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29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과

2자매 압비아와 우리의 전우인 아킵보와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4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나는 예수에 대한 그대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그대의 사랑 관하여 듣고 있습니다.

6그대의 믿음의 사귐이 더욱 깊어져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일을 그대가 깨달아 그리스도께 이르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7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그대로 말미암아 마음에 생기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동역자인 빌레몬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쓰면서, 그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1-3). 바울은 빌레몬을 위해 규칙적으로 기도하면서, 그가 믿음과 사랑 가운데 자라가고 있다는 소식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4).

 

바울은 빌레몬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또한 그는 빌레몬의 섬김으로 인해 위로와 힘을 얻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현합니다(6-7). 누군가 영적으로 성장하며 자라가길 기대하며 사람을 위해 기도해본 적이 있습니까? 주변에 주님을 알아가며 사랑함으로 자라가길 소망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품고 기도해봅시다.

 

——

편지를 통한 교제

 

1. 가정 교회, 그리고 편지

 

2자매 압비아와 우리의 전우인 아킵보와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도시의 몇몇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10명에서 30 정도의 작은 규모의 교회였을 것이다. 

성도의 가정에 모여 성만찬을 실행하고 저녁 식사를 먹는다. 처음오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식사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이도 하고 찬양을 부르기도 한다. 가정교회에 전달된 사도들의 편지가 있다면 편지를 전체 앞에서 읽고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 토론으로 번지기도 한다. 어제 읽었던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로버트 뱅크스, IVP) 나와 있는 내용들이다. 

로버트 뱅크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IVP

www.ivp.co.kr/books/book_detail.html?book=s01&idx=1255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Going to Church in the First Century

www.ivp.co.kr

바울과 디모데는 이렇게 빌레몬 가정 교회에 편지를 썼다. 

지금이야 직접 가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고, 최근에는 온라인 실시간 대화가 되는 시대이니 전혀 다른 역동이 일어나곤 하지만, 빌레몬이 살던 시대에는 편지가 아니고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소식이나 메시지를 들을 없었을 것이다. 

편지를 쓰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고, 전달하는 , 그리고 함께 모여 읽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일일 것이다. 

모든 의사소통 행위가 일종의 이벤트다. 

 

바울과 디모데는 편지 목회를 하고 있다. 

빌레몬과 그의 교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고서야 편지를 기록하고 그것을 오랫동안 전달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때로 글은 오해를 낳기도 하기 때문에, 편지가 어떤 교회에 분란을 낳을 수도 있다. 토론하다가 마음 상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직접 방문해서 자신의 의도한 정확한 뜻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이런 부작용이 있음에도 바울과 디모데는 편지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았고 실제로 썼다. 

현재 신약의 서신서들이 이런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다. 

아마도 많은 편지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성경이라고 확정되기 전에 많은 편지들이 회람되었을 것이지만, 어떤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전체 신앙 공동체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있었을 수도 있다. 

 

나에게 편지는 많은 시간, 에너지, 그래서 사랑이 들어가는 행위이다. 

편지를 쓰는 것이 쉽지 않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오해나 불신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나, 단어 하나, 이모티콘 하나에 민감해진다. 

편지는 기록에 남는 것이니만큼 더욱 조심스럽다. 

하지만, 정돈되고 정갈한 언어로 사랑을 담아 격려와 권면을 하기 위해서는 글로 편지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두고 두고 읽으면서 음미할 있다. 

 

 

2. 기도할 때마다 기억하기 

 

4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어떻게 기도생활을 했을까? 

갑자기 너무 궁금해진다. 

내가 그동안 해오던 기도 생활과 비슷할까 아님 전혀 다를까? 

베드로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 시간을 가졌다. 사도행전 3 1-2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시에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보인다. 

정기적인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마치 어떤 예식처럼 기도 시간을 지켰던 같다. 

