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26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2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과 같이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5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

7 잠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자들도 밤에 취합니다.

8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씁시다.

 

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하심에 이르도록 정하여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여 놓으셨습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주석

3-4절 이 위협적인 사건에 대한 경고는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주의 날은 심판과 관련될 뿐 아니라 동이 트면서 비취는 ‘빛’과 같다.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계시와 의를 상징한다. 신자들은 이미 이 빛을 받으며 살고 있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주님의 날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그날은 밤에 도둑처럼 올 것이며(2절), 해산의 진통처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3절). 한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이들은 낮에 속하여 있으므로 그 어둠이 덮치지 않을 것입니다(4-5, 9절).

 

낮에 속한 사람은 마땅히 그 정체성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무장하고(8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6절). 그리스도가 행하신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살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11절). 나는 지금 깨어 있습니까? 갑옷과 투구로 무장되어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

1. 때와 시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사람들은 항상 때와 장소를 떠올린다. 

시기를 잘 정하는 것, 장소를 잘 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된다. 

분위기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과 기여에 대해 재고한다.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약속 장소와 시간에 예민하다. 

장소와 시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믿기도 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도 때와 시기에 더욱 더 예민한 분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언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지 계속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원칙이 있다.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님조차도 이 내용을 모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24:36_”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니 자꾸 그 시간에 대해 묻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날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평안과 주의를 함께 준다.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 주의를 준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빛에 거하고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평안을 준다. 

이 두 가지 태도 모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야 한다.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정신을 놓아버림으로, 혹은 어떤 한 두 가지 일에 집중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실제 삶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와이파이를 계속 연결해 놔야 한다. 

그분이 언제 올지 모른다. 

덕후라는 시대풍조는 때로 정신없이 한 두 가지 일에 몰입하게 한다. 

그것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으나, 정기적으로 자신을 객관화하고,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튜닝할 필요가 있다. 

 

둘째, 평안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경계하는 마음은 때로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긴장감이 지속되면 때로 판단이 흐려지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산다면, 재림에 대해 너무 걱정하거나 그 때를 놓치는 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다. 

평안한 마음은 주님에 대한 신뢰에서 온다. 

신뢰하지 못하면 평안을 유지할 수 없다. 

믿지 못할 사람들과 대화하면 할수록 불안이 가중된다. 

 

때와 시기에 연연하지 말되, 깨어서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한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지금이나 앞으로나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다양한 기질의 사람들이 주님의 뜻에 동의한다. 

주님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위해 주님께서 죽으신 것이다. 

 

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서 주님과 함께 살든지, 앞으로 죽어서 주님과 함께 살든지, 핵심은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분의 숨을 받으며,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것을 가능케 하신다. 

사탄도 두려운 존재고, 귀신도 무서운 존재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한가! 

모든 신들의 신인 하나님,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무서운 존재다.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은 솔직히 인간으로서 불편하고 무섭고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부모처럼 깊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도록 결정적인 증거를 대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다. 

자기 자신과도 같은 아들을 사랑의 징표로 내놓으셨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확증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과 더불어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그분과 함께 지내고 있는가? 

그분의 숨을 느끼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동행하는가? 

오늘의 질문이다. 

 

[오늘의 기도]

당신과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예수님, 

저는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과 더욱 가까이 지내고 함께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당신의 정서에 공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이 머무는 곳에 함께 머물고, 당신이 손발이 향하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몸은 곤하고, 감기 기운도 있습니다. 

할 일은 많은데, 눈이 감깁니다. 

주님, 육체의 피로를 이기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누리게 하소서. 

 

감당해야 할 일 앞에서 주눅들지 않게 하시고, 용감하게 처리하도록 도와주세요.

담대함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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