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17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왕이 목놓아 울면서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소문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2 그래서 모든 군인에게도 날의 승리가 슬픔으로 바뀌었다. 왕이 자기의 아들 때문에 몹시 슬퍼한다는 소문이, 모든 군인에게 퍼졌기 때문이다.

3 그래서 군인들은, 마치 싸움터에서 도망쳐 나올 때에 부끄러워서 빠져 나가는 것처럼, 슬며시 안으로 들어왔다.

4 그런데도 왕은 손으로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로, 큰소리로 " 아들 압살롬아, 아들아, 아들 압살롬아!" 하고 울부짖었다.

5 마침내 요압이 집으로 왕을 찾아가서 항의하였다. "임금님, 모든 부하가 오늘 임금님의 목숨을 건지고, 임금님의 아들들과 딸들의 목숨도 건지고, 모든 왕비의 목숨과 후궁들의 목숨까지 건져 드렸습니다. 그런데 임금님께서는 오히려 오늘 부하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6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임금님을 반역한 무리들은 사랑하시고, 임금님께 충성을 바친 부하들은 미워하시는 겁니까? 우리 지휘관들이나 부하들은 임금님께는 있으나마나 사람들입니까? 임금님께서는 오늘 임금님의 본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차라리 오늘, 압살롬이 살고, 우리가 모두 죽었더라면, 임금님께서는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7 이제라도 일어나 밖으로 나가셔서, 임금님의 부하들을 위로의 말로 격려해 주십시오. 제가 주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만, 지금 임금님께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시면, 오늘 밤에 사람도 임금님 곁에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님께서 젊은 시절부터 이제까지 당한 모든 환난보다도 무서운 환난을 당하실 것입니다."

8 그러자 왕이 일어나서 성문 문루로 나와 앉았다. "임금님께서 성문 문루에 앉아 계신다!" 하는 소식이 모든 부하에게 전해지니, 모든 부하가 왕의 앞으로 나아왔다. 사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도망하여,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9 이스라엘 백성은 지파마다 서로 의논이 분분하였다. "다윗 왕은 우리를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었다. 블레셋 사람의 손아귀에서도 우리를 건져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압살롬을 피해서 나라에서 떠나 있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운 압살롬은 싸움터에서 죽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다윗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셔 오는 일을 주저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11 이스라엘이 하는 말이 다윗 왕에게 전달되었다. 다윗 왕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말하였다. "유다 장로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어찌하여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려고 하는지,

12 그들은 나의 친족이요 나의 골육지친인데, 어찌하여 왕을 다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려고 하는지,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13 그리고 아마사에게는, 그가 나의 골육지친이면서도,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 사령관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벌을 내리시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고 하더라고 알려 주십시오."

14 이렇게 다윗이 모든 유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같이 자기쪽으로 기울게 하니, 그들이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부하들을 모두 거느리고, 어서 빨리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슬픔을 이기지 못합니다. 부하들을 격려하고 왕국을 안정시켜야 상황이었지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요압의 책망과 협박을 들은 다윗은 억지로 왕의 직무를 재개합니다(1-8). 북이스라엘 지파가 왕의 환궁을 주도하려하자 다윗은 자신의 친족 유다 지파가 주도권을 갖도록 부탁합니다. 아마사를 군사령관으로 세워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이들에 의해 왕은 환궁 요청을 받습니다(9-14).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로 왕의 직무에 복귀한 다윗은 제대로 결정을 하지 못합니다. 환궁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유다 지파를 의존함에 따라, 이후 북이스라엘과 유다 지파 간의 갈등을 촉발합니다.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군사령관 교체는 요압의 아마사 살해라는 불상사를 불러옵니다(삼하 20 참조).

 

——

다윗의 이야기는 현실 역사 이야기다. 

단순히 영적으로 해석될 내용이 아니라, 실제 일어나는 일들에 시사점을 많이 던져준다. 

다윗은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용사들을 격려하거나 환대해주지 못했다. 

쿠데타가 일어났으면 어쩔 없이 쪽은 죽음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압살롬이 죽지 않으면 다윗과 그를 따르는 식솔, 부하들이 죽는다. 

대등한 국가간의 전쟁이라면, 휴전이라는 것이 있다. 

전력차가 경우라면, 항복이라는 것이 있다. 

그럴 경우 목숨은 살려 두기도 한다. 최고 지도자는 죽더라도 부하들을 살려 두기도 한다. 

그러나 쿠테타는 패배한 쪽의 세력이 거의 대부분 축출된다. 내전이 무서운 이유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압의 말이 옳다. 

다윗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목숨을 다해 싸운 군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것은 알겠지만, 씨앗은 자신에게 있지 않았는가! 

처음부터 시시비비를 다루든지, 아님 압살롬을 완전히 용서하여 자기 편으로 만들든지 

중에 하나를 결단력있게 감당했어야 했는데, 애매하게 진행했다. 

서로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만들었다. 지혜롭지 못했고, 어설펐다. 

그가 작성한 수많은 시편은 때로 이런 약점에 대한 자신의 도피처가 아닌가 싶다. 

 

요압이 다윗을 압박한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다른 쿠테타가 일어날 것이라고 협박 수준의 말이 나왔다. 

싸움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격려하고 축복하지 않고, 오히려 패잔병처럼 대한다는 사실에 요압은 화가 많이 났다. 

 

다윗은 여전히 개인적인 감정, 사적 감정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 

다윗은 공인이다. 왕이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의 현실판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왕국을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아들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이다. 고통은 심하다. 

그럼에도 왕국의 회복을 위해 고통을 감당한다. 

인간 다윗은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자신의 아들이 귀한 만큼 다른 사람들의 자식들도 귀하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해야 했다. 

게다가 압살롬만 있던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왕위 계승자도 있었다. 

 

여러모로 다윗의 인생 후반부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아브라함은 인생 후반부에 자신의 아들을 바치기까지 성장, 성숙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진 것이다. 

다윗은 과연 어땠을까? 

다윗은 인생 후반부로 갈수록 초심을 잃어버렸다. 

왕이라는 직책이 갖는 부담 때문인가? 

 

죽을 때까지 성숙할 있는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닮을 있는가? 

죽을 때까지 믿음의 삶을 진보시킬 있는가? 

 

——

평생에 걸쳐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어떤 순간에 머물거나 퇴보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과의 관계, 믿음, 신실함, 윤리의식, 실천력 

모든 것에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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