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28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지휘자를 따라 소산님에 맞추어 부르는 고라 자손의 노래, 마스길, 사랑의 노래]

1 마음이 흥겨워서 읊으니, 노래 가락이라네. 내가 왕께 드리는 노래를 지어 바치려네. 나의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다네.

2 사람이 낳은 아들 가운데서 임금님은 가장 아름다운 , 하나님께서 임금님에게 영원한 복을 주셨으니, 임금님의 입술에서는 은혜가 쏟아집니다.

3 용사이신 임금님, 칼을 허리에 차고, 임금님의 위엄과 영광을 보여주십시오.

4 진리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전차에 오르시고 영광스러운 승리 거두어 주십시오. 임금님의 오른손이 무섭게 위세를 떨칠 것입니다.

5 임금님의 화살이 날카로워서, 원수들의 심장을 꿰뚫으니, 만민이 임금님의 아래에 쓰러집니다.

6 하나님,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무궁토록 견고할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는 정의의 통치입니다.

7 임금님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임금님의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주셨습니다. 임금님의 벗들을 제치시고 임금님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8 임금님이 입은 모든 옷에서는 몰약과 침향과 육계 향기가 풍겨 나고, 상아궁에서 들리는 현악기 소리가 임금님을 흥겹게 합니다.

9 임금님이 존귀히 여기는 여인들 가운데는 여러 왕의 딸들이 있고, 임금님의 오른쪽에 있는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단장하였습니다.

10 왕후님!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왕후님의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

11 그리하면 임금님께서 그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임금님이 그대의 주인이시니, 그대는 임금님을 높이십시오.

12 두로의 사신들이 선물을 가져오고, 가장 부유한 백성들이 그대의 총애를 구합니다.

13 왕후님은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고, 구중 궁궐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니,

14 오색찬란한 옷을 차려입고 임금님을 뵈러 때에, 뒤엔 들러리로 따르는 처녀들이 줄을 지을 것이다.

15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안내를 받아, 왕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16 임금님, 임금님의 아드님들은 조상의 뒤를 이을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들을 세상의 통치자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17 내가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님의 이름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겠사오니, 그들이 임금님을 길이길이 찬양할 것입니다.

 

왕과 왕후의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소개하며(1절), 신랑이신 왕을 입장시키고 왕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와 그의 영광을 선포합니다(2-8절). 이어서 신부인 왕후를 입장시킵니다. 왕후에 대해 권면하면서 신부의 영광과 그 옷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9-15절). 그리고 왕의 왕조가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며 신랑 신부를 축복합니다(16-17절).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신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신부로 해석하여 왕의 혼인 잔치를 이해했습니다. 우리도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 되는 교회의 연합으로 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부인 우리는 신랑이신 주님만을 높이며 그분의 주인 됨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에 살던 세상 집을 떠나, 신랑이 다스리는 그의 나라에 대해 듣고 생각해야 합니다.

 

——

 

가지 질문이 생긴다. 

시인은 어떤 임금을 지칭하고 있는가? 

얼필보면 다윗 왕을 지칭하는 같기도 하고, 솔로몬 같기도 하다. 

다른 왕인가? 고라자손'이라고만 하면 시대를 특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내부의 내용만으로 임금이 누구인지 특정하기도 쉽지 않다. 

 

시심의 해설을 참고할 , 왕과 왕후의 결혼식에 부르는 축하 노래라고 한다면, 더욱이 시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위대하지 않더라도 왕과 왕후를 칭송해야 함이 옳겠다. 

그러니 더더욱 왕이 누군지 알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시를 통해 있는 것은 왕의 이상적인 역할과 왕후의 이상적인 태도일 것이다. 

 

4 진리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전차에 오르시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어 주십시오. 임금님의 오른손이 무섭게 위세를 떨칠 것입니다.

 

시인은 이상적인 왕의 모습으로 진리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전장터에서 전차를 타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왕은 전사여야 하다.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임금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왕이어야 한다.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존재여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행위다. 

현실 정권의 통치자는 하나님의 성품인 정의를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이 극도로 싫어하시는 악에 대해서는 거부해야 한다. 이것이 임금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왕후, 왕비는 어떠해야 하는가? 

왕비는 자신이 알고 있었던 삶의 패턴과 자기 가족의 정신을 버리고 왕가의 삶의 패턴과 정신을 배워야 한다. 

세계관적 변화, 삶의 태도의 변화, 우선순위과 가치관의 변화가 수반된다. 

왕비는 이제 왕이 진리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가족이 함께 일에 매진한다. 

어쩔 없이 왕이 전쟁터에 나갈 때면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의 무사귀환을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왕비의 숙명이다. 기다림, 기도 그리고 왕의 무사귀환에 대한 감사의 찬양

왕비 또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존재가 되어간다.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존재.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혹은 왕비 같은 존재들이다. 

왕이 예수님이시라면 우리는 왕비라고 있다. 

왕과 결혼하는 왕비. 기존의 삶의 스타일과 태도, 그리고 정신을 벗고, 그분의 새로운 정신을 덧입는다. 

그렇게 왕의 일에 협력한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지금도 싸우시는 예수님을 위해 우리도 함께 싸워간다. 

 

진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싶다. 

왜냐하면 진리가 무엇인지 계속 의심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들이 과연 진리였는가? 

철학적 회의주의가 문화적 회의주의 혹은 문화 상대주의로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그에 대한 반작용도 없지는 않다. 

흔들리기 싫다. 자신의 입장이 진리라고 굳게 믿고 싶다. 

내가 속한 , 내가 속한 공동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방식, 일종의 보수, 혹은 수구적 사고가 조금씩 확장되는 같다. 그런데 이런 수구적 사고에서 드러나는 진리는 위험하기 그지 없다. 자국 최우선주의를 펼쳤던 트럼프 계열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고 방식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전쟁을 유발한다.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문제는 문화 상대주의에 의해 역사적으로 억압되었던 계층들이 세력을 얻어가면서 반작용의 힘도 세어진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약자로 지냈던 사람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들의 아픔에 동감하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어야 한다. 그들 입장의 역사가 새롭게 기술되기도 한다. 

반작용을 어떻게 지혜롭게 다루어야 하는가가 앞으로의 과제다. 

 

진리와 정의를 위한 싸움.

진리와 정의를 쉽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에 점점 어려워진다. 

피아식별이 분명한 것이 싸울 때는 유리하다. 

누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불분명한 싸움에는 절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진리와 정의가 무엇인지 더욱 철저하게 물어야 하고 대답을 만들어야 한다. 

 

신앙생활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오늘도 무거운 마음을 안고 주님께 말을 건넨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주님의 진리, 주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달라면서 

 

 

——

진리와 정의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진리와 정의를 알려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론들이 저마다 자신의 생각과 관점이 진리요 정의라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저는 하나님이 진리요, 정의라고 믿고 있습니다. 

믿음이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고,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되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세요. 

주님께서 먼저 싸워주시고, 허탄한 생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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