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3. 김혁수 

[개요]

1. 들어가며 

 

2. 포스트모던 시대 특징

1) 핵개인 (Atomic Individual)

2) 진리 상대주의 (Truth Relativism)

3) 선호(기호) 중심주의 (Preference-Centrism)

 

3.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29-30_29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요한복음 8:31-33_31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1) 진리

2) 자유 

3) 자유를 주는 주되심의 진리!!

 

4.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

딤후 3:14-17_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5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영감

2) 교훈과 책망 => 권위의 발견

3) 바르게 살기 위한 주되심

 

5. 예수님의 주되심 

1) 핵개인을 넘어 예수님과의 초연결

2) 진리 상대주의를 넘어 인격적 진리 수용

3) 선호 중심주의를 넘어 예수님의 뜻 선택 

 

6. 나가며

 

1. 들어가며 

그동안 달리기 실력이 늘었나요? 

저는 올해 부상때문에 바닥을 찍었다가 부활했습니다. 

3월 풀코스에서는 4시간 29분, 4월 풀코스는 중도 포기, 5월 하프 2시간 15분 작년과 비교할 때, 기록이 저조했습니다. 

그러나 10월 하프 1시간 56분, 11월 하프 1시간 46분으로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부상에서 회복되어 PB를 달성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달리기 실력도 나날이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달리기는 회복과 부활이 있었지만, 저의 첫째 딸, 중학교 2학년의 신앙은 아직 무덤에 있는 듯 합니다. 

그야말로 잘파세대 사춘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는 싶지는 믿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9월부터는 한 달에 한 번은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합의를 한 바 있습니다. 

목사의 딸이 교회에 가기 싫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단순히 교회에 가기 싫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거의 대부분 겪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 포스트모더니즘 공감도 체크리스트 (서울 2-30대)

 

1 획일적인 성공 기준 (ex: 대기업 입사, 고소득) 보다는 나만의 행복과 가치를 실현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 삶의 진리나 사회적 정의와 같은 하나의 거대한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으며, 모든 것은 상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특정 분야의 전문가나 권위자의 의견이라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스스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는 편이다.

4 K-POP, 웹툰, 유튜브 같은 대중문화가 순수 미술, 고전 음악 같은 고급 예술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5 나의 성별, 직업, 정체성을 하나로 정의 내리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페르소나를 유연하게 표출하는 것을 즐긴다.

6 특정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잘 드러나는 제품보다는, 개성적인 디자인이나 나만의 취향을 반영한 아이템을 소비한다.

7 여러 문화권의 요소나 장르(음악, 패션, 인테리어 등)를 뒤섞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혼성 모방/패스티시)

8 주류 미디어의 보도나 분석보다는, 개인의 경험, 브이로그, 짧은 숏폼 콘텐츠 등 주변의 작은 이야기들을 더 신뢰한다.

9 주변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직장, 관계, 라이프스타일을 자유롭게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10 완벽하게 끝맺음 짓거나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여운을 남기거나 해석의 여지를 두는 콘텐츠(영화, 드라마, 예술)에 매력을 느낀다.

 

2. 포스트모던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합니다. 

후기근대사회라는 말이죠. 

근대는 하나님이라는 신적 권위 대신 인간의 이성을 앞에 둔 시대였습니다. 

인간의 이성, 즉 생각하는 능력을 앞세워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사회, 경제, 정치, 문화를 합리화시켰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인간의 거만한 믿음은 세계 1차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산산히 조각났습니다. 

 

근대의 절대적 이성과 획일화를 극복하고 각 개인의 고유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거대서사 대신 작은 일상의 이야기, 미세사, 개인사가 주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포착하기 어려운 일부 문화현상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전체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런 세상의 큰 흐름에 대한 이야기는 한 두 시간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제가 다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던적인 한국 사회와 그 속의 청년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를 세 가지 개념어로 담아 보려고 합니다. 

