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26 수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4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 써서, 우리야의 편에 보냈다.

15 다윗은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16 요압은 적의 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적의 저항 세력이 가장 강한 곳에 우리야를 배치하였다.

17 성의 사람들이 나가서 요압의 군인들과 싸우는 동안에, 다윗의 부하들 쪽에서 군인 사람이 쓰러져서 죽었고, 때에 사람 우리야도 전사하였다.

18 요압이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전쟁의 상황을 모두 전하였다.

19 요압은 전령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네가 이번 전쟁의 상황을 모두 임금님께 말씀드리고 났을 때에,

20 임금님이 화를 내시며 네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그토록 성에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적의 성벽 위에서 적병들이 활을 줄도 몰랐단 말이냐?

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누가 쳐서 죽였느냐? 어떤 여자가 성벽 위에서 그의 머리 위로 맷돌 위짝을 던져서,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않았느냐? 그런 것을 알면서, 너희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성벽에 가까이 갔느냐?' 하시면, 너는 '임금님의 부하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22 전령이 떠나, 다윗에게 이르러서, 요압이 심부름을 보내면서 일러준 말을 모두 전하였다.

23 전령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적은 우리보다 강하였습니다. 적이 우리와 싸우려고 평지로 나왔으므로, 우리는 적들을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성문 가까이까지 적들을 밀어붙였습니다.

24 때에 성벽 위에 있는 적들이 임금님의 부하들에게 활을 쏘았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부하들 가운데서 사람이 죽었고, 임금님의 부하인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25 그러자 다윗이 전령에게 말하였다. "너는 요압에게, 칼은 편도 죽이고 편도 죽이기 마련이니, 이번 일로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여라. 오히려 성을 계속 맹렬히 공격하여서 무너뜨리라고 전하여, 요압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26 우리야의 아내는,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의 남편을 생각하여 슬피 울었다.

27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니,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서,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왔다. 여인은 이렇게 하여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

 

다윗은 이제 우리야를 죽이려 합니다.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한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다윗은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자신을 죽이라는 교지를 본인 손으로 들고 가게 하는 잔인한 명령을 내립니다. 요압은 이를 실행하고(14-17), 우리야의 전사 소식을 들은 다윗은 전장에서 일어날 있는 일로 여기며 요압을 격려합니다(18-25). 그러자 다윗은 밧세바를 아내로 삼습니다(26-27).

 

성범죄가 살인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죄는 다른 죄를 낳고, 죄로 확장됩니다. 밧세바의 모든 것을 빼앗고도 부족해 애도 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아내로 삼아버립니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이전까지 왔던 다윗이라고는 믿기 힘든 양면성입니다. 죄의 무서움과 인간의 나약함을 묵상합시다.

 

——

참담함

 

결국 일이 이렇게 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다윗의 악독함은 사울을 능가한다. 

이렇게 치밀하게 악을 시전하다니치가 떨린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니 믿기지 않는다.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은 아합보다 잔인하고 저열하다. 

자신이 살기위해 자신의 신복,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쳐 싸우는 우리야를 이렇게 죽였다. 

하늘에서 우리야는 억울하다고 하소연 할게다. 

 

중간 중간에 하나님은 개입을 안하셨을까? 

오늘은 이상하게 분노의 마음이 너무 크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으셨나? 

다윗의 이런 극악무도한 행적을 보고만 있으셨나? 

다윗이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그것은 같은 전우에게 전우를 죽이라고 것이다. 

중간에서라도 갓이든 나단이든 선지자들을 불러 다윗의 죄를 막았어야 했지 않았을까!!

 

다윗의 이런 모습에 실망스럽다. 

다윗은 이런 모습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 다윗,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랐던 사람 다윗, 

그도 이렇게 무너진다. 

처참하게 망가졌다. 

죄값을 치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결국 그는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한다. 

 

이런 젠장 

남편을 살해한 사람과 재혼하다니 

이런 치정이 어딨는가? 

권력형 치정 살인.

온갖 저주의 말로 저주하고 싶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로 떡하니 이름을 올린 것이 싫다. 

이런 사건 때문에 목회자들의 범죄에 변명할 꺼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너무 싫다. 

다윗도 그랬는데…’

다윗이 그랬기 때문에 나도 너도 그래도 된다는 말인가!! 

