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21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9 그러나 이제는 주님께서 우리를 버려, 치욕을 당하게 하시며, 우리 군대와 함께 출전하지 않으셨습니다.

10 주님께서 우리를 적에게서 밀려나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마음껏 우리를 약탈하였습니다.

11 주님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나라에 흩으셨습니다.

12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시니, 그들을 팔아 이익을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13 주님께서 우리를 이웃의 조롱거리로 만드시고, 주위 사람들의 조롱거리와 웃음거리로 만드십니다.

14 주님께서 우리를 여러 나라의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고, 여러 민족의 조소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15 내가 받은 치욕이 온종일 나를 따라다니고, 부끄러워서 얼굴을 수조차 없습니다.

16 이것은 나를 조롱하는 자와 모독하는 자의 독한 욕설과 나의 원수와 복수자의 무서운 눈길 때문입니다.

17 우리는 주님을 잊지 않았고, 주님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쳤습니다.

18 우리가 마음으로 주님을 배반한 적이 없고, 우리의 발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난 적도 없습니다.

19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승냥이의 소굴에다 밀어 넣으시고, 깊고 깊은 어둠으로 덮으셨습니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었거나, 우리의 손을 다른 신을 향하여 들고서 기도를 드렸다면,

21 마음의 비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이런 일을 찾아내지 못하셨겠습니까?

22 우리가 날마다 죽임을 당하며, 잡아먹힐 양과 같은 처지가 것은, 주님 때문입니다.

23 주님, 깨어나십시오. 어찌하여 주무시고 계십니까? 깨어나셔서, 영원히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24 어찌하여 얼굴을 돌리십니까? 우리가 고난과 억압을 당하고 있음을, 어찌하여 잊으십니까?

25 , 우리는 속에 파묻혀 있고, 우리의 몸은 내동댕이쳐졌습니다.

26 일어나십시오. 우리를 어서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여 주십시오.

 

조상들로부터 듣고 경험한 역사와는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적에게 패배했고, 이웃의 조롱거리가 되어 얼굴을 들 수조차 없었습니다(9-16절). 시인은 패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배반한 적도 없고 언약을 어기지도 않았습니다. 시인은 무죄를 주장하며 이 모든 일은 주님 때문임을 호소합니다(17-22절). 그리고 주님의 신속한 개입을 요청합니다. 일어나 도와달라고 주님을 흔들어 깨웁니다(23-26절).

 

삶은 늘 공식처럼 되지 않습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을 마주할 때 나아가 외칠 곳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몸소 뵈었던 욥처럼 우리도 그 질문과 항변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깨울 끈질긴 사람을 찾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고통하며 신음하는 이 세상을 구하여 주십시오.

 

——

삶은 공식처럼 되지 않는다.

 

시심의 말이 뇌리에 박힌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안느껴질 때가 있다. 

전쟁에서 밀린다. 죽음의 고통을 느낀다. 전우의 시체가 즐비하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롱이 들린다. 

 

시인의 말은 진실한가? 갑자기 드는 생각이다. 

전투에서 지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인가? 

아님 너무 개입하시기 때문인가?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자신은 언약에 비추어 바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배신하고 있다고 느끼는 같다. 

자신들의 처지가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는 진정 인간의 시이다.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 

하나님을 원망한 적은 없다.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자신의 소원을 아뢴 적은 있다. 

그러나 자신이 죽음의 골짜기를 다니는 것이 십자가로 들어가는 길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원망하시지는 않았다. 

시편을 기도를 알고 있었던 예수님은 시편 44편의 기도를 인용하지는 않으셨다. 

묵묵히 길을 걸어갔다. 

그러기에 오늘 시편인 진정 인간의 기도요 시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은 시간 

인간이 내뺕을 있는 거의 최후의 숨기도는 바로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세요라는 기도다. 

성경에 이런 인간의 기도가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시가 자기 의를 드러내는 기도인가? 하나님은 잘못했고 나는 의로우니 이제 나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논리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시인은 절박하다. 죽음의 순간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니 외치는 것이다. 살려달라고구원해 달라고 

그분이 도와줄 수만 있다면, 조금 치졸하더라도 떼를 써보는 것이다. 

 

매일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해야할 일이 많다. 

장기적인 플랜이 가동 중이다. 

제일 사랑하는 것은 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길 소망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가지 장기 프로젝트를 돌리는 일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장기 프로젝트는 성과가 나는 오래 걸린다. 

게다가 매우 집요하게 매일 매일 스스로 일을 찾아서 진행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안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죽을 만큼 힘든 일은 아니지만, 때로 절박할 때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역적 위기를 경험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어쩔 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여전히 힘든 순간들이 있다. 

사실 코로나와 같은 외부 요인은 잘못이 아님에도 여러가지 고통들을 경험하게 한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길 다시 부르짖어본다. 

 

——

주님, 때로 잘못이 아님에도 당하는 고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1 6개월이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내외부가 그저 혼란이었습니다. 

혼란 중에 비난과 비판이 난무했습니다. 

이제 익숙할만 하지만, 여전히 낯설고 두렵습니다. 

주님, 정서는 불안입니다.

뭐든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시간들을 이겨내도록 도와주세요. 

다시 힘을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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