 

1) 핵개인 (Atomic Individual)

첫째, 핵개인입니다. 그냥 개인이 아닙니다. 원자단위로 쪼개진 핵개인입니다. 예전에 핵가정이라는 말도 있었는데요, 그것을 차용한 개념입니다. 개인의 단독성이 극대화되어, 공동체나 전통이 부여하는 의미보다 '나의 해석'이 중요해집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십니까? 전체보다는 내가 우선합니다. 1인가구의 숫자가 급등했습니다. 개개인의 개성이 전체의 공통성보다 더 부각됩니다. 

 

2) 진리 상대주의 (Truth Relativism)

둘째, 진리 상대주의입니다. 진리는 너의 것이고 나의 것입니다. 절대적인 선악이나 옳고 그름은 없으며, 모든 것은 관점의 문제입니다. 과거로부터 앞으로 미래까지 영원 불변한 거대한 서사에서 도출된 사실이나 진리에 큰 관심이 없으며, 심지어 그런게 있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내가 지금 경험하고 그 경험이 내게 효과적이고 유익이 되면 그것이 나에게 사실이고 진리가 됩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빅뱅이론 같은 우주탄생이론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순환 우주론, 다중세계 우주론, 시뮬레이션 우주론 등 점점 다양한 우주론에 대해서 도리어 관심이 갑니다. 

신학도 인문학도 과학도 절대 진리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나에게 의미있는 사실이 진리가 되는 것이죠. 

 

3) 선호(기호) 중심주의 (Preference-Centrism)

셋째, 선호 중심주의 (Preference-Centrism)입니다. 

모던 사회에서는 대중이 함께 좋아하는 대상을 나도 좋아하기 마련이었습니다. 

트렌드 드라마의 시초격인 1992년작 “질투”의 시청률은 56.1%였습니다. 

그 때에는 TV채널이 몇개 없었습니다. 2-3개에 불과했으니, 전국민이 거의 모든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자신의 선호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 각광받습니다. 

TV채널은 수십개가 되었고, 유툽과 각종 개인 방송까지 합하면 수백수천이 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빨리 찾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모두가 자기 개성을 내세우는 것이 사회적 경졍력도 높이는 방법이라고 이 사회가 말하고 있습니다. 

예배, 교리, 교회도 자신의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옵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기에 아주 익숙합니다. 

 

4) 괴로운 그리스도인

핵개인의 시대, 진리상대주의의 시대, 선호중심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괴롭습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근대 사회의 첨병 역할을 해 왔거든요. 교회는 공동체를 강조했었습니다. 진리는 성경이라는 거대 서사 속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개인의 선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교회에서 오랜 신앙생활을 해 온 청년들은 심각한 자아분열을 겪게 됩니다. 학교와 교회가 너무 다릅니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너무 다릅니다. 여러분은 이 어려운 이중 생활을 어떻게 감당하고 계신가요?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여러분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확 느껴졌습니다.  

 

5) 제 3의 길? 

과연 제 3의 길이 있을까요?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수 있을까요?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저 모던한 신앙 생활을 고수하는 것으로 회귀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포스트모던의 가치관을 무비판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겐 제 3의 길이 필요합니다. 

 

참 미안하게도 저는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철학을 전공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목사입니다. 

저는 성경을 통해 그 길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3.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_요8:31-33

1) 진리? 

오늘 요한이 쓴 예수님의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은 주저없이 “진리”라는 말을 꺼냅니다. 본문을 한번 읽어 볼까요! 

 

상황을 조금 설명해드릴게요. 요한복음 8장은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아주 중요한 본문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판결하라고 요청합니다(4-6절).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고(7절) 외치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세상의 빛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슨 개소리입니까? 자신이 스스로 말한다고 그게 증명되지는 않습니다.”(13절)라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증언하신다”(18절)고 받아치셨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겠죠. 유대인들이 단체로 물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누구십니까?”(25절) 이때 예수님이 단호히 대답하십니다. 29-30절을 읽어볼까요? 

