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0. 김혁수 

[본문_야고보서 4:1-10] 

4:11형제자매 여러분서로 헐뜯지 마십시오자기 형제자매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그대가 율법을 심판하면그대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12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분이십니다그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13“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들으십시오.

14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15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우리가  것이고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것이다.”

16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그와 같은 자랑은  악한 것입니다.

17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5:1부자들은 들으십시오여러분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2여러분의 재물은 썩고여러분의 옷들은 좀먹었습니다.

3여러분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녹은 장차 여러분을 고발할 증거가  것이요불과 같이 여러분의 살을 먹을 것입니다여러분은 세상 마지막 에도 재물을 쌓았습니다.

4보십시오여러분의 밭에서 곡식을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그래서  일꾼들의 아우성소리가 전능하신 주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5여러분은   위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으며살육의  마음을 살찌게 하였습니다.

6여러분은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지만그는 여러분에게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설교]
0.
들어가며

지난 쿠팡 이천 물류센터의 화재 속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화마 속으로 들어가셨다가 다른 대원들은 내보고 자신은 탈출하지 못하셔서 끝내 돌아가신 김동식 구조대장님의 안따까운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유가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 얼간이

코미디 영화를 보다보면 명의 남자들이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웃음을 주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드라마적으로 봐도 명의 주인공으로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1시간 30분으로 이어나기가 쉽지 않죠.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명의 주인공들이 좌충우돌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내는 포맷이 그래도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죠. 인도 코디디 영화 중에 얼간이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4 1절에서 교회내에 있는 싸움과 분쟁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 마음의 열망이 어디로 항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세상을 친구삼아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세상을 섬기게 되고 결국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는 혼합주의로 흐른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롯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할 것을 말씀하셨죠. 이것이 바로 교회에 있는 싸움과 분쟁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가슴을 치며 울라고 했죠.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권면했습니다(4:9). 

 

그런데 야고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교회의 분열과 싸움을 일으키는 부류의 사람들을 지목했습니다. 얼간이라는 영화는 코미디이지만, 야고보가 보고 있는 교회내 얼간이는 코미디가 아니라 다큐요 범죄물이었습니다. 도대체 야고보는 어떤 사람들을 얼간이라고 지목하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번째 얼간이_남헌담(4:11-12)

먼저, 번째 얼간이는 남헌담입니다. 남을 헐뜯고 험담을 잘하는 사람들이죠. 11절입니다. 

 

4:11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자기 형제자매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율법을 심판하면, 그대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굳이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서로 비난하고 헐뜯는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건 예수님 공생애 기간 중에도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그의 어머니를 대동하여 예수님께 자리 청탁을 하는 장면에서 제자들이 격분하는 모습을 봅니다(마가복음 10:4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러가기 위해 예루살렘을 가는 도중에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사람인지 논쟁이 붙었습니다(마가복음 9:33-35). 베드로인지, 요한인지 아님 다른 제자들인지이게 예수님 제자들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초대교회 형제자매라고 서로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7, 제사장의 기도에서 그렇게 하나될 것을 기도하고 바랬지만, 여전히 초대교회에는 형제자매를 헐뜯고 험담하는 일들이 계속되었던 겁니다. 

 

- 대변동의 초대교회 

야고보는 그냥 넘어갈 없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서 죽이는 일을 하던 바울이 급격하게 개종하더니만 세계를 누비며 은혜의 복음을 설파하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처음부터 마음을 쉽게 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이방인의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죠. 예수님께서 환상 속에서 직접 알려주시기 전까지는 말이죠.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충돌은 한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기존 사회 계급의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노예 였던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주인이었던 사람을 가르치거나 돌보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신학적 대변혁이, 사회적 대변화가 교회내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신학적, 세계관적 대변혁과 함께 사회적 계층적 대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 한마디로 Chaos 혼란 자체가 것입니다. 속에서는 아주 당연히 비판, 비난, 험담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초대교회에는 남헌담 부류의 얼간이들이 많이 생길 있는 상황과 조건이었습니다. 

 

- 율법에 기대다

야고보는 남헌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자매를 헐뜯는 것은 율법을 헐뜯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일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꾸 이렇게 지적을 하시니 지금 시대에 이분이 설교를 하시면 분명 꼰대라는 소리를 들었을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꼰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은 지적하는 설교를 멈출 같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뭔가 깊은 확신에 있어요. 

 

무엇이냐면, 야고보는 율법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있고, 따라서 율법 자체를 공격해서는 안된다는 확신입니다. 보세요. 형제자매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지만, 야고보는 여전히 율법의 가치를 상당히 높이 두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을 헐뜯지 말아야 이유를 대자면, ‘ 형제자매도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고 사신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게 것입니다. 그게 자연스럽죠. 그런데 야고보는 자연스러운 논리를 쓰지 않고, 갑자기 험담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 덕목의 상위 가치로서 율법을 제시하고 있는 거죠. 

