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7월 06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26 그들은 갈릴리 맞은 편에 있는 거라사 지방에 닿았다.27 예수께서 뭍에 내리시니, 그 마을 출신으로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28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서,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29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귀신이 여러 번 그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서 감시하였으나, 그는 그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서 광야로 뛰쳐나가곤 하였다.30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31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32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니,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아서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

3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도망가서 읍내와 촌에 알렸다.35 그래서 사람들이 일어난 그 일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들이 나가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36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낫게 되었는가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37 그러자 거라사 주위의 고을 주민들은 모두 예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 되돌아가시는데,38 귀신이 나간 그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39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 그 사람이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온 읍내에 알렸다.

 

주석

26절. 마태복음에 나오는, 호수에서 1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가다라’(마 8:28)와 호수에서 약 48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거라사는 전반적으로 같은 지역인 데가볼리에 있었다. 이 지역은 눈에 띄게 비유대적인 지역이었다(IVP 성경배경주석).

 

30절. 예수님이 이름을 물으시자 귀신이 “군대”(Le-gion)라고 답한다. 이 라틴 차용어는 헬라어로 군부대, 즉 4천 명에서 6천 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진 ‘레기오’(Legio)를 가리킨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1. 쇠사슬과 쇠고랑 

이방인의 땅 거라사에 예수님이 찾아가신다. 

그 곳에는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다. 

귀신들은 그 사람을 붙잡아 광야로 끌고 나가 죽이려고 했다. 

아니 광야로 끌고 나가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게 하려고 했다. 

그의 존재만으로 광야는 두려움의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돼지를 치며, 놀이를 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지 괴성과 으르렁 소리와 꺅 소리가 들릴 수 있는 곳, 발가벗은 때가 잔뜩 묻은 남자가 갑자기 튀어 나와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광야는 귀신이 지배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 귀신에 의해 마을에 갇히고 말았다. 

귀신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자신의 한계에 갇히게 하고, 자유를 박탈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힘을 모아 귀신들린 자기 마을 사람에게 쇠사슬과 쇠고랑을 채웠다. 

그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쇠사슬과 쇠고랑을 채울 때, 어마어마한 몸싸움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신이 온전한 순간에 동의하에 진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가 맞을 것이다. 

어떤 누구도 자신에게 쇠사슬과 쇠고랑을 채우는 것을 자발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귀신은 그 순간에 발악을 했을 수도 있다. 

귀신들린 그 마을 사람은 나머지 마을 사람들의 완력으로 겨우겨우 묶어서 결국 쇠사슬과 쇠고랑을 채웠다. 

귀신은 자기가 들어간 그 사람만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 아니었다. 

온 동네 사람들, 노약자와 여인들의 자유를 억압했다. 

마을 사람들은 쇠사글과 쇠고랑으로 그 두려움을 극복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언제 끊을지 모를 지경이다. 

 

사단은 사람들을 가둔다. 

억압한다. 

지금도 각종 두려움으로 사람들은 세상과 격리시키고, 공동체로터 격리시킨다.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게 하고, 혐오감과 적대감을 키운다. 

작은 말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속삭이는 듯한 말로도 충분히 사람들을 속이고 두려움을 가져다 주고 서로를 분리 격리 시킨다. 

죽음의 카르텔. 

이 죽음의 쇠사슬과 쇠고랑을 깨뜨리시러 우리 주님께서 오셨다. 

 

2. 애원 

예수님이 군대 귀신을 내쫓으셨다. 

이 귀신이 제법이다. 

나가라고 했는데, 버틴다. 

예수님께 애원한다. 

 

31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도리어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귀신의 간청을 들어 주신다. 

그리고 돼지들은 몰살당한다. 

 

참 희안한 본문이다. 

예수님의 허락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돼지에게로 들어간 귀신들의 행동도 이해가 안된다. 

돼지에게 들어가 거기서 자신들의 거처를 삼고 지내면 되는데, 돼지를 모두 물속에 빠뜨려 죽게 한다. 

이 행위가 귀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각종 추측을 낳는다. 

귀신들 입장에서는 어떡해서든 예수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예수님께 간청했을 수도 있다. 

돼지를 몰살시킴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을 극대화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그들만의 간계(계략)였을 수도 있다. 

자신들의 살해 충동을 그렇게라고 해소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귀신들의 행동을 미루어 짐작컨대, 귀신들렸던 그 거라사 사람도 자살 충동과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는 살해 충동과 싸웠을 것이다. 

 

예수님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셨겠지만, 귀신의 간청을 허락하신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더욱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다 고쳐지고 회복된 그 사람의 애원은 거절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싶었다. 

더 이상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낼 자신도 없었고, 자신을 살려주신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다. 

벌거벗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위협했었던 자신을 마을 사람들이 다시 받아주기도 어렵고, 자신도 그들 앞에 서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예수님은 그의 애원을 거절하셨다. 

도리어 그에게 사명을 주신다. 

거라사 지역의 온 마을을 다니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알리라는 사명을 주신다. 

그리고 그는 그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귀신의 간청은 들어주시지만, 그의 애원은 거절하신다. 

이 지점이 정말 이해가 안된다. 

귀신의 간청을 물리치시고, 도리어 그의 애원을 적극 수용해 주시는 것이 상식적이다. 

역시 예수님은 종잡을 수 없는 분이시다. 

 

예수님의 허락과 거절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두 요소다

그분은 허락하시기도 하시도 거절하시기도 하신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반대로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예수님은 독자적인 판단을 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신다. 

그걸 나는 믿는다. 

돼지의 떼죽음도, 그에게 주신 사명도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다.

오늘은 그 이상의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납득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그리고 당연히 자유롭게 결정하실 수 있는 분이다. 

인간의 관점만으로는 그분을 판단할 수 없다. 

오늘은 그분의 판단을 믿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나로서는 이해안되는 것을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겠다. 

오늘은 주님이 일하시도록 맡기겠다. 

논리적 분석과 이유를 찾는 과정에 중독되지 않겠다. 

 

혹 나의 애원과 간청을 들어주시지 않더라도…

 

 

[오늘의 기도]

주님, 

귀신으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시켜주시고 회복시켜주소서. 

스스로 위해를 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충동으로부터 자유케 하소서. 

모든 것이 귀신의 장난은 아니겠으나, 그런 귀신들이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면 주님께서 내쫓아 주소서. 

 

수련회에 와 있는 모든 참가자들이 변화되게 하소서. 

오직 자유로운 주님의 결정에,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순복하고 따르게 하소서.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되, 결국 주님의 판단과 결정을 신뢰하고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게 하소서. 

캠퍼스의 복음전도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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