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01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23 해가 지난 어느 , 압살롬은 에브라임 근처의 바알하솔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때에 압살롬이 왕자들을 모두 초대하였다.

24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도 찾아가서 말하였다. "임금님, 제가 이번에 양털을 깎게 되었으니, 임금님도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아들과 함께 내려가셔서, 잔치에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5 왕이 압살롬에게 말하였다. "아니다, 아들아. 우리가 모두 따라가면, 너에게 짐이 터이니, 우리는 가지 않으마." 압살롬이 계속하여 간청을 하였지만, 왕은 함께 가고 싶지 않아서, 복을 빌어 주기만 하였다.

26 그러자 압살롬이 말하였다. "그러면 맏형 암논이라도 우리와 함께 가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암논이 너와 함께 가야 이유가 무엇이냐?"

27 그래도 압살롬이 계속하여 왕에게 간청하니, 왕은 암논과 다른 왕자들이 모두 그와 함께 가도 좋다고 허락하였다.

28 압살롬은 이미 자기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암논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질 때를 지켜 보아라. 그러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쳐죽이라고 하면, 너희는 겁내지 말고 그를 죽여라. 내가 너희에게 직접 명령하는 것이니, 책임은 내가 진다. 다만, 너희는 용감하게, 주저하지 말고 해치워라!"

29 마침내 압살롬의 부하들은 압살롬의 명령을 따라서, 하라는 그대로 암논에게 하였다. 그러자 다른 왕자들은 저마다 자기 노새를 타고 달아났다.

30 그들이 아직도 길에서 달아나는 동안에, 다윗에게는, 압살롬이 왕자들을 모조리 쳐죽여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는 소식이 들어갔다.

31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입고 있는 옷을 찢고 땅바닥에 누워 버렸고, 그를 모시고 있는 신하들도 옷을 찢었다.

32 때에 다윗의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이 나서서 말하였다. "임금님, 젊은 왕자들이 모두 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암논 사람만 죽었습니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보인 날부터, 압살롬은 그런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33 그러니 이제 높으신 임금님께서는, 왕자들이 죽었다고 하는 뜬소문을 듣고 상심하지 마십시오. 암논 사람만 죽었을 따름입니다."

34 사이에 압살롬은 도망쳐 버렸다.

바로 때에 예루살렘의 보초병 하나가, 호로나임 쪽에서 많은 사람이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서, 왕에게 알렸다.

35 그러자 요나답이 왕에게 아뢰었다. "틀림 없습니다. 왕자님들이 돌아오시는 것입니다. 종이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36 요나답이 말을 마치는데, 왕자들이 들어와서, 목을 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왕도 통곡하고, 모든 신하도 통곡하였다.

37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암미훗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죽은 아들 암논 때문에 슬픈 나날을 보냈다.

38 압살롬은 도망한 뒤에 그술로 가서, 곳에 동안 머물러 있었다.

39 그러는 사이에 다윗 왕은 암논을 잃었을 때에 받은 충격도 서서히 가라앉았고, 오히려 압살롬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졌다.

 

복수의 날이 왔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질 때까지 두 해를 기다렸습니다. 다윗은 이 일에도 연루되어, 압살롬의 잔치에 암논과 왕자들의 참여를 허락합니다. 형제간의 살인이 벌어지고(23-29절) 모든 왕자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왕은 비통해합니다. 다행히 살아 돌아온 왕자들로 인해 안도의 눈물을 흘리지만 다윗은 죽은 암논으로 인해 슬픈 나날을 보냅니다(30-37절).

 

암논이 다말을 범할 때도 다윗이 이용되었는데 이번에도 이용됩니다. 그럼에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이번에도 그저 슬퍼만 할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삶에서 거듭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나서서 해결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영역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런 상황을 회피하며 가만히 있는 것은 굶주린 죄에게 먹잇감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

 

 

2년을 기다렸다. 

다말은 압살롬의 집에 머물고 있다. 

다윗은 암논의 범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다만 분개했을 뿐이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간다. 

압살롬은 매일 다말의 모습을 보면서 안따까움의 한숨을 쉰다. 

결혼도 하지 못하는 다말의 슬픈 모습이 압살롬의 심장을 찌른다. 

