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5. 김혁수 

 

[본문_누가복음 24:25-35] 

25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26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27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28 길손은 자기들이 가려고 하는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멀리 가는 척하셨다. 29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만류하여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셨다. 30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33그들이 곧바로 일어나서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 열한 제자와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34모두들주님께서 확실히 살아나시고시몬에게 나타나셨다하고 말하고 있었다. 35그래서 사람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비로소 그를 알아보게 일을 이야기하였다.

 

[설교]

0. 들어가며 

- 성육신적, 인격적, 통합적

8 ,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성육신적, 인격적, 통합적 가르침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비유의 언어로 설명하시는 예수님의 자기 부인과 제한에 대해 배웠습니다. 반대자와도 수평적으로 소통하시면서도 자신의 기준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인격적인 모습도 배웠습니다. 그럼 오늘은 통합적인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통합은 인간의 전영역, 지정의의 영역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가르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머리만 키우는 강의 아닙니다. 감정만 풍성하게 만드는 콘서트 아닙니다. 강인한 의지를 훈련시키는 해병대 훈련소 아닙니다. 머리와 가슴과 손발 동시에 반응하고 변화됩니다. 그것이 그분의 가르침이 가지는 통합적 요소입니다. 그런 그분의 가르침을 가장 보여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함께 읽어 볼까요? 

 

- 글로바 부부와 낯선 사람

오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서만 아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신 삼일이 지났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는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글로바와 다른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갑니다. 예루살렘에서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2-3시간 정도 걷는 거리입니다. 제자는 오후에 예루살렘에서 출발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글로바와 그의 아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명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일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학자들의 의견을 따라 글로바 부부가 예루살렘 성에서 빠져나와 엠마오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그들의 뒤를 쫓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에 있었던 엄청난 그리고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며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야기를 해줍니다. 게다가 부활했다는 여인들의 소식도 함께 말해줍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누가복음 24:24) 

 

글로바 부부의 말에 낯선 사람이 반응합니다. 그게 오늘 본문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시 읽어볼까요. 

25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26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낯선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전체에서 메시야가 고난을 받은 뒤에 왕의 영광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오늘은 이야기 전체를 자세하게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예수님이 그들에게 가르치셨는지에 집중하겠습니다. 가지 요소가 그분의 통합적 가르침에 녹아 있습니다. 

 

1. 성경을 풀다_

- 길에서 성경을 풀다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계관을 바꾸는 지식을 전달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내용을 고난받아 죽고 다시 영광에 올라가는 메시야라는 관점에서 풀어주셨습니다. 

27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32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길을 걸으면서 예수님은 열심히 모세의 글과 예언자들의 그리고 구약 성경 전체에서 메시야와 관련된 글들을 인용하시면서 설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무엇을 설명했습니까? 그것은 성경 전체가 이야기하는 , 영광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는 사실 엄청난 고난과 아픔을 겪고 나서 후에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새로운 성경 읽기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익숙하던 성경 독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 왕의 자손이 일어나 무너진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울 것이라는 관점이었습니다. 구원자 메시야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세계를 통치할 여호와 제국 세우는 정치 군사적 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성경해석과 역사해석은 확고부동했습니다. 오랜 세계관이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관점이었습니다. 이걸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이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종교적 의식과 결합한 견고한 세계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경 독법, 성경 해석에 금을 내셨습니다. 성경을 폐기처분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새롭게 읽도록 만드신 겁니다. 성경을 새롭게 풀어내셨습니다. 이건 엄청난 지성인만이 있는 일입니다. 기존의 세계관을 뒤흔드는 새로운 성경 해석, 성경 읽기 가르쳐주셨습니다. 

 

- 세계관을 바꾸는 지성의

엠마오로 내려가던 글로바 부부는 엄청난 지식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들의 세계관에 균열을 일으키는 지식입니다.   

 

예수님의 통합적 가르침에는 이런 막강한 지성의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전달하는 지성의 능력이 그분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로바 부부는 성경을 새롭게 있는 눈을 가지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성경 전체를 예수님 중심으로 해석하고 바라볼 있는 관점을 배워야 합니다.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구약 성경의 이야기가 어떻게 예수님께로 연결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단순히 에피소드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게 예수님께로 향하는지 있는 키워야 합니다. 성경 지식은 그런 면에서 중요합니다. 

 

2. 마음이 뜨거워지다_

- 마음이 뜨거워지다

둘째,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의 감정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식의 전달에 머물지 않습니다. 다시 글로바 부부의 간증을 들어볼까요. 

 

“32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길에서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 메시야의 실체를 구약 성경 전체에서 밝히 보여 주실 , 그들 마음 감정의 변화 있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오랜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진리가 드러났습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이 감정을 건드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이 다시 불붙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따라다녔던 예수님의 실체가 성경을 통해 밝혀지자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엠마오 마을로 가고 있던 자신들의 무지와 불신앙에 대한 회개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 것입니다. 감동이 몰려오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 집니다. 

