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11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3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4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5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6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7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석

아우구스투스 황제(1절) 아우구스투스는 자기가 온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안겨주었다고 선포했고, 자신을 “신의 아들”로 칭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호적 등록(1절) 아우구스투스의 재위 기간 동안 로마인들은 과세를 목적으로 새로 인구 조사를 실시하였다(IVP 성경주석)

 

구유(7절) 예수님은 일반 관행대로 강보에 싸여서 “구유”, 아마 여물통에 뉘였을 것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세금을 걷을 목적으로 호적 등록을 명령합니다(1-3절). 이로 인해 다윗 가문의 요셉 역시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갑니다(4-5절). 임신 중이었던 마리아는 이 고된 여정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6-7절). 이 아이는 포대기에 싸여 여물통에 놓입니다(7절). 이것이 온 세상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왕위에 앉아 야곱의 집과 나라를 영원히 다스릴 왕이 나셨습니다(1:32-33). 왕이라면 크고 화려한 성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베들레헴의 한 작은 여물통에 누이십니다(7절). 예수님은 로마 황제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닌, 자신의 낮아짐으로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는 왕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극히 낮아지심이 내게 어떻게 다가옵니까?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을 닮아가는 하루를 보냅시다.

 

[오늘의 묵상]

요셉과 마리아는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야만 했다. 

그 상황을 생각하면 참 답답해진다.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함에도 어쩔 수 없이 긴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임신을 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몸과 마음이 크게 바뀐다. 

더 예민해지고, 입덧도 하게 되고, 더 많이 피곤하다. 

게다가 상황을 보아하니, 베들레헴으로 갔던 시기가 임신 말기다. 

베들레헴에서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가 나온 상황에서 여행을 시작했다는 말인데, 이것 참 답이 없다. 

장거리 여행을 배가 불쑥 튀어 나온 임산부가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요셉도 그렇고 마리아도 그렇고 참 대단해 보인다. 

아니, 그런 사람들 모두를 고향으로 보낸 아우구스투스 권력의 무서움인가. 

 

여행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온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제일 컸을 것이다. 

물론 남자와 성관계를 맺지 않았던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아기는 예사롭지 않다. 

사도신경으로 외우는 바, 성령님으로 잉태되었다. 

그러기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는 확신이다. 

하나님이 이 아기와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안정감이다. 

다른 하나는 부담이다. 

자기가 이 아이를 잘 지켜야 한다는 부담과 걱정이다. 

이 둘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하루 하루 여행을 했을 것이다. 

동물을 타고 여행하든지, 걸어서 여행을 하든지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다. 

 

최근에 열심히 걷고 있다. 

힘에 부치더라도 걷기를 통해 잘 안 쓰던 근육들을 다시 깨운다. 

걷는 중에 방송도 듣지만, 기도의 시간도 늘어난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기도. 

나를 위한 기도, 가족을 위한 기도. 

할 일이 많고, 그래서 내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 방법은 하나다. 

기도를 통해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 

걷기는 여행의 기본이다. 

빨리 걷는 것은 몸에 좋다. 

천천히 걷는 것은 몸과 영혼에 좋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나와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과 그리고 내 미래에 대해서… 

걱정이 왜 없겠는가! 

마리아와 요셉도 여행하면서 걸으면서 그 수많은 생각들을 하나님께로 가져가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미래, 아이의 미래… 

 

뭔가 집중력있게 멋지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말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다. 

말도 어눌하고, 생각은 세련되지 못하다. 

부족한 것 투성이다. 

비교하지 않아야 하지만, 때로 비교되는 것이 사실이다. 

숨고 싶다. 

걷는 중에 이런 생각들이 올라온다. 

피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생각에 파묻히고 싶지도 않다. 

 

태아 예수를 품은 마리아처럼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듯, 예수님도 내 안에 거한다. 

내 육체와 마음에 예수님이 계신다. 

어디를 가든 확신과 부담이 공존한다. 

그분이 내 안에 있기에 드는 확신, 그분이 내 안에 있기에 품어야할 부담. 

이 둘 다 안고 오늘도 걷는다. 

나의 미래, 공동체의 미래를 내 안에 계신 그분께 건다. 

내 부족함도 한계도 그분께 맡긴다. 

 

[오늘의 기도]

제 안에 계신 예수님, 

주님의 임재를 더 깊이 인식하게 하소서. 

연약함과 부족함을 주님께 고백하고 맡겨드립니다. 

주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파르르 떨리는 풀잎 같은 연약한 성정임에도 주님 덕분에 감당합니다. 

비교 의식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몸이 아픈 사람들, 

마음이 아픈 사람들, 

이들을 돌보소서. 

험난한 여행길,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는 그 여정 속에 함께 해 주세요. 

멈춰 쉴 때 회복이 되게 하시고,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세요. 

 

세계 곳곳에 총성과 미사일 폭발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소서. 

그리고 어서 오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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