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 29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54솔로몬이 무릎을 꿇고서,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을 펴고, 이렇게 간절히 기도를 드린 다음, 주님의 제단 앞에서 일어나서,

55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축복하여 주었다.

56“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셨으며, 그의 종 모세를 시켜서 하신 선한 말씀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아니하시고 다 이루어 주셨으니, 주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57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과 함께 계시던 것과 같이, 우리와도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도 마시고, 포기하지도 마시기를 바랍니다.

58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기울이게 하셔서, 주님께서 지시하신 그 길을 걷게 하시며,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내리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59오늘 주님 앞에 드린 이 간구와 기도를,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낮이나 밤이나 늘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종과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날마다 그 형편에 맞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60그렇게 해서, 세상의 모든 백성이, 주님만이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61그러므로 그의 백성인 여러분도 주 우리의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서, 오늘과 같이 주님의 법도대로 걸으며,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던 솔로몬이 이제는 백성들을 향해 축복을 말을 전한다.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가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드리는 공동의 기도였다. 

이제 백성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 축복의 말을 전한다. 

 

그런데 이게 축복인지 기도인지 헷갈린다. 

여전히 주님께 말을 건네고 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께 요청하고 있다. 

“우리와도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57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과 함께 계시던 것과 같이, 우리와도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도 마시고, 포기하지도 마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라든가 “여러분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라든가, 축복받는 대상의 이름이 먼저 거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솔로몬의 축복은 여전히 하나님에게 달려있다.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더욱 중요하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성전을 지을 때, 솔로몬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계속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계속 경험하는 것이다. 

 

두 번째 축복은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따르는 삶이다. 

그것도 마음을 다해 따른다. 형식적으로 피상적으로 겉보기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그분의 명령과 뜻을 따른다. 

 

58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기울이게 하셔서, 주님께서 지시하신 그 길을 걷게 하시며,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내리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조상에게 내려졌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따르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스스로 경험하지 않으면 참여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현대인들이 생각할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는 방식이다. 

그러나 당시의 문화 속에서 아버지, 할아버지, 그 조상의 정신은 나의 정신이었다. 

“전통”은 현대의 “주체”보다 더 막강한 자기 정체성이었다. 

고대의 자아상은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고, 가계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과 가족의 가치에 의해 형성된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 모세에게 주셨던 율법…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여전히 지켜야 할, 고수해야 할, 간수해야 할 전통이었다. 

하나님은 굳이 각 개개인에게 이런 전통을 일일이 따로 말씀하지 않으셔도 된다. 

이스라엘 조상에게 이야기 한 것이 지금 그들의 자손들에게 한 것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한다. 

 

현대인들은 완연히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 각자에게 들려주셔야 한다. 

다른 사람, 설혹 그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자신의 말씀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하나님이 곧바로 자녀의 하나님이 되지 않는다. 

아… 하나님께서 참 피곤하시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그들을 참여시키시고, 그들의 정서와 입맛에 맞게 잘 조리해서 먹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포스트모던 사회의 각 개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하시면 제일 좋을 것들이다. 

 

여튼 솔로몬이 생각하는 축복의 두 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잘 따르는 삶이다. 

 

그렇게 축복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60그렇게 해서, 세상의 모든 백성이, 주님만이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이며, 진정한 신임으로 알게 된다. 

다른 우상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다. 

복의 결과는 하나님께 돌려지는 영광이다. 

복의 결과가 자신의 영광이라면 그것은 인간에게 복이 아니라 저주며 화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그의 백성이 있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의 영광을 찬양할 것이다. 

이러한 공식은 구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도 이어진다.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보면, 솔로몬의 축복과 닮았다. 

삼위 하나님 안에 거하면, 그분의 연합 안에 거하면, 결국 세상이 주님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삼위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임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복음의 개념은 더욱 분명해진다. 

결코 물질적 풍요가 진정한 복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명예, 권력,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조건… 이 모든 것은 성경의 복이 아니다. 

성경의 복은 그분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성전은 그분이 함께 하시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신약의 성전인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그분의 뜻을 행한다. 

그래서 세상이 주님의 영광을 본다. 

이런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급기야는 우리 각자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삼아, 

성령님으로 함께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다. 

수많은 논의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게 해 주세요. 

꼭 필요한 논의들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게 해 주세요.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가장 선한 뜻을 분별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 

 

성령님,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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