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5. 김혁수 

 

[본문_디모데후서 4:1-8] 

1나는 하나님 앞과,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 2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3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5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려서 고난을 참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6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8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Chapter 4

1 I solemnly urge you in the presence of God and Christ Jesus, who will someday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when he comes to set up his Kingdom: 2 Preach the word of God. Be prepared, whether the time is favorable or not. Patiently correct, rebuke, and encourage your people with good teaching. 

3 For a time is coming when people will no longer listen to sound and wholesome teaching. They will follow their own desires and will look for teachers who will tell them whatever their itching ears want to hear. 4 They will reject the truth and chase after myths. 

5 But you should keep a clear mind in every situation. Don’t be afraid of suffering for the Lord. Work at telling others the Good News, and fully carry out the ministry God has given you. 

6 As for me, my life has already been poured out as an offering to God. The time of my death is near. 7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and I have remained faithful. 8 And now the prize awaits me—the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will give me on the day of his return. And the prize is not just for me but for all who eagerly look forward to his appearing. 

 

 Tyndale House Publishers, Holy Bible: New Living Transla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15), 딤후 4.

 

 

[설교]

0. 들어가며 

- 레디 플레이어  

어제 딸과 영화 편을 보았습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어디 나가기도 그렇고, 딸도 심심해하는 같아서 영화를 봤는데요,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영화입니다. 집에 계시다면 검색해보세요. 

 

요사이 유행하고 있는 가상 현실, 소위 메타버스를 다룬 영화입니다. 코로나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요. 마치 코로나를 통해 비약적으로 비대해진 온라인 세상을 미리 예견이라도 하는 , 가상 현실 아바타의 생활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VR 고글을 쓰고, 프로그램 반응형 수트를 입고 일상의 대부분을 가상 현실 세계인 오아시스에서 보냅니다. 가상 현실은 더이상 가상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현실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가상 현실은 미래의 현실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측면인데요, 성경의 장절이 가상 현실로 들어가는 코드가 되어 언제든지 성경의 세계로 들어갔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을 누르면 1세기 로마와 로마 감옥 속에 갇힌 바울, 그리고 바울의 편지가 도착한 에베소 교회와 편지를 읽는 디모데의 장면으로 이동하는 것이죠. 성경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측면인데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뚫고 나가기는 점점 어려워지겠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세계 속에 매몰되어 나오려고 하지 않을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각자의 세계에 갇혀 전혀 배우려고 하지 않는, 그래서 가르침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도래할 같았습니다.

 

오늘 마지막 당부 시리즈 마지막 시간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당부를 들으면서 메타버스에 익숙해질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있는지 함께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 

 

1. 엄중함

1) 꼰대 바울 

오늘 말씀을 처음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꼰대 바울이었습니다. 왜냐구요. 1절을 읽어볼까요? 

 

1나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

 

구절을 읽을 때는 심각하게 목소리를 굵게 만들어서 말해야 합니다. 바울의 표정과 말투를 상상해봅시다. 그렇습니다. 전형적인 꼰대 모습입니다. ‘진리 안에 머물라라고 한다든지, 성경의 중요성을 역설한다든지,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엄숙하게 명령한다든지이런 표정을 지으면서 이런 단어를 쓰면서 무게 잡고 명령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르곤 합니다. 아마 그래서 여러분 중에 일부는 바울을 싫어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꼰대를 정말 상대하기 싫지만, 꼰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꼰대에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들을 들어줄 만큼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없겠지만, 간혹 정말 배울만한 컨텐츠 진정성을 가진 꼰대라면 번쯤 기울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울이 그런 꼰대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우리가 배울만한 컨텐츠가 있습니다. 게다가 그의 삶에 진정성이 묻어 있습니다. 그냥 꼰대가 아닙니다. 

 

2) 누구 앞에 있는가

그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엄중하고 무겁게 명령을 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그는 하나님 ,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 그리고 재림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생각할 가장 엄중하고 무겁고 핵심적인 존재와 사건들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재림, 그리고 심판바울은 지금 앞으로 닥칠 일들을 떠올리고 있는 겁니다. 과거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이뤄놓은 인류 구원의 역사도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닥칠 일들을 생각할 , 무거움과 긴박성과 엄중함을 떠올리며 가장 확신에 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엄중함은 단순히 그의 성격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엄중함은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있기 떄문에 나오는 입니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존재도 존재지만, 바울은 그분들이 하실 일들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주의 창조자 되신 하나님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심판자이기도 하십니다. 다시 오셔서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 인류는 앞에서 마지막 정산 혹은 심판을 받게 것입니다. 바울은 미래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의 명령어를 입밖으로 꺼냅니다. 

 

2. 말씀을 선포하라 

1)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그렇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19-20)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나, 바울이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이나 지극히 유사합니다. 

 

2) 케리소 

그런데 약간 다른 점도 포착됩니다. 그것은 바로 케리소라는 단어가 가진 원래 때문에 일어납니다. 바울은 말씀을 선포하라고 , 케리소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왕의 전령이 사람들에게 정책이나 입장 등을 선포할 쓰는 단어입니다. 전령은 왕의 특별한 권위를 부여받습니다. 사람들은 전령을 왕의 대리자라고 생각하고 전령의 말은 왕의 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전령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공표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외쳤던 말이 있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라 가까이 왔다이런 것이 바로 케리소입니다. 바울은 오랫동안 성경 말씀, 하나님 말씀을 케리소해왔습니다. 이제 누구에게도 명령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디모데에게도 케리소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겁니다. 성경의 핵심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으로 끌고 들어왔음을 케리소하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따르면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사실을 케리소하라는 겁니다. 