지난 2 동안 큰형 암논을 떄마다,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느라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때를 기다렸다. 아무때나 일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적절한 , 모두가 사건을 잊어버릴 , 경계심이 풀리고 각자가 자신의 일에 매진 , 때를 기다려왔다. 

어떻게 암논에게 복수할 지를 계획한다. 더불어 자신의 도망계획도 세운다. 

가능한 철저하게, 절대 실수가 없도록 준비한다. 

지난 2년은 준비의 기간이었다. 

 

낌새

 

압살롬이 다윗 왕에게 양털깍는 잔치에 초대한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말이다. 

매년 잔치가 있어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매년 모든 형제들을 초대했는지는 미지수다. 

아버지 다윗을 초대하는 것도 매년 했는지, 이번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뭔가 낌새가 있다. 

다윗 왕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압살롬에게 묻는다. 

 

26 그러자 압살롬이 말하였다. "그러면 맏형 암논이라도 우리와 함께 가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암논이 너와 함께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암논이 굳이 갈야 필요가 있는지 묻고 있다.

암논과 압살롬 사이의 일들을 알고 있었던 다윗이라면 당연히 이쯤에서 제동을 걸어야 했다. 

낌새가 이상하니, 조용히 압살롬에게 어떤 의도와 꿍꿍이가 있는지 물어야 했다. 

그리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암논에게 죄를 물어 책임을 지게 하든지, 압살롬과 암논 사이의 중재를 통해 서로 화해하게 하든지 해야 일이었다. 

사실 압살롬의 마음/생각/계획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32 그 때에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이 나서서 말하였다. "임금님, 젊은 왕자들이 모두 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암논 한 사람만 죽었습니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보인 날부터, 압살롬은 그런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사촌이었던 요나답은 어느 정도 압살롬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대충은 알고 있었을 것이고, 아주 구체적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압살롬이 칼을 갈고 있을 거라는 추측은 충분히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나의 범죄

 

그럼에도 다윗은 일련의 사건을 크게 문제시 하지 않았다. 

이게 다윗의 실수 혹은 약점이었다. 

그도 너무 죄악을 저질렀고, 죄를 용서받았다. 

아마도 은혜의 깊이가 너무 컸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관대한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퉁치기엔 결과가 너무 치명적이다. 

관대함이 필요하다. 포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죄에 대해 공정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도 왕의 책무이다. 

자신의 아들의 범죄라고 해서 그냥 모른 지나가서는 안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으로 정당하게 잘잘못을 가리지 않으면 사적 복수가 횡행한다.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정당하게 판결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살해한 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만큼 나쁜 죄가 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의 죄에 대해 제대로 치리하지 않은 것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공정하게 치리해야 한다. 원칙대로 치리해야 한다. 죄를 묻고 그에 응당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왕이 해야 일이었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의 범죄가 되는 것이다. 

 

리더십

 

사적으로 은혜를 베풀 때가 있고, 공적으로 정당한 책임을 물을 때가 있다. 

이것이 리더십의 일이다. 

그래서 리더십은 이중적일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야 무한정 용서하고 싶다. 그러나 공적 영역에서는 원칙이 중요하다. 규정과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책임을 나누는 한이 있더라도 모른 넘어가서는 안된다. 

분명히 밝힐 것은 밝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니 리더는 고통을 달고 산다. 

은혜와 공정을 항상 저울질 해야 한다. 

그렇다고 은혜가 사라진 세상이 어찌 아름답다고 있는가? 

딜레마고통의 연속이다. 

하나님의 딜레마는 모든 리더들의 딜레마다. 

하나님의 자기 부인/ 자기 희생은 그래서 모든 리더들의 자기 부인/ 자기 희생이다. 

 

——

용서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그렇다고 마치 제가 죄가 없었던 사람처럼 살지 않게 해주세요. 

겸손하게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래야 주변의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대할 있을 것입니다. 

죄를 덮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칫 은혜라는 이름으로 죄를 덮지 않게 주세요. 

죄는 빛으로 드러나고 죄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받고, 그리고 다시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야 것입니다. 

그렇게 밝은 빛이 우리 모두에게 비추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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