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24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1 백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23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실 때에, 그는 서른 살쯤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요셉의 아들이었다. 요셉은 엘리의 아들이요, 24 그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맛닷, 레위, 멜기, 얀나, 요셉, 25 맛다디아, 아모스, 나훔, 에슬리, 낙개, 26 마앗, 맛다디아, 세메인, 요섹, 요다, 27 요아난, 레사, 스룹바벨, 스알디엘, 네리, 28 멜기, 앗디, 고삼, 엘마담, 에르, 29 예수, 엘리에제르, 요림, 맛닷, 레위, 30 시므온, 유다, 요셉, 요남, 엘리야김, 31 멜레아, 멘나, 맛다다, 나단, 다윗, 32 이새, 오벳, 보아스, 살라, 나손, 33 아미나답, 아드민, 아르니, 헤스론, 베레스, 유다, 34 야곱, 이삭, 아브라함, 데라, 나홀, 35 스룩, 르우, 벨렉, 에벨, 살라, 36 가이난, 아박삿, 셈, 노아, 레멕, 37 므두셀라, 에녹, 야렛, 마할랄렐, 가이난, 38 에노스, 셋, 아담에게 이르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주석

하늘에서 들린 소리(22절) 하늘에서 들린 소리에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메아리친다(사 42:1). 그 말씀은 메시아에게 백성과 세상을 위해 고난당하고 죽으실 종의 임무를 맡긴다. 이사야서 말씀의 배후에는 또다시 창세기 22:2이 메아리친다. 거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다. 그와 동시에, 이 소리는 예수님의 소명에 대한 놀라운 확증이며, 그 소명의 목적지를 보여 주는 확실한 단서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하나님의 아들(38절) 누가는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님의 호칭으로 사용하면서, 분명히 그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는다. 천지창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이해하는 최선의 길은, 예수님이 진정 이스라엘의 메시아(하나님의 아들의 또 다른 의미)이지만, 그분이 바로 온 세상을 위해서도 그렇다고 말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창조 세계와 온 인류가 앞으로 예수님이 하실 그 일의 혜택을 누릴 것이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예수님께 내려오십니다(21-22절). 하늘에서 울린 소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증함과 동시에, 그 사랑하는 아들이 온 세상을 위해 할 일이 있음을 암시합니다(22절, 사 42:1 참고). 누가는 이어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의 메시아임을 확언합니다(23-38절). 

 

세례 이야기와 족보는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길을 갈지 알고 있으셨지만, 온 세상을 위해서 보내야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백성과 세상을 위해 고난당하는 종으로 오셨으며,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다. 그 길의 시작에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들려주는 말은 ‘내가 너를 좋아한다’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예수님을 뒤따라 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하늘에서 들려왔던 그 소리가 오늘 우리의 심령에도 울리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요한의 사역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예수님도 포함되었다. 

사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는 없었다. 

그분은 이미 깨끗하신 분이시며, 하나님께 인정받으시는 분이시다. 

그분 자체가 하나님이시다. 

세례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징표요 선포다. 

굳이 받으실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다. 

요한도 겸손하지만, 예수님은 더욱 겸손하신 분이셨다. 

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은 인간이 가야하는 길을 멀리하지 않으셨다. 

30년간 가족을 섬겼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이미 그 운동의 명맥을 잇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다. 

 

좀더 세례에 대해 설명하자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이집에서 광야로 넘어오는 홍해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제사에 집중하면 된다. 

율법에서 가르치는 바,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절기 규정들, 사회 규정들, 윤리 규정들을 잘 지키면 된다. 

그들에게 세례는 낯설다. 

그럼에도 요한은 세례가 필요하다고 봤다. 

회개가 필요하고, 그 회개는 결국 예식으로 드러나야 하며 공중 앞에 선포되어야 한다. 

그러니 요단강물에 빠졌다가 다시 나오는 예식을 통해 이전 것은 물 속에 두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서울신대 조기연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한은 쿰란의 정결의식이나 요단강 주변의 세례관습들을 가져다가, 그것을 다가오는 세상의 종말을 준비하라는 예언자적 사상과 결합시켜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씻음의식으로 발전시켜 내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세례의 기원과 의미_신약성서를 중심으로

 

요한은 기존의 정결의식들을 참조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례 의식을 만들어냈으며, 예수님은 이에 동의하셨다. 

요한의 하나님 나라 도래의 예언자적 전망을 높게 평가하시고, 그 사역이 바로 자신의 사역과 연결되어 있음을 세례받음을 통해 인정하시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례를 받으시는 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내려오는 비둘기 같은 성령님을 본다. 

그리고 음성을 듣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비둘기 같은 형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사는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누가는 나중에 불의 혀처럼 갈라져서 번개치듯 떨어지는 성령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내리는 성령님은 비둘기와 같은 형체를 갖고 있었다. 

성령님은 어떤 하나의 형체로 규정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어떤 모습으로도 등장하실 수 있으시며, 어떤 소리로도 나타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그분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비둘기 형체도 오셨다고 했으니, 그것은 성령님이 보여주시는 최고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존재하는 삼위 하나님을 떠올릴 때, 성령님이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에게 비둘기 모습으로 다가갔다는 점에서 그의 최고의 모습이라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성령님은 사랑의 표현을 할 때 이와 같이 비둘기와 같은 모습을 하실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아들, 나는 너를 좋아한다. 

이건 사랑 고백이며, 백성들로 하여금 아들의 권위를 치켜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고백을 들을 때마다, 아담의 노래가 떠오른다.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에 뼈로구나. 

사랑은 언제나 시와 노래로 승화된다. 

하나님은 지금 시적 고백을 하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사랑 고백을 들었다. 

“그 인물이 누구인가?

어째서 요한이 아니라 예수라는 듣도보도 못한 인간인가? 

어째서 내가 세례 받을 때는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 저 나사렛 청년에게는 저런 말씀이 내려오는가?”

이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예수를 눈여겨 본다. 

그의 말과 행동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요한의 사역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오늘의 기도]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을 귀하게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하는 일도 귀하게 사용해주세요. 

간사들을 훈련하고, 학생 사역을 일으키고,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세요. 

저를 통해 좋은 사역자들이 더 많이 나오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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