보게 도와주세요. 

 

미얀마의 시민들이 결국 수류탄을 던지게 되었답니다. 

내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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