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21 수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3-4월호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2우리는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몸을 다스릴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3말을 부리려면,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말의 몸을 끌고 다닙니다.

4보십시오. 배도 그렇습니다. 배가 아무리 커도, 거센 바람에 밀려도, 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여,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5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숲을 태웁니다.

6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지체이지만,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에 타버립니다.

7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 놓았습니다.

8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겉잡을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있습니다.

9우리는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11샘이 구멍에서 물과 물을 있겠습니까?

12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샘은 물을 없습니다.

 

야고보는 말로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른 책임과 심판이 따르기 때문에, 많이 선생 되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1-2). 야고보는 또한 말하는 혀가 비록 작아 보이지만 강력한 영향력이 있음을 3가지 (말을 길들이기 위해 물리는 제갈, 배의 방향을 정하는 , 산도 불태우는 불씨) 들어 설명합니다(3-6).

 

야고보는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이 길들일 있지만, 가장 길들이기 어려운 것이 혀라고 말합니다(7-8). 사람들은 한입으로 축복과 저주를 내뱉고, 하나님을 찬양하던 입으로 원망을 쏟아놓기도 합니다(9-10). 요즘 나는 어떤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까? 언어의 나무에 좋은 열매들이 맺혀지길 소망하며 말에 지혜를 주시길 기도합시다.

 

——

오늘 야고보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정치에 사용되는 말은 누군가에겐 생명줄이고 누군가에겐 살생부다. 

언론도 주로 말을 통해 영향을 발휘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결국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말이 지옥을 만든다. 말이 생사람을 걸어다니는 시체로 만든다. 

말의 폭력이 사람을 시름시름 앓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야고보가 공동체적 실천 중에 말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그래서 적절하다. 

 

그렇긴 한데,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갑자기 든다.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란다. 

작은 불이 숲을 태우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듯이, 혀가 그렇단다. 

야고보는 쉽게 마무리할 생각이 없다. 

물고늘어진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느낌이다. 

얼핏보면 깊은 상처를 입은 같다. 

말로 인한 내상. 

공동체적 고통. 

말이 가져다온 차별과 공동체적 분열. 

 

야고보가 혀를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았음도 있다. 

혀로 찬양을 한다. 혀로 말씀을 전한다. 혀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들의 혀가 자신과 이웃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음도 깨달았다. 

 

야고보를 비롯한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 사도들, 성경교사들, 순회 설교자들

이들은 무엇이든 가르치려고 한다. 

자신들이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던 그들 입에서 때로 차별의 언어가 튀어나온다. 

빈자를 홀대하고 부자를 선대하는 말을 한다. 

그러니 누군가가 보기에는 지극히 위선적이다. 

과거에 바리새인들의 모습에 예수님이 대노하셨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야고보는 가르치는 이들이 그들의 혀로 짓는 죄를 보았다. 

그것을 이상 참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이고 무거운 단어들로 질책한다. 

 

그런데, 가르치는 자의 딜레마를 안고 살고 있는 사람은 사실 다름 아닌 야고보였다. 

그도 그렇게 다르지 않음을 본다.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오늘 본문은 자전적이며, 자기반성적이다. 

야고보 자신과 주변 사람들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가르치려고 하면서 혀를 제어하지 못하면, 결국 심판을 받게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는 자들이 어떻게 심판을 받는가?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배웠고, 믿었고, 심지어 가르치고 있다. 그들이 심판을 받는가? 상을 주는 것이 옳다. 하지만, 가르침과 , 말과 삶이 일치되지 않을 ,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의심의 골짜기로 몰아 넣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엄격하게 심판을 받게 것이다. 심판이란, 혹독하고 엄격한 잣대의 심판을 의미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사람의 혀에서 차별의 언어가 튀어 나오면 안된다. 형제 자매를 실족케 하는 일이다. 그러니 더욱 겸손하게 자신의 말을 돌아봐야 한다. 

아마 야고보가 교회의 지도자로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결국 깨달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혀가 화근이다. 

놈의 말이 공동체를 아프게 한다. 

조심하고 조심해야 일이다. 

 

그러나 사역자는 말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말과 글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영향을 준다. 

제자를 키운다. 말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역자들은 어렵다. 

자신이 가르친 말과 실제 삶과 일치되거나, 달라졌다면 일일이 알려야 한다. 

모종의 자발적 공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계속 점검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과 가르침이 일관성이 있는지 살핀다. 

 

야고보가 환생하여 다시 지금 땅에서 살아간다면, 분명 같은 사역자들에게 호되게 경고했으리라. 

실천 보다 말이 앞서며, 보다 혀가 앞선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말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조심에 힘썼다. 

말은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을 어떻게 것인지 보다 차리리 줄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순히 말을 안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되, 차별의 언어, 남과 나를 죽이는 말을 자제해야 한다. 

성령님께서 혀를 통제하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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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셨던 주님, 

당신의 언어로 새로운 생명을 공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언어,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 

나와 남을 회복시키는 언어... 

이런 언어들이 더 많아지도록 성령님께 제 혀를 내어 맡깁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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