 

여기서 우리는 야고보가 생각하는 율법의 개념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율법 곧 자유를 주는 율법을 잘 살피고 끊임없이 그래도 사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행한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야고보서 1:25). 

 

야고보는 단순히 구약 모세오경에 등장하는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완전한 율법, 자유를 주는 율법을 살펴보라고 이미 언급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에 등장하는 율법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세율법+예수님해석입니다. 특히 산상수훈을 통해 새롭게 제시된 율법이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님의 강림으로 인해 새롭게 해석된 율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율법인 거죠. 자유를 주는 율법인거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율법이 예수님을 통해 정신이 더욱 밝히 드러나고 성령님을 통해 실천력까지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단순히 죄책감만 주는 율법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완전한 율법이 것이죠. 율법을 심판한다는 겁니다. 누가요? 바로 형제자매를 헐뜯고 비방하고 험담하고 뒷담화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 공적 치리 vs. 험담

공적으로 정당한 치리 과정이 불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필요합니다. 때로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야 합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의 범죄는 그냥 두어서는 안됩니다. 철저히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적인 대화의 자리에서 형제자매들을 증거없이 비방하거나 편을 갈라 헐뜯거나 저주하거나 심판하는 것은 자신이 신적 위치에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번째 얼간이_허망소(4:13-17)

교회 공동체를 망치는 번째 얼간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허망소입니다. 이들은 헛된 꿈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돈을 벌겠다는 일념이 강해 보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마치 계획이 드라마틱하게 실현될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사람들입니다. 

 

- 부유한 상인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부유한 상인그룹이 있었을 겁니다. 그들은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무역을 통해 돈을 벌어드린 사람들입니다. 현실감각도 뛰어나고 실천력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전하는 세계관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계획한대로 거다. 그동안도 그렇게 되어 왔다. 당장 여길 떠나 이곳저곳 돌아다녀도 충분히 돈을 있으며, 돈으로 최신의 노트북과 자동차와 집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살아야 하는 것처럼 자랑도 하고 떠벌리고 설득하려고 합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 여윳돈이 생겼습니다. 이제 나이들어 느지막이 경기도에 펜션을 지어 펜션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싱가폴의 사모펀드에 수익률이 좋다며 펜션업을 접고 자신의 돈과 자녀들의 , 친척들을 돈을 최대한 많이 모아 투자를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들어도 이상한 것이 한달이 지난면 매월 투자원금의 10%씩의 수익금을 통장으로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1억을 넣으면, 후부터는 매월 천만원씩 계속 수입을 얻을 있다는 겁니다. 봐도 사기성이 농후했습니다. 결국 사기를 당하게 됩니다. 가진 재산을 날리고, 자녀, 친척들의 돈도 날렸습니다. 

 

- 바람잡이

16절을 보세요. 

16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몇몇 부자 상인들이 형제자매들에게 바람을 넣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들의 계획대로 것처럼 자랑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세속주의의 약을 팔고 있는 겁니다. 그들의 혀로 공동체는 싸움이 일어나고 분란이 잦아들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에 넘어간 사람들의 피해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야고보는 더이상 사안을 묵과할 없었습니다. 세속주의에 물들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겸손히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야고보는 허망한 꿈을 좇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의 삶을 살라고 충고합니다. 

15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야고보는 일부 부자 상인들의 허풍과 자랑에 빠져 들어 지금 하나님께서 맡기신 나의 일들을 소홀히 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귀가 얇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좋은 정보에 쉽게 빠져듭니다. 여러분,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혹은 다른 어떤 종류의 투자이든 간에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범위 은행 대출을 받거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서 투자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세상의 성공을 너무 떠벌리며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각자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부르심에 따르도록 격려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이것이 야고보의 제안입니다. 

 

- 선한 ?

특히 17절은 우리에게 부담을 줍니다. 

17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사람이 해야 선한 일은 바로 15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주어지는 일들을 신실하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무리하게 세상의 가치를 따라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은 죄가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작은 일에 끝까지 충성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믿고 확신하는 일에 끝까지 헌신하길 바랍니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주변사람들과 대화해가면서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작은 섬김이 하나님 나라를 더욱 굳건하게 세워갈 것입니다. 

 

3. 번째 얼간이_강부자(5:1-6)

이제 교회에 싸움과 분란이 생기는 번째 부류가 등장합니다. 이름은 바로 강부자입니다. 이분들은 정말 교회에 있는 분들인지 아니면 교회 외부에서 교회를 시험들게 하는 사람들인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과연 성도라면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상습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헷갈립니다. 무슨 일들을 저지르는지 한번 보십시오. 

 

- 썩고 있는 귀금속

이들은 재물을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는 금과 은이 녹이 쓸고 있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실제 금과 은이 녹이 쓸겠습니까! 그만큼 강부자씨는 돈을 쓰거나 순환시키지 않고 쌓아놓기만 합니다. 썩어서 버리는 재물도 많습니다. 그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큽니다. 최근 강대국들이 백신의 유통기한이 되어가는데도 다른 나라들에게 공급하지 않고 상해서 버리려고 했던 현실과 너무나 유사합니다. 

