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24 월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의 ]

 

1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복이 있다. 재난이 닥칠 때에 주님께서 그를 구해 주신다.

2 주님께서 그를 지키시며 살게 하신다. 그는 세상에서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주님께서 그를 원수의 뜻에 맡기지 않을 것이다.

3 주님께서는, 그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돌보시며 어떤 병이든 떨치고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4 내가 드릴 말씀은 이것입니다.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나를 고쳐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5 나의 원수들은 나쁜 말을 지어서 " 자가 언제 죽어서, 후손이 끊어질까?" 하고 나에게 말합니다.

6 나를 만나러 와서는 말이나 늘어놓고, 음해할 말을 모아 두었다가, 거리로 나가면 떠들어댑니다.

7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모두 나를 두고 험담을 꾸미고, 나를 해칠 궁리를 하면서

8 "몹쓸 병마가 그를 사로잡았구나. 그가 병들어 누웠으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하고 수군댑니다.

9 내가 믿는 나의 소꿉동무, 나와 상에서 밥을 먹던 친구조차도, 내게 발길질을 하려고 뒤꿈치를 들었습니다.

10 그러나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니,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도 그들에게 되갚을 있도록 나를 일으켜 세워 주십시오.

11 원수들이 앞에서 환호를 외치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로써,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나는 알게 것입니다.

12 주님께서 나를 온전하게 지켜주시고 나를 주님 앞에 길이 세워 주십시오.

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주님, 찬양을 받으십시오.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양을 받으십시오. 아멘, 아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가 재난을 당하면 주님이 구해 주시고, 아프면 주님이 낫게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시인의 신앙고백입니다(1-3). 그러나 믿음과 현실 사이는 괴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어도 돌아오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시인과 우리가 모두 겪는 현실입니다(4-9).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여전히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돌보며 것인가, 아무 소용없어 보이는 현실에 분노하며 나만을 위해 것인가의 기로에 섭니다. 시인은 그런 상황에서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10-13). 이웃을 돌보는 삶의 지속성은 사람이 아닌 주님을 바라볼 유지됩니다.

 

——

 

요즘 시편이 좋다. 

다른 성경을 읽으면 왠지 내가 무엇인가 고쳐야 같고, 새롭게 바꾸어야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데 시편을 읽으면그래도 주님은 내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든지 말을 있고, 언제든지 감정을 토로할 있는 분으로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마음 속에 그리게 된다. 그래서 힘이 되고 감사가 생긴다. 

 

1-3절은 일반적인 진술이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에게 복을 내려주신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며, 원수로부터 구출해 주신다. 

오랜 경험과 성경의 기록을 통해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지식이 여기에 묻어난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며, 약자들의 하나님이시다. 

약자를 돌보는 자를 지키시며, 그런 리더들을 세우신다. 

다윗은 이런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그동안 살아왔다.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는 이런 지식과 믿음의 실천이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다가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했다.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아둘람 굴 속으로 몸을 피하였다. 그러자 형들과 온 집안이 그 소식을 듣고, 그 곳으로 내려가, 그에게 이르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모두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삼상 22:1-2)

 

자신도 피해다니는 위치였지만, 고통받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다윗의 믿음이 드러난 실천이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일반적 진술이 있고 나자마자 다윗은 자신의 상황을 아뢰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호소였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는 자신 스스로가 죄인임을 밝혔다(4).

그런데 지점이 이해가 안된다. 

4 이후로는 자신을 음해하고 모함하는 원수들을 물리쳐달라는 간구의 기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에 대한 간단한 고백 이후에는 주로 자신의 원수들에 대한 기도가 이어진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죄의 리스트를 아뢰고, 충분히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뒤에,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상식일 같은데, 다윗은 상식적인 기도의 틀을 깨고 있다. 

자신의 잘못보다 원수들, 특히 자신과 아주 친한데, 뒤돌아서는 모함하고 해를 가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담겨 있다. 

 

6절과 9절을 보니 다윗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6 나를 만나러 와서는 빈 말이나 늘어놓고, 음해할 말을 모아 두었다가, 거리로 나가면 곧 떠들어댑니다.
9 내가 믿는 나의 소꿉동무, 나와 한 상에서 밥을 먹던 친구조차도, 내게 발길질을 하려고 뒤꿈치를 들었습니다.

 

다윗은 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져있다. 

그의 친구들이, 믿었던 어릴 친구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있다. 

겉으로는 알랑방구(?) 뀌지만, 뒤돌아서는 모반을 계획하고 있다. 

외롭고 괴롭다. 

의지할 곳이 없다. 

오직 하나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죄인이지만, 지금은 자신의 죄를 길게 읊을 자신이 없다. 

주님의 도움이 간절하다. 

그동안 자신이 왔던 의로운 행동,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일들을 기억하시고 자신에게 복을 내려주시길 간청하는 것이다. 

비록 죄인이긴 하나, 지금은 주님의 도움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편의 매력이다. 

형식보다는 시인의 감정에 충실하다. 

해야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공간이 시편이다. 

자신의 죄를 아뢰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언젠가는 해야 일이겠으나, 지금 시인은 숨이 막히고 목이 타고 가슴이 답답하다. 

자신을 둘러싼 원수, 배신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누가 자신을 보호할 있을까? 

배신을 당한 사람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의심스럽게 된다. 

믿을 수가 없다. 

다윗은 지금 공황장애의 고통을 겪고 있는 보인다. 

이대로라면 왕국을 통치할 없다. 

배신자들을 처리하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주변의 사람들을 유배보내거나 죽이거나 하면 왕국은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원수들이 다윗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지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호소한다. 

 

시편이 좋다. 

맘껏 그분께 나의 감정을 말해도 되니 그렇다. 

굳이 논리적으로 고백하지 않아도 되니 그렇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주세요. 

아벱, 교회, 가정 모든 것이 사역의 연속입니다. 

어디 편히 곳이 없습니다. 

사건의 연속이며, 신경쓸 것의 연속입니다. 

고민은 깊어가고, 실천은 늦장이니, 마음만 쪼그라듭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느라 항상 마음이 피곤합니다. 

욕들어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언제나 곤고합니다. 

주님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은혜를 더욱 많이 누리게 하옵소서. 

주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명확한 사실을 더욱더 깊이 깨달아 알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