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14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였으나 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3 우리의 권면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나님께 검정을 받아서, 맡은 그대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5 여러분이 아는 대로, 우리는 어느 때든지, 아첨하는 말을 한 일이 없고, 구실을 꾸며서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6 우리는 또한, 여러분에게서든 다른 사람에게서든,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한 일이 없습니다.

7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서, 마치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듯이 유순하게 처신하였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을 사모하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NIV

Instead, we were like young children among you. Just as a nursing mother cares for her children(7절),

 

주석

고난과 모욕(2절) 바울과 그의 동료들 데살로니가에 도착하기 직전에 빌립보에서 능욕을 당했다. 그들은 공판도 받지 못한 채 공개적으로 옷을 벗기우고 매를 맞았다(행 16:22-23)(IVP 성경배경주석).

 

바울은 핍박 중에도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2절).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불순한 마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맡은 그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3-4절). 바울은 사람의 환심이나 영광을 구하지 않았지만, 목숨을 내어줄 만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6-9절).

 

바울은 복음을 대하는 정직한 자세와 교인들을 향한 인격적이고 다정한 태도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증인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삶이란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고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한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1. 사람의 환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바울의 자기 고백이 눈에 들어온다. 

난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과 진심을 알아 주길 바랬다. 

그것이 진심이 통하는 사람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사이의 신뢰요 존경이요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완전한 착각이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마음을 알 수 없다. 

마음과 진심을 알 길이 없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음흉할 수도 있고, 간계를 꾸밀 수도 있고, 아예 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 불만이 가득할 수도 있다. 

자신의 진심을 자꾸 표현해야 한다. 

거짓으로 속이지 말고, 남의 눈치를 너무 살피지 말고, 자신의 정직한 마음을 말해야 한다. 

그게 나와 남을 위하는 길이다. 

옹색하고 유치해 보이지만, 사회 생활이라는 것, 소통이라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물론 영성적으로보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영성적으로는 많은 말은 자칫 자신과 남을 속이는 행위다.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고, 무엇보다 침묵 속에서 인간의 말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임재와 이미지와 말씀을 들어야 한다. 

침묵기도가 중요한 이유다. 

자기 표현이 자칫 생각의 표피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글도 그럴 수 있다. 

싸질러 놓다는다는 표현이 있다. 

자신의 본능적 감정과 피상적 생각이 막 던져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 이면의 생각과 본질을 찾으신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4절)은 사람이 던지는 말과 글로만 판단하시지 않으신다. 

그 마음의 열정과 진심을 보신다. 

 

그렇지만, 문제는 사람들과 같이 사역을 해야 하는 사역자들은 어쩔 수 없이, 영성적으로만 지낼 수 없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나눠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여기까지 좋다. 

 

그 이상이 있다. 

이런 정직함이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함인가? 

아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인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회생활의 요소이겠으나, 인간은 미묘하고 복잡한지라, 표현이 결국 다른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끌고 주목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이용한다. 

그래서 말이 많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사람들 중에, 그 표현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 이목에 중독되고 그 인기에 함몰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시작한 일도 어느새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른다.

끝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초심을 지키는 사역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바울도 많은 편지를 썼다. 

그 편지가 성도들로 하여금 바울파들을 만드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니 바울은 항상 조심해야 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기쁘시게 해야 했다. 

인기가 많아질 수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정직한 자기 고백과 인기 상승에 대한 경계… 이 둘 사이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2. 권위가 아니라 유순함으로

바울은 충분히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지식, 그의 경험, 그의 헌신, 그의 개척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바울은 위대한 사도의 반열에 올랐다. 

교회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었고, 그 권위에 맞게 대우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대하듯, 유순한 사랑의 말로 성도들을 대했다. 

명령할 수 있었지만 부탁을 했고, 강권할 수 있었지만 설명과 설득을 했다. 

물론 그의 편지 곳곳을 살펴보면 때로 엄하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갈라디아서나 고린도전후서에도 그런 강경함이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지금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대할 때, 최선을 다해 유순하게 듣고 말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도들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생명조차 내 주겠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사랑이면 거의 예수님의 사랑이다.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으로 섬기고 있다. 

성도들이 매우 사랑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1장에서 드러난 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닮아가고 있었다. 

예수님을 당연히 주님으로 모시고 본받았지만, 그 구체적으로는 바울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바울 입장에서는 그 성도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고난 속에서도, 환란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그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이런 고백이 나온다. 

권위적으로 대할 필요가 없다. 

온순함으로 대해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권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권위를 뛰어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서로를 온유하게 대하도록 돕는다.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다면, 그는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다. 

성도들이 성장해서 어떤한 환란과 핍박에도 하나님 기쁘시게 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극복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사역자들의 소망이요 꿈이다. 

그 소망과 꿈이 현실에서 이뤄질 때, 사역자는 자신의 생명 만큼이나 그를 사랑하게 된다. 

 

이런 사랑이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가르치는 자는 꿈을 꾸고, 배우는 자는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면, 사랑은 더욱 커진다.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면, 이젠 가족만큼이나 사랑하게 된다. 

삼위 하나님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꿈을 꾸는 것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요, 특권이다. 

누가 뺏어 가겠는가!!

 

[오늘의 기도]

예수님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렸는지 생각합니다. 

 

작고 적은 존재지만, 저도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고 싶습니다. 

저의 인기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저의 제자가 아니라, 주님의 제자가 많아지게 하소서. 

그리고 저는 주님을 따라 그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죽기까지 사랑하겠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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