 

-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어제 휴가를 맞아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라는 에니메이션을 보았습니다. 용과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던 세상에 악의 세력인 드룬 사람들과 용을 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용들의 희생으로 용의 마법이 완성되어 가까스로 사람들을 보호하지만, 사람들은 5개의 나라로 나뉘어 서로 싸우게 됩니다. 싸움이 다시 드룬 되살려서 이제는 모두가 돌이 상황에 놓였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스포가 되니까 배경설명만 드렸습니다. 중간에 저와 딸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간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다시 용과 사람들을 되살리는 구원의 반전이 있기를 말입니다. 간절함이 저도 모르게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 구원과 회복에 대한 갈망 그리고 감동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 ,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는 ,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아주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나와 우리 이웃과 세상의 회복,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고 갈망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구원 이야기에 반응하게 됩니다.  

 

- 가지 원인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이 부족하신가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성경의 전체 스토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럴 있습니다. 성경의 단편적 에피소드만 가지고는 웅장하고 원대한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인식할 없으며 따라서 감동받기도 어렵습니다.  둘째, 감정에 상처를 받아서 그럴 있습니다. 오랫동안 감정의 문을 닫아왔거나 감정을 드러냈을 무시당하거나 모멸감을 느꼈왔거나 하는 경우에 우리는 감정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감동받기 우리의 몸이 거부합니다.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 성향상 감동 받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우리는 성경 전체 스토리 라인을 되새길 필요 있습니다. 그리고 감정의 상처를 심리 상담이나 공동체적 회복 프로그램이나 깊이 있는 기도를 통해 치료받을 필요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감정이 되살아나면, 성경이 예수님을 향해 흐르고 있음에 대해 감동이 찾아옵니다. 물론 때로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겠죠. 성령님에 대한 간구도 필요 것입니다. 

 

3.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다_ 

- 밤길 11Km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의 행동의 즉각적 변화를 낳았습니다. 그들의 의지에 영향 주었다는 것입니다. 33절을 읽어볼까요.

 

 33그들이 곧바로 일어나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 열한 제자와 또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엠마로 마을, 자기의 집에서 성경을 풀어주셨던 그분과 함께 식사를 시작할 , 손님의 축복과 빵을 떼시는 장면에서 그들은 손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순간 사라집니다. 그리고 글로바 부부는 예수님이 풀어주신 성경이야기, 그리고 길에서 이야기를 들을 느꼈던 뜨거움에 대해 나눔을 하다가, 밤에 다시 결심을 합니다. 무엇을 결정하죠? ,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로 말입니다. 여러분, 예루살렘과 엠마오 마을 사이는 11킬로미터 정도가 됩니다. 다시 돌아가기가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지만, 저녁 무렵에 길을 떠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한국은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그렇게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그래도 안전한 편입니다. 시애틀에 사는 친구와 대화할 기회가 최근에 있었습니다. 시애틀은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밤에 공원을 거니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고 말해 주더군요. 이유는 노숙자분들이 공원에 너무 많고, 게다가 마약 거래가 일어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의지와 열정

여러분, 예수님 시대에 밤에 여행을 떠나는 일은 더욱 위험한 일이었을 겁니다. 강도가 많았습니다. 산짐승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글로바 부부는 길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왜요? 그들이 만난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구약 성경에서 예언하신 메시야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낙담한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깨달은 지식과 받은 감동을 나누고 싶었던 겁니다. 그들의 의지가 강하게 발동되었습니다. 의지와 열정이 행동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4. 나가며

- 통합적 가르침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통합적입니다. 우리의 세계관을 바꾸는 지식 전달하십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세상 회복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의 이야기 우리에게 감동 줍니다.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와 열정을 발동시켜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돕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통합적 성격입니다.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첫째, 과연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우리의 세계관을 바꾸는 지식, 구원과 회복에 대한 감동,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의지와 열정, 지정의가 동시에 영향을 받아 우리 존재가 바뀌는 그런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그런 가르침에 노출되어 있나요? 

 

번째 질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지정의가 통합적으로 영향을 받는 방식의 가르침을 주고 있나요? 예수님을 닮아 인격 전반에 영향을 주는 진리와 감동과 결단 일으키는 가르침을 주고 있나요? 청년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어린이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이런 배움과 가르침이 가득한 공간이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연구하고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도입하는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온라인 환경에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칠 있는지 실험하고 도전하는 우리 청년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련회가 다가옵니다. 온라인 환경에서 맞이하는 세번째 수련회입니다. 작년에는 캠프식 수련회 대신 구약 개론을 함께 배웠습니다. 초에는 줌을 이용해 온라인 수련회를 열었습니다. 여름 유툽과 줌을 이용해서 나를 찾아가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송청 투어 열려고 합니다. 온라인 수련회가 과연 통합적인 예수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반영할 있을지는 기대 , 걱정 반입니다. 그럼에도 참여해주셔서 실험과 도전을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예수님의 통합적 가르침에 노출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의 세계관을 바꾸는 지식, 감정을 건드리는 감동, 결단과 행동에 이르는 의지와 열정에 노출되어 우리의 존재가 서서히 혹은 급격하게 변화되는 경험을 위해 기도합시다. 

 

2.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통합적 가르침을 본받아 전세대를 교육하고 양육하는데, 지혜를 모으고 함께 양질의 프로그램을 개발 혹은 도입하는 일에 노력할 있도록, 그런 기회를 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가르침 혹은 교육에 대해 생각할 , 지식, 정서, 의지 어떤 것에 강조점이 있다고 생객해왔나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감정, 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은 우리의 결단과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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