 

29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 그 아버지가 기뻐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성전의 그 신앙심 깊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은 나의 말에 머무르면 나의 제자가 되는데, 그럴 때 비로서 진리를 알게 된다.’ 다시 풀어볼까요.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들을 믿었던 유대인들이 그 말씀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그 때서야 제자가 되고, 제자가 되어야 진리를 알게 된다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 진리를 인격적 진리라고 부르겠습니다. 한 인격을 통한 진리, 인격이 던지는 말에 머물 때 깨닫게 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모던 시대의 거대 서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도리어 포스트모던 시대의 아이돌 팬덤 현상과 유사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믿고 거기에 거하게 되면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라는 한 인격과 그 말을 믿고 그 인격과 말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게 제 3의 길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2) 자유

그런데 이 진리가 놀라운 선물을 우리에게 줍니다. 바로 자유입니다. 아이돌의 팬이 되면 아이돌에게 묶이게 됩니다. 자칫 돈과 시간과 에너지와 젊음을 다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격을 통한 진리는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오늘 본문 후문맥에서는 죄에서의 자유를 언급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상의 자유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죄에서의 자유 뿐 아니라 우리를 얽어매는 숱한 모던적 획일화의 감옥에서 탈출시켜주십니다. 모던적 획일화에서만 구출시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모던적 자기 중심주의의 감옥에서도 탈출시켜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포스트모던 사회에는 개인을 자아의 감옥에 가두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자아를 극대화 거대화시키고 있지만 결국 자아의 감옥일 뿐입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히스테리와 신경과민으로 가득한 자아의 감옥 말입니다. 거기에는 참자유가 없습니디. 자유는 오직 예수님 인격을 통한 진리로부터 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과 포스트모던의 제 3의 길입니다. 

 

3) 자유를 주는 주되심의 진리!! 

우리는 지난 여름부터 주되심에 대해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맞죠? 제가 그렇게 들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예수님이 주님이 되실 수 있을까요?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거대서사의 모더니즘을 극복하십니다. 그분은 개인서사의 포스트모더니즘도 극복하십니다. 그분의 인격을 통해 우리는 인격적 진리에 도달하고 그 인격적 진리는 이 세상의 존재하는 아이돌과는 차원이 다른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입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거대서사에 함몰되지 않고, 내부에서 올라오는 자아의 감옥에 갇히지 않는 참 자유 말입니다. 이 자유를 주실 수 있는 분이 오직 예수님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주인되심, 주되심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_딤후 3:14-17

1) 하나님의 영감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주되심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데 있어 제 3의 길을 만들려면 예수님의 말을 믿고 머무는 것, 그래서 인격적 진리를 발견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필요함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말을 믿고 머물려면 무엇을 전제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말씀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지금 시대에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저 인간이 만든 책 중에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맘대로 적고 편집한 책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철학자가 아니라 목사로서 다시 한번 성경을 통해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14-17절입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5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을 날이 얼만 남지 않았습니다. 지중해 전역을 여행하면서 오랫동안 선교 사역을 마무리하고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자신이 아들처럼 사랑했던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남깁니다. 지중해는 그리스 로마 신들의 세상이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 혹은 감동으로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맞습니다. 이게 우리의 시작입니다. 성경의 원문은 하나님의 영적인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의 저자를 타자기로 사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저자들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영적인 감동을 주셨고, 그 감동을 받은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글을 쓴 것입니다.  

 

모던적 기독교는 성경을 문자주의로 읽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포스트모던적 기독교는 성경을 해체주의적으로 읽는 것으로 선호하고 있습니다. 저는 둘다 극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3의 길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사람들의 책입니다. 특히 성경은 예수님의 말과 행적과 인격을 드러내고 그 말과 인격에 머물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분의 인격적 진리를 알게 되고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말씀과 이렇게 연결됩니다. 

 

2) 교훈과 책망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성경을 인간의 책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나님의 감동, 성령님의 감동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그리스도 예수를 드러내는 책으로 보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우리에게 인생의 교훈과 영성적 통찰을 제공하는 책으로만 남게 됩니다. 탈무드가 되는 거죠. 위인전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16절을 다시 읽어볼까요.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교훈도 주지만, 그 뒤에 나오는 것도 줍니다. 