참으로 시대 왕의 권한이라는 것이 이토록 막강했구나. 

 

나를 다시 돌아본다. 

인간사의 수많은 사건들을 돌아본다. 

어제는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 지존파 사건 이야기를 시청했다. 

부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한 살인이 빈자들을 죽였다. 

모순, 아이러니 

아이러니에 갇힌 인간들

 

——

하나님, 

다윗의 실패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런 사람을 신앙의 위대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기가 마음이 어렵습니다. 

 

저의 실패를 봅니다. 

여전히 실패하는 저를 돌아봅니다. 

다윗 같은 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죄로 인해 고민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짓지 않고 살아가도록 도와주세요. 

선을 넘지 않도록 

옥상에 너무 머물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5 25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1 다음 봄에, 왕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의 부하들과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맡겨서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무찌르고, 랍바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어느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 올라가서 거닐었다. 때에 그는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보았다.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다녀온 신하가,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

4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5 얼마 뒤에 여인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6 다윗이 소식을 듣고는, 요압에게 전갈을 보내서, 사람 우리야를 왕궁으로 보내게 하였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내니,

7 우리야가 다윗에게로 왔다. 다윗은 요압의 안부와 군인들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의 형편도 물었다.

8 그런 다음에 다윗은 우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쉬어라." 우리야가 어전에서 물러가니, 왕은 먹을 것을 함께 딸려서 보냈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자기 상전의 종들과 함께 대궐 문간에 누워서 자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0 다윗은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원정 길에서 돌아왔는데, 집으로 내려가지 않는지를, 우리야에게 물었다.

11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12 다윗이 우리야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여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겠다." 그리하여 우리야는 밤을 예루살렘에서 묵었다. 다음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다가,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였다. 그러나 저녁때에 그는 여전히 왕의 신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왕이 전쟁에 출전해야 할 때임에도, 다윗은 나가지 않고 부하들만 보냅니다. 한가로이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 한 여인의 모습을 보고 데려와 동침합니다(1-4절). 또한 밧세바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이를 덮기 위해 전장에 있던 우리야를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야의 충직함으로 인해 실패합니다(5-11절). 그를 술에 취하게 해 다시 자신의 죄를 덮어보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합니다(12-13절).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느슨해질 때, 우리는 죄의 유혹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됩니다. 풀려 있는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죄는 순식간에 우리를 지배하고 끊임없이 충동질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빠른 속도로 죄를 향해 달려갑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대충 거짓으로 덮을 일이 아닙니다. 빨리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

왕궁의 옥상

 

다윗은 자신을 위한 왕궁을 지었다.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순적하게 지을 있었다. 

당대 최고의 목재들과 장식으로 왕궁을 꾸몄다. 

통일 왕국의 위엄은 왕궁에서 드러난다. 

힘이 있고 재정적 여력이 충분한 왕의 궁은 위풍당당하다. 

반면에 재정적 여력이 없는 왕의 궁은 그야말로 궁색하다.   

 

다윗 성의 왕궁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옥상은 예루살렘 시내가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었다. 

ViewPoint

전체를 눈에 조망할 있는 , 

전쟁 시나 일상의 순간에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빠르게 있는 , 

그곳이 왕궁의 옥상이었다. 

위기 상황에는 정보의 중심, 컨트롤 타워가 절실하다. 

그러나 평시에는 너무 과도한 정보가 몰리기도 곳이 왕궁의 옥상이었다. 

과도한 정보는 과도한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아는 것이 많은 만큼 갖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웹서핑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갖고 싶은 ,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도 그런 적이 있었다. 

“나 느부갓네살이 집에서 편히 쉬며 궁정에서 평안을 누릴 때, 꿈을 꾸었는데 그 꿈 때문에 두려워하였다.”(다니엘 4:4-5)

꿈의 예언대로 그는 바빌로니아의 왕궁의 옥상을 걷다가 이렇게 말하게 된다. 

“이 바빌로니아는 위대하지 않은가? 내가 내 힘과 권력으로 세웠지 않은가? 내 영광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닌가?”(다니엘 4:30)

결국 그는 예언대로 7년간 소처럼 풀을 뜯으며 들판에서 지내게 된다. 

왕궁의 옥상이 그만큼 무서운 곳이다. 

