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19일 토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종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시오.

 

22 예수께서 여러 성읍과 마을에 들르셔서, 가르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셨다.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25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할 터이나,27 주인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모두 내게서 물러가거라’ 할 것이다.2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난 것을 너희가 보게 될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 것이다.29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30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

 

The Message

Put your mind on your life with God. The way to life—to God!—is vigorous and requires your total attention(24절).

 

주석

26-27절. 닫힌 문밖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셨고, 또 그분이 자기들을 가르치셨음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행악하는 자”라고 부르신다. 이로써 이 비유는 갑자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기독교 전도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고, 이는 전체 단락의 청중을 암시한다(IVP 성경비평주석).

 

29-30절. 여기서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바깥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이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복음-사도행전의 문맥에서 보면, 요점은 훨씬 더 충격적인 것이다. 곧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여, 메시아의 잔치에 기대어 있는 자들이 되며, 거기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던 많은 사람은 배제되리라는 것이다. 동서남북이라는 말은 ‘모든 곳’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전문맥에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빗대어 말씀하셨다. 

작은 겨자씨가 나무가 되어 새들의 안식처가 된다. 

적은 누룩이 가루 서말을 부풀게 한다. 

얼핏보면 하나님 나라는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듯 싶다.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에 대해, 그 나라에 실제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얼마나 큰 나라일까? 

그 나라의 인구는 대체 몇 명이나 될까? 

그 나라에는 누가 들어갔는가? 

등의 질문이 맴돌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여러 성읍들을 두루두루 다니신다. 

어느 마을에 가니, 한 사람이 묻는다. 

“구원 받은 사람이 적습니까?” 

예수님은 예/아니오로 대답하시는 경우가 별로 없다. 

갑자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하신다. 

구원 받은 사람이 적은지 많은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도리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수가 많다고 말씀하신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구원 개념의 전제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입성”이다. 

구원은 최종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구성원이 되느냐의 문제다.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영육을 가진 존재 자체의 구원이며, 새롭게 조성되는 피조세계의 구원이다.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한 번 문이 닫히면 아무리 두드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넓은 문을 선택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 나라의 문을 찾을 수가 없다. 

하나님 나라의 문은 좁은 문의 선택에 의해 찾아진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기 원하는 현실의 넓은 문은 하나님 나라의 문을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함정이다. 

 

좁은 문은 불의와 거리가 먼 문이다. 

좁은 문을 선택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뒤늦게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이다. 

예수님 앞에서 먹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길거리에서 들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고 가르침을 받았던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런 말을 할 사람이 등장한다. 

문이 닫힌 뒤에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서 선처를 바라지만, 기회는 이미 충분히 주어졌었다. 

그들은 불의를 행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갔었다. 

불의를 거부하는 좁은 문은 피했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구원받은 사람의 수는 정말 적은가? 많은가? 

예수님은 그 수에 많고 적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이 순간의 참석자들 중에도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 말씀이 암시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경계, 주의다. 

불의로 점철된 넓은 문을 피하고, 정의로운 좁은 문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좁은 문을 선택했던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었다. 

그들의 모든 선택이 좁은 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좁은 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입성했다. 

 

우리도 모든 선택이 좁은 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들, 그리고 대부분의 문은 좁은 문이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다다르는 방법이다. 

그 좁은 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과 성령님의 인도일 것이다. 

그것이 의로운 선택을 하도록 도우실 것이다. 

사람들이 다 선택하는 그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가야 한다. 

 

나는 좁은 문을 선택하고 있나? 

 

 

[오늘의 기도]

의로우신 예수님, 

주님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불의, 불법, 편법, 속임으로 가득한 넓은 문이 아니라, 

정의, 희생, 공평, 정직으로 속이 꽉찬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모든 선택을 바르게 할 수는 없겠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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