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06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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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주간의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2그래서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3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무덤으로 갔다.

4둘이 함께 뛰었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

5그런데 그는 몸을 굽혀서 삼베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시몬 베드로도 그를 뒤따라 왔다. 그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삼베가 놓여 있었고,

7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삼베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

8그제서야 먼저 무덤에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9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10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주일 이른 새벽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녀는 무덤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옮겼다고 생각하여 제자들에게 달려가 사실을 전합니다(1-3). 베드로와 요한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무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예수님을 감쌌던 삼베옷과 머리를 싸맸던 수건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누군가 가져갔다고 믿습니다(4-8).

 

제자들은 예수님이 여러 말씀하셨고 성경에서 약속한 부활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한 그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9-10).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은 잊은 자신들의 생각에만 사로잡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까지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로 갔을까 걱정했을 것입니다. 나도 생각에만 몰두해서 주님의 말씀을 잊은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새벽 달리기

 

1.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의 자기 인식은 참으로 긍정적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을 정말로 많이 사랑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요새의 용법에는필자”, “J” 등을 사용하여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같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배워야 자세다. 

자신을 사랑받는 자로 규정한 사람들은 결코 다른 길로 가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의 의중, , 의도에 맞춘 삶을 살아간다. 

요한은 정말 그랬다. 

죽기까지 예수님을 위해 살아간다. 

예수님의 사랑을 노래한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에 집중한다. 우리에게 사랑으로 신앙을 증명하라고 요청한다. 

이게 사랑의 힘이다. 사랑받는 자의 아름답고 풍성한 삶이다. 

 

2. 달리기

베드로와 요한이 달리기를 한다. 

얼마나 급한 상황인가!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여성들의 말에 혼비백산정신이 없다. 

뛰기 시작한다. 골목으로 뛰쳐나와 거리를 가로지른다. 무덤이 있는 곳까지 울퉁불퉁한 돌산길을 뛰어 오른다. 

숨이 가쁘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같다. 마라톤처럼 숨을 고르면서 정신이 없다. 페이스를 조절할 없었다. 

그냥 뛰는 것이다. 자신이 있는 최고의 속도로예수님의 시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달린다. 

 

베드로보다는 요한이 빨랐다. 나이차이? 사랑의 차이? 

하지만 요한은 무덤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덤 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베드로를 기다렸다. 

삼베가 보인다. 저건 예수님 아닌가? 어슴푸레 보이는 흰색 세마포에서 희망을 봤을 수도 있다. 아직 무덤에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돌문이 열린 것도 이상하지만, 무덤을 지키던 로마 병정들이 보인다. 혹시 매복했다가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을 잡으려는 시도는 아닌가? 이상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로마 병사들의 함정에 빠져서 예수의 시체 탈취 사건의 주범이 되는 순간, 예수의 제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울 있겠다싶다. 

생각이 극단으로 치닫는 순간, 베드로가 도착했다. 

베드로는 생각이고 나발이고일단 무덤으로 들어간다. 그의 저돌성은 익히 알고 있던 , 충분히 그럴만한 위인이었다. 앞뒤 재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로마 병사가 있든 말든, 주변에 뭐가 있든 말든, 일단 무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숨을 헐떡이며무덤 안의 동굴의 울림은 소리를 더욱 거칠게 만들었다. 

새벽의 달리기는 예수님의 제자 핵심이었던 명에게 마치 영원의 시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두려움, 걱정, 불안 

멈출 없었던 달리기는 동굴 세마포 앞에서 산화된다. 

잊을 없는 그날 새벽의 전력질주. 

 

3. 수건과 삼베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졌다. 그런데 그의 몸을 싸맸던 삼베와 머릿수건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돌무덤의 입구의 큰돌을 누군가가 옮겨놓았다. 시체 도둑이거나 로마 병정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시체를 싸맸던 삼베와 수건을 벗겨서 두었는가? 그것도 머릿수건은 곳에 따로 개켜 있다니 

 

7_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삼베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

 

제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었다. 

시체를 가져간 사람이 누구든, 시체를 감쌌던 삼베와 수건을 풀어 놓을 리가 없었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시체의 옷을 벗긴다?? 

썩어가는 맨몸의 시체를 들고 옮긴다?? 

사이에 머릿수건은 쪽에 가지런히 개켜 놓는다??

이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설명할 방법이 별로 없다. 

다른 방식으로 추리해야 맞다. 기존의 시체 탈취 방법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예수님이 자신이 부활할 것이라 말했지만, 마음에서의 부활이지 육체적 부활일 것에 대해서는 꿈도 꾸었다. 

성경의 기록도 믿지 못했고, 예수님의 말씀도 흘려 보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같다. 

예수님의 부활은 명확하다. 거짓이 아니다. 

저자는 그날의 새벽 달리기부터, 무덤과 세마포의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이 명확한 부활사건을 철저하게 믿기를 바랬다. 

그날 새벽의 제자들은 믿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니 믿을 밖에 없을 정도로 분명한 증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코 제자들이 시신을 어떻게 했다는 식의 유언비어는 성립이 불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시체의 옷을 풀어헤치고 예수님의 맨몸시체를 옮길 정도의 미친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늘따라 빈무덤의 부활의 증거가 더욱 선명해진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자신의 머릿수건을 차곡차곡 개켜서 곳에 두고 나오셨다. 

돌문이 마치 자동문처럼 손만 대자마자 굴러갔다. 

이미 부활체에 어울리는 새옷을 입고 계셨다. 

그렇게 유유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다. 

이제 쇼타임이다. 진정한 왕이 되셨다.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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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 
당신은 숨을 헐떡이며 전력질주 하던 제자들 옆에 계셨을 겁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부활을 믿듯, 당신의 재림도 믿습니다. 
오셔서 모든 고통과 슬픔 당한 사람들을 구원하소서. 

내전 중에 있는 모든 나라를 구원하소서. 

기후위기로 지구는 병들었습니다. 지구를 구해주옵소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세마포와 머릿수건을 보여주소서. 

위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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