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07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1 세월이 지나, 모세가 어른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왕궁 바깥으로 나가 동족에게로 갔다가,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 때에 그는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12 좌우를 살펴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집트 사람을 쳐죽여서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13 이튿날 그가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오?"

14 그러자 그 사람은 대들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 당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이제는 나도 죽일 작정이오?" 모세는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 두려워하였다.

15 바로가 이 일을 전하여 듣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다. 

 

주석

모세의 범죄(12-15절). 이집트인은 상당한 인종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열등하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무시했다. 따라서 외국인이 이집트인을 죽이는 것은 커다란 범죄에 해당되었다(IVP 배경주석). 

 

생명을 건짐 받았던 모세가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모세는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이집트 사람을 쳐 죽입니다(11-12절). 다음 날 모세는 히브리 사람 둘이 서로 싸우는 것을 중재하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살인죄가 탄로난 것을 알고 도망칩니다(13-14절). 이 일을 들은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찾습니다(15절). 

 

나일강에서 생명을 건짐 받은 모세는 동족들이 학대와 고통을 받는 또 다른 죽음의 현장을 봅니다(11절). 이때 모세는 살리는 선택이 아니라, 죽이는 선택을 합니다(12절). 이 방식은 동족들을 돕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의도는 오해를 낳았고, 또 다른 죽임의 방식을 형성합니다(14-15절). 나는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돌아봅시다.

 

[오늘의 묵상]

모세는 민족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친모로부터의 영향일 것이다. 

바로의 딸의 양자로 입양은 되었으나 양육은 친모에 의해 받았다. 

자신의 외모와 일반 이집트 사람의 외모가 다르다는 것도 인지했을 것. 

 

자신의 동족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던 차에, 왕궁 밖으로 나갈 일이 생겼고, 히브리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그는 친모로부터 히브리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들었을 것. 

오랫동안 상상 속이지만, 불합리한 정책과 고통받는 동족에 대한 연민으로 분노가 쌓였을 것. 

이집트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자 그 분노가 폭발했다. 

그리고 아마도 이집트 관리인을 죽였을 것. 

추측컨대, 노동현장에서 히브리인을 때리고 있는 사람은 이집트 관리인 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모세가 아무리 분노가 쌓였기로 한 두대 때리는 이집트 사람을 죽였을 것 같지 않다.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있었던 것 같고, 계속되는 폭행에 모세의 분노가 폭발했을 것이다. 

모세는 그 순간 자신이 정의롭다고 여겼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폭력과 폭행으로부터 구해준 그 히브리 사람이 이 사건을 소문을 냈다. 

온 히브리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바로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의아한 것은 바로의 반응이다. 바로의 딸의 양자이면, 자신의 손자가 된다. 비록 양자지만 왕궁 사람이다. 

그런데 노동 현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오히려 히브리 사람들의 반응은 이해가 된다. 

모세를 동족으로 여기기보다 왕궁 사람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히브리 사람들끼리 싸울 때 모세가 싸움의 이유를 묻자,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동족 사람들을 돕는 사람으로 모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세는 사실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다. 

경계인. 

히브리 사람도 아니고 이집트 왕궁 사람도 아니다.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섣부른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청년이었던 것이다. 

그 물불 안 가리는 성격과 판단 탓에 히브리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가족 같았던 왕궁으로부터도 버림받게 될 지경이었다. 

자신의 위치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혜롭지 못한 살인 때문에 그는 홀로 외로이 광야로 가야만했다. 

40년의 인생이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나,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잘 파악하지 않은 채, 과도하고 섣부르고 충동적인 행동은 자칫 문제를 악화시킨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십브라와 브아처럼 좀더 지헤롭게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먼저다. 

충동적이기보다 면밀히 검토하고 사람과 돈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고…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일상을 잘 지켜내되,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 과감하게 결단한다. 

차근차근 성실하게 준비하되,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용기 있는 헌신이 필요하다. 

지혜롭게, 성실하게, 과감히게… 

 

오늘 하루 더욱 지혜롭게,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분의 때에 과감하게 뛰어들고 싶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토요일은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풀어집니다. 

그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나름의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토요일이라고 해서 한 없이 풀어져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각, 당신의 시야와 생각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게 하소서. 

가족을 더 사랑하고, 교회를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기 위한 마음과 몸의 준비를 하게 하소서. 

 

고통 속에 있는 약자들을 품으시는 하나님, 

당신의 눈과 마음으로 그분들을 보게 하소서. 

호소할 곳이 없어서 고통 가운데 외치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10.29 참사의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을 돌보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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