 

- 부자들의 악행

게다가 돈을 모으는 방법을 보세요. 일꾼들의 일당을 가로챕니다. 조폭들이나 하는 짓거리입니다. 일꾼들의 아우성과 그들의 울분에 기도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의 히브리 노예들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강부자씨는 사치와 쾌락의 삶을 살아갑니다. 게다가 아무 잘못이 없는 의인을 죽였습니다. 

 

- 교회 부자 vs. 교회 부자

처음에 야고보는 당시 교회에 있는 부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처럼 썼지만, 이렇게 살펴보니까 교회 밖에 있는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인, 제사장, 사두개인들에게 하는 같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부를 축적하여 종교 시스템을 유지하였던 종교 권력자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특히 6절을 보면 그들은 의인, 예수님을 죽였고, 예수님은 대항하지 않으셨거든요. 

 

- 심판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야고보는 교회내 부자들의 행태에 대해 비판하고 바로잡길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의 감동을 받아 교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압제하고 임금을 착취하고 사치과 쾌락에 빠져 결국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그냥 두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울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고 진심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로 판명될 것입니다. 예수님 말마따나 쫓겨나서 슬피 이를 갈며 후회하는 순간이 것입니다. 

 

 

4. 하나됨을 향하여

- 우리 안에 얼간이 깨기 

남헌담, 허망소, 강부자 얼간이를 멀리해야 합니다. 이들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싸움과 갈등의 현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됨을 위해 사람은 진심의 회개가 필요합니다.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울면서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애통해하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혹여라도 우리 마음 속에 남헌담, 허망소, 강부자의 영향이 있다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것입니다. 

 

아마도 강부자의 행습을 따라하는 청년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헌담, 허망소는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혹시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는 남헌담과 허망소는 없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지 적용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근거없는 비방과 험담을 멈추자.

문제제기와 근거없는 비방은 다른 것입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적절한 통로를 통해 전달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아름다운 덕입니다. 교회 공동체도 적절한 문제제기가 필요합니다. 문제가 있고 불편한 것이 있는데 무조건 몇몇 개인이 참는 것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운영위원들에게 정중하게 말하십시오. 목사인 제게도 말하십시오. 그러나 이런 적절한 절차가 있는데, 그걸 이용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비난조로 험담하는 것은 삼가십시오. 

 

2) 교회 네트워크를 이용한 피라미드(다단계) 사기에 주의합시다. 

우리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교회들에서는 잊을만하면 번씩 일어나는 일입니다. 회원을 모집하고 등록비를 모아 수입을 만듭니다. 회원을 많이 모집하면 그만큼 높은 위치에 올라가서 돈을 많이 받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사기고 어디까지가 참신한 사업 아이템인지 헷갈리는 지점이 있습니다만 일단 피해사례가 생기고 피해자가 다수 발생했다면 조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특히 최근 암호화폐가 인기가 많아지니까 그곳에서도 이런식의 다단계 사기가 횡행합니다. 사기성이 놓후한 것을 교회에 들여와서는 안됩니다. 

 

청년들끼리 서로 의기투합해서 멋진 사업 아이템으로 사업을 펼쳐나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동업에 있어서도 조심할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서로 간의 공정한 계약서를 미리 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분란이 있는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철저하게 점검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이익 배분이나 근무 시간 같은 부분에서 서로 명확하게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5. 나가며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교회를 병들게 하는 얼간이를 주의합시다. 무엇보다 야고보는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무진장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싸움과 분열은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감춰버립니다. 불의와 부당함 만큼이나 싸움과 분열이 미치는 폐해가 큽니다. 험담과 뒷담화 대신 서로를 존중하고 축복하는 말들이 많아져야 것입니다. 세상에서 돈버는 방법이 많다며 사기성이 농후한 말들로 현혹하는 일들은 교회에서 사라져야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는 경영자, 자산가들은 직원들의 삶의 복지를 위해 애를 써야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부는 자기 자신과 가족들에게만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주변의 이웃을 섬기는 일에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투자가 있어야 것입니다. 이렇게 남헌담, 허망소, 강부자를 멀리하고 공동체를 더욱 하나되게 하는 일에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우리 자신 안에 남헌담, 허망소, 강부자의 영향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형제자매를 험담하고, 허망한 소망에 마음을 빼앗기고, 부자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마음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겸손하게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2. 우리의 예배를 통해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드려지길 위해 기도합시다. 찬양, 기도, 말씀 속에서 더욱 우리의 정서와 마음이 표현되고 그분을 향한 사랑이 드러나길 위해 기도합시다. 또한 예배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서로 모이고 하나의 공동체가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 기도] 

1. 남헌담, 허망소, 강부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야고보는 그들을 지목하고 주의를 주었을까요?    

 

2. 남헌담, 허망소, 강부자가 나와 공동체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우리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 무엇을 조심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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