수많은 정보와 수많은 부와 수많은 아부가 모이는 곳이다. 

그러니 교만해 밖에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 보면 어쩔 없이 이런 마음을 갖게 된다. 

왕궁의 옥상은 바로 그런 곳이다. 

 

20년의 공동체 생활은 나를 여러 가지 정보를 듣고 수집할 있는 공간으로 이끌었다. 

부와 영광은 아니지만, 과도한 정보의 중심이라고는 있다. 

내가 감당할 있는 수준이 아님은 확실하다. 

굳이 몰라도 되는 정보들이 계속 날아들어온다. 

리더십의 위치는 정보들을 관리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흘려보낼 것과 가둬둘 , 

중요도에 따라 분류할 , 시급성에 따라 분류할 , 

오래두고 분석할 것과 당장 실천할 . 

그야말로 정보를 다뤄야 한다. 

기억하고 오랫동안 곱씹을 것이 있고, 빠르게 잊어 버리는 것이 최선인 정보도 있겠다. 

많이 보인다고 해서, 많이 안다고 해서 경건해지는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오히려 많이 보이고 많이 알아서 더욱 교묘해질 있으며 더욱 교만해 있다. 

이게 왕궁 옥상의 딜레마이다. 

전시에 옥상은 탁월한 컨트롤 타워가 되지만, 평시엔 유혹의 성지가 있다. 

왕궁 옥상에 오래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게다가 편안히 거니는 것은 최악이다. 

왕궁 옥상은 공동체를 위한 곳이지 자신을 위한 곳이 아니다. 

왕궁 옥상은 전체를 살피며 위기를 예상하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왕의 개인적인 욕망을 실현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왕궁 옥상에 있으면그런데도 태도를 갖기 마련이다. 

 

4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여인을 것이야 어쩔 없다고 치자, 그녀가 누군지 신하를 통해 알아보는 것도 백번양보해서 그럴 있다고 치자, 그럼 거기서 멈춰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그런데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게 왕궁 옥상의 힘이다. 

그런데도 태도가 자라는 곳이 왕궁 옥상이다. 

자신은그럼에도 있다 특권의식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법이 금지하는 일임에도, 일반적인 상식에도 벗어나는 일임에도, 인간적 도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왕궁 옥상에 있는 자는 일을 하고야 만다. 

수많은 아내가 있어도, 이상을 원한다. 

미의 기준이 올라간다. 

욕구의 기준이 올라간다. 

그렇게 괴물이 되어간다. 

 

6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는, 요압에게 전갈을 보내서, 헷 사람 우리야를 왕궁으로 보내게 하였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내니,

 

괴물 다윗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지점이다. 

왕궁 옥상에서 이미 계획했던 것일까? 

아님 사건이 벌어지자 무마하려고 잔머리를 굴린 결과일까? 

어찌되었건 교묘하고 악독하다. 

이전에 알던 다윗이 아니다. 

아둘람 공동체를 만들 때의 다윗이 아니다. 

사울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때의 다윗이 아니다. 

다윗은 선을 넘고 있다. 

 

넘지 말아야 선이 있다. 

하나님께도 그렇다. 

그분은 우리를 용납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가능하면 넘지 않아야 선을 지키는 것이 좋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훼방하지 말라고 선을 그어 주셨다. 

성령을 훼방하는 , 그분이 그토록 원하시는 예수님이 왕이 되신다는 소식이 드러나는 것을 막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왕궁의 옥상에서 내려오고 싶다. 

아둘람 골짜기가 어찌보면 천국이었다. 

최소한 지금의 자리에서 최대한 겸손하게 임해야 한다. 

주님의 도움이 그래서 필요하다. 

 

—— 

진정한 왕되신 예수님, 

당신은 왕궁의 옥상, 옥상의 옥상에 계시다가 지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왕궁의 옥상은 당신의 자리지 인간의 자리가 아닙니다. 

혹여라도 제가 자리를 탐하려고 한다면 주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내려오게 주세요. 

옥상이 아니라 평지에서 주님을 위해 섬기고 싶습니다. 

옥상의 위험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혹의 심장은 옥상이었습니다. 

높은 곳을 취하려는 저의 욕구를 제어하게 해주세요. 

오늘도 주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모든 대화에 주인이 되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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