바울과 디모데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마다, 혹은 혼자서 기도 시간을 지킬 때마다, 그들은 빌레몬 가정 교회를 떠올렸다. 

빌레몬 가정 교회의 성도들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렸다. 

함께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대화, 그리고 함께 먹었던 식사 등을 떠올렸다. 

 

기억은 지도자에게 필요한 좋은 도구다. 

기억하지 못하면 정보가 부족하면 제대로된 기도도 드릴 없다. 

제대로된 격려와 권면도 불가능하다. 

사람에 대한 기억을 높여야 한다. 

함께 했던 추억, 함께 먹었던 음식, 그의 인품과 개성, 그의 열정과 은사가능하면 섬세하게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그동안 부분에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때로는 기억을 주관하시도록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기독교의 기억의 종교다. 

머리를 비우는 종교가 아니라, 채우는 종교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 죽음과 부활, 그분의 가르침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성만찬은 예수님을 기억하도록 돕는다. 

성령님도 예수님을 기억하는데 일조하신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기억한다. .

 

그리고 기억의 방식은 결국 형제자매들에게도 이어진다.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그들의 삶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사랑을 계속 복기한다. 

그렇게 기억이 뚜렷하면 할수록 영성적으로 도움이 된다. 

 

 

3. 믿음, 사랑

 

5나는 예수에 대한 그대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그대의 사랑 관하여 듣고 있습니다.

 

편지니까 의례 하는 말로 들릴 있다. 

하지만, 바울과 디모데는 빌레몬 가정 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행위에 대해 듣고 있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빌레몬의 행동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하게 되면, 기억하게 되고, 기억하다 보면 묻게 된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동안 과정을 내가 간과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묻지 않았다. 묻는 것은 과도한 개입으로 가는 길이라 여겼다. 과도한 개입은 자칫 험담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균형을 잃은 판단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아예 적당히 알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의 구체적 행위는 자녀들의 상황을 계속 묻고 듣고 알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관련된다. 

지금처럼 수많은 변화를 맞닥뜨리는 코로나 상황에서 자녀들이 겪고 있는 숱한 변경/수정/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가고 기억하고 반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있다. 

 

바울과 디모데는 빌레몬 가정 교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컸고, 이는 그의 기도제목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빌레몬 가정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귀를 세우고 듣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빌레몬 가정 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빌레몬서를 계속 읽고 묵상하다보면 힌트가 나올 지도 모른다. 

그런 힌트를 찾아가는 매일 매일의 묵상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울의 기도에 주목하게 된다. 

믿음의 사귐이 더욱 깊어지길 기도하고 있다. 

믿음은 단순히 지적 동의가 아님이 더욱 분명해 진다. 

믿음은 사귐을 동반한다. 지적인 동의를 넘어서서 인격적 신뢰를 바탕으로 사귐의 단계에 이른다. 믿음의 성숙은 사귐의 성숙과 관련된다. 

이성적 판단이 믿음의 전체가 아니다. 감정적 반응과 의지적 결단이 동시에 수반되는 전인격적인 역동이 믿음이다. 그러니 사귐이 일어난다. 사귀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사귐이 없는 믿음은 자칫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빌레몬의 사랑은 바울을 크게 기뻐하게 만든다. 빌레몬의 사랑의 행위는 소문이 자자했을 것이다. 

사랑의 행위에 대한 바울의 격려는 빌레몬으로 하여금 더욱 사랑의 실천을 행하도록 동기부여 했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과 격려가 사라지면, 공동체는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계속되어야 한다. 

 

——

새롭게 빌레몬서로 묵상하도록 인도하신 예수님, 

구절 하나 하나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또렷이 바라보게 됩니다. 

속에서 예수님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셨는지 봅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서로를 향한 기도가 이어지고, 믿음과 사랑의 소식이 전해지고, 기쁨이 드러나는 이런 관계를 맺게 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저에게도 이런 관계가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믿음의 사귐이 깊어지고, 사랑의 소문이 많아지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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