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0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14이렇게 해서, 주님께서는, 에돔 출신으로 에돔에 살고 있는 왕손 하닷을 일으키셔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셨다.

15전에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 군사령관 요압 장군이 살해당한 사람들을 묻으려고 그 곳으로 내려갔다가, 에돔에 있는 모든 남자를 다 쳐죽인 일이 있다.

16요압은 온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에돔에 있는 모든 남자를 다 진멸할 때까지, 여섯 달 동안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17그러나 하닷은 자기 아버지의 신하이던 에돔 사람들을 데리고서, 이집트로 도망하였다. 그 때에 하닷은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18그들은 미디안에서 출발하여 바란에 이르렀고, 그 곳에서 장정 몇 사람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이집트 왕 바로에게로 갔다. 이집트 왕 바로는 그에게, 집과 얼마만큼의 음식을 내주고, 땅도 주었다.

19하닷이 바로의 눈에 들었으므로, 바로는 자기의 처제 곧 다브네스 왕비의 동생과 하닷을 결혼하게 하였다.

20다브네스의 동생은 아들 그누밧을 낳았는데, 다브네스는 그를 바로의 궁 안에서 양육하였으므로, 그누밧은 바로의 궁에서 바로의 아들들과 함께 자랐다.

21그 뒤에 하닷은, 다윗과 군사령관 요압 장군이 죽었다는 것을 이집트에서 듣고서,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허락해 달라고 바로에게 요청하였다.

22그러자 바로는 그에게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게도 고국으로 가려고만 하오?" 하면서 말렸다. 그러나 하닷은,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보내 달라고 간청하였다.

23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또 다른 대적자로서,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키셨다. 그는 자기가 섬기던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사람이다.

24다윗이 소바 사람들을 죽일 때에, 그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 모은 무리의 두목이 되어서, 다마스쿠스로 가서 살다가, 마침내 다마스쿠스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25르손은 솔로몬의 일생 동안에 이스라엘의 대적자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솔로몬은 하닷에게 시달리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르손에게도 시달렸다. 르손은 시리아를 다스리는 왕이 되어서, 계속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사사기 역사의 반복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주변국들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사사기에서는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솔로몬의 때에 다시 일어난다.

 

하닷은 이집트로 도망하여 바로 왕에게 인정을 받아 세력을 확장했다. 

외국인이 어떻게 바로의 눈에 들었을지 궁금하다. 

숱한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낸 하닷의 삶의 여정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아님 그의 외모나 지식의 수준이 남달랐던 것인지… 

하닷의 아들 그누밧은 이집트의 왕궁에서 자랐다. 

이스라엘의 민족 형성의 과정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집트가 모판이 되어 이스라엘이 큰 민족이 되었었다. 

하닷도 이집트를 기반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하닷은 자신의 원수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에돔 땅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묻힌 곳. 

자신의 민족의 영웅들이 잠든 곳. 

그곳에 가서 다시 에돔 족속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원수를 갚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로 왕에게 에돔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스라엘과 혼인 언약으로 선린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이집트 입장에서는 쉽게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었을 것이다. 

다윗과 요압은 죽었지만, 그의 아들 솔로몬이 급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국력이 차 올랐기 때문이다. 

 

22그러자 바로는 그에게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게도 고국으로 가려고만 하오?" 하면서 말렸다. 그러나 하닷은,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보내 달라고 간청하였다.

 

바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닷은 군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괴롭힌다. 

솔로몬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하닷의 군대와 맞붙어야 했다. 

 

남쪽에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다. 

북쪽에서도 르손이 세력을 얻어 다마스쿠스의 왕이 되고, 시리아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 국경에 침범했다. 

남쪽 국경, 북쪽 국경에 많은 군사를 보내야 했다. 

문제는 그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쉽게 소탕되어 해결될 줄 알았던 국지전이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하닷도 르손도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산전수전 다 겪고서 그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자신들이 당했던 고통스런 기억에 대한 원수갚음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솔로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일으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무조건적인 편애를 하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소명을 다할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자신들의 소명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언약을 깰 때,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주변 민족들에 의해 고통받았고, 결국엔 나라가 망하기도 했던 것이다. 

 

소명을 잃어버리거나,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우상을 삼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다루심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소명 대신 자신의 욕망이 삶의 목표가 되어 거의 반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이 아닌 “자아신”을 섬길 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망가지며 결국 고통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소명을 읽어버린 삶, 자아신을 섬기는 삶의 결과다. 

 

세계 돌봄 통치의 대리자, 세상의 화해를 추구하는 제사장… 

이 두 가지의 소명을 깊이 자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을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그 소명을 잃지 않고 오늘도 다시 마음 속에 새긴다. 


하나님,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싶습니다.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늙어서도 추태부리지 않고, 죽음의 순간까지 주님을 올곧이 따르겠습니다. 

끝까지 이런 태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긴장된 순간이 종종 찾아옵니다.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함을 주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평안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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