무엇이죠?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기에도 아주 유익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포스트모던 시대 사람들은 책망듣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포스트모던인들은 바르게 살라는 훈화말씀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무엇이 의로움인지 선인지 규정하고 가르치려는 사람들을 꼰대라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어떡하죠. 성경은 포스트모던인들이 좋아하는 영적 교훈을 주는 것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은 예수님의 인격이 그러하듯, 우리에게 책망도 하고 바르게 살라고도 하고 정의를 선택하라고도 외칩니다. 이게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성경에 권위가 있다는 겁니다. 삼위 하나님이 지지하시는 권위가 있습니다. 인간의 책과는 다른 종류의 영적 권위가 성경에 있습니다. 이 권위는 자신이 권위가 있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권위를 전제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 권위를 발견할 뿐입니다. 포스트모던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실 건강한 권위의 발견입니다. 그걸 무시하면 자아의 감옥에 갇힙니다. 건강하지 못한 권위에 종속되면 모더니즘 때보다 빠져나오기가 더 어렵습니다. 왜죠? 핵개인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3) 바르게 살기 위한 주되심

포스트모던인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성경은 포스트모던인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살도록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시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유능하고 하고 여러 가지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와우!! 

 

여러분 바르게 살고 싶으세요? 그럼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세요. 

여러분 건강하게 살고 싶은세요? 그럼 예수님을 주님을 인정하세요. 

그분만이 모던인이건 포스트모던인이건 자유로운 삶과 건강한 삶을 줄 수 있습니다. 

 

5. 예수님의 주되심 

정리를 해 볼까요?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1) 핵개인을 넘어 예수님과의 초연결

첫째, 주되심은 핵개인을 넘어 예수님과의 초연결을 시도하는 첫걸음입니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핵개인을 낳았습니다. 다 떨어트려놓았습니다. 장담컨대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겁니다. 과학기술이 앞에서 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뒤에서 엄청난 속도로 밀고 있습니다. 핵개인이 주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부분을 극복하려면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분과의 초연결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초연결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를 누립니다. 건강하고 바른 삶을 살수 있습니다. 

 

2) 진리 상대주의를 넘어 인격적 진리 수용

둘째,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면 진리 상대주의를 넘어 인격적 진리를 수용하게 됩니다. 나만의 진리, 너만의 진리가 아니라 우리의 진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자기 경험에 갇혀 자기 이야기로만 주장하는 진리가 아닙니다. 모던 사회의 구조에 갇히거나 자아에 갇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적 진리를 수용하면 그 둘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렇게 자유를 누린 사람들은 자유를 주는 진리라는 공통분모를 갖게 됩니다. 진리 상대주의를 넘어 자유를 주는 진리에 공감하는 진리 공감주의로 나아가게 됩니다. 

 

3) 선호 중심주의를 넘어 예수님의 뜻 선택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면, 선호 중심주의를 넘어 예수님의 뜻을 선택하게 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선택하는 선호 중심주의는 자기 쾌락으로 이끌고 결국에는 자기의 건강을 잃게 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수용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을 점점 선호하게 됩니다. 그건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6. 나가며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포스트모던 시대에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포스트모던 시대에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을 모던시대로의 퇴행으로 여기지 마세요.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제 3의 길이 여전히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삶은 매우 힙한 문화입니다. 매우 건강한 문화입니다. 매우 선한 문화입니다. 충분히 내세울만한 세계관입니다. 심지어는 자랑스럽기까지 한 삶의 태도입니다.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약점을 피할 수 있는 길이입니다. 

 

첫째 딸은 아직 신앙이 확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노력할 계획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계속 알려주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부모를 통해 딸에게 흘러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희망은 보입니다. 여느 중학교 2학년과는 달리 아직은 아빠와의 대화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장난부터 진지한 철학적 대화까지 정직하게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진리가 그에게 자유가 되고 인생을 바르게 살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저는 믿고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도 그렇게 되길 믿고 기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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