 

선포는 모두가 알아야 공적 사실입니다. 단독 보도, 속보와도 같은 겁니다. 나라가 독립되었다고 공표하는 것과 같습니다.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라고 알리는 일본 국왕의 선포와 같습니다. 남북한이 통일한국이 되었다는 소식은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왔고 예수님을 신뢰하고 따르기만하면 나라 백성이 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언론에 뿌려야 합니다. SNS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케리소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시즌을 타지 않습니다. 계절에 따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왕의 전령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3)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그러나 바울은 케리소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성경의 유익에 대해서는 지난 주에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 가지고 있습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선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 탁월함 길러줍니다. 이런 성경을 계속 가르치고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라고 바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살짝 꼰대같은 느낌이 나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같이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이 가르치고,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라 등의 단어들입니다. 혼날 쓰는 단어들이잖아요.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현저한 차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때는 책이 많지도 않았고,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투브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성경이 있었으며, 그마저도 읽을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성경을 해석하고 해설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도 소수였으며,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의 말씀이 가르쳐져야 했습니다. 그러니 소수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해야 했습니다. 자신들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은 오히려 반대죠. 너무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공중에 다닙니다. 유툽을 열면 수많은 목사님들이, 설교가들이, 성경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꼰대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죠. 그렇지만, 그렇게 너무 많은 지식들과 해석이 난무하기 때문에, 도리어 건강한 가르침과 건강한 책망과 건강한 경계와 건강한 권면이 더욱 소중하게 되었습니다. 단편적인 정보와 지식 전달을 넘어서서 통합적이고 인격적이고 성육신적인 가르침과 책망과 주의를 주는 것과 권면을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예수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삶에 대한 기준을 가르칩니다. 그러면 기준에 어긋나 있는 성도들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어긋나려고 하는 성도들에게 주의를 니다. 그리고 기준에 따라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함께 권면 합니다. 

 

어떻게요? 성육신적이고 인격적이고 통합적으로 말이죠. 전달하는 방식도 하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용 아니라 내용에 걸맞는 가르침의 방식이 있는데, 예수님은 그걸 성육신적으로 인격적으로 그리고 통합적으로 실천하셨습니다. 그것도 함께 가르쳐지는 겁니다. 이게 건강한 가르침입니다. 

 

3.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1) 개의 동사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가르치는 것에 진심일까요? 동사를 개나 사용하면서 가르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라, 책망하라, 경계하라, 권면하라 등의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이렇게 엄중하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3-4절입니다. 

 

3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2) 듣고 싶은 것만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방금 말씀드렸던 건강한 가르침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선생님을 쫓아 다니게 것입니다. 자신들의 귀에 듣기 좋은 가르침만 들으려고 것입니다.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소설같은 꾸며진 이야기만을 좋아하게 것입니다. 벌써 2천년 전에 바울은 이런 현상을 보고 있었고, 심해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던 겁니다. 

 

3) 자동 추천 기능 

정말 어떻게 이렇게 떨어집니까! 현대 사회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세상입니다. 그걸 더욱 가속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자동추천기능입니다. 더욱 정교화된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가 선택했던 사항들을 보고 무엇을 좋아할지 통계적으로 판단해서 우리에게 계속 추천해줍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검색하지 않는한 유툽과 각종 SNS들은 내가 좋아할만한 내용들만 계속 보여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점점 한쪽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종합적으로 사고할 없게 되고, 편향적이고 당파적인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죠. 소위 일베니 메갈이니 하는 그룹들이 등장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렇습니다.

 

부담이 되고, 껄끄러운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래 걸리고 장기적으로 연마해야 지식이나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거나 삶의 전반에 영향을 주는 진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만 계속 배우다 보면 그분야에 전문가는 있을지 모르나 통합적 진리에서는 점점 멀어져서 극단적 자기 세계에 갇히기도 하는 겁니다. 

 

4)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이러니 바울의 오늘 엄중한 명령은 우리가 여러 차례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정말로 꾸중도 듣고, 주의도 듣고, 권면도 받고 설득도 당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가? 단순히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통합적인 진리를 배우고 익히고 있는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관점을 성경의 관점으로 계속 비춰보고 있는가? 성경의 관점으로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있는가? 과연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4. 나가며

- 10분의 1

사랑하는 여러분, 가르침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성육신적, 인격적, 통합적 가르침은 더욱더 힘듭니다. 가장 힘든 것은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리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2 디모데를 계속 배출해야 하는 곳입니다. 여전히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면서 책망과 경계와 권면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청년들 중에 2 디모데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전임사역자, 선교사, 목사가 필요는 없겠지만, 10 , 혹은 20 중에 명은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사회에서 좋은 직장인이 되는 , 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너무 귀하고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다만, 2 디모데도 나와야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책망하고 주의를 주고 권면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운 일이죠. 이해가 됩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정말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그게 족쇄가 되어서 스스로가 위선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하나님께서 일로 부르시는 사람이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당부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진리 안에 머물러라 그리고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쳐라. 죽음을 기다리는 바울이 마지막 호소와 당부가 우리 마음에도 남아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길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기]

1. 바울의 마지막 당부가 우리 뇌리와 마음에 남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진리에 머물라.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라. 그의 마지막 진심이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기도합시다.    

 

2. 성경을 가르치고 진리를 선포하는 일에 헌신하는 2 디모데가 나오길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개인의 결단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가 함께 기대하고 기도해야 일입니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바울이 엄중하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토록 무겁게 말하고 있나요?      

 

2. 말씀을 가르치는 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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