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21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말씀을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뒤에,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2 어떤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종이었다.

3 그 백부장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 사람들의 장로들을 예수께로 보내어 그에게 청하기를, 와서 자기 종을 낫게 해달라고 하였다.

4 그들이 예수께로 와서, 간곡히 탄원하기를 “그는 선생님에게서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우리에게 회당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였다.

6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예수께서 백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 백부장은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께 이렇게 아뢰게 하였다. “주님, 더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내 집에 모셔 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내가 주님께로 나아올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서, 내 종을 낫게 해주십시오.

8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9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기시어, 돌아서서, 자기를 따라오는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아직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 보니, 종은 나아 있었다.

 

주석

모셔 들일 만한 자격(6절) 백부장은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따라서 아직도 “이방인의 부정함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다.”(IVP 성경배경주석)

 

그저 말씀만 하셔서(7절) 부하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상관으로부터 받은 사람으로서, 그는 예수님이 질병을 물리치는 더 높은 하나님의 권위를 소유했음을 인식했고, 따라서 아주 간단한 명령만으로도 예수님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예수의 소문 

가버나움에는 예수님의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부르고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한 곳이 가버나움이었다. 

세리 레위의 회심은 그 지역 사회의 충격이었다. 

레위는 큰 잔치를 벌였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했다. 

사회의 각 계층마다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죄인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엘리트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심지어는 죽이고자 했다. 

병자들과 귀신들려 고통받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사회 동요가 두려웠던 지도자들은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예수님의 대한 소문이 가버나움에 가득했다. 

 

로마 제국의 백부장은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먼저는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로마 제국의 군인이자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던 사람이었다. 

해당 지역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시끌벅적한 것은 치안을 담당하던 사람으로서는 반길일이 아니다. 

특히나 자칭 메시아라는 사람들이 그동안 벌여 왔던 일들을 사례로 잘 알고 있었던 백부장으로서는 더욱 주의를 요했다. 

오랫동안 지역의 유지들과 친분을 맺었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버나움 지역에 회당을 지어주기까지 했다. 

유대의 장로들과도 친분이 있었고, 그외에도 친구들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의 생각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제국의 관리자로서도 탁월했지만, 유대인의 친구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그의 역할을 잘 감당하던 사람이었다. 

 

종이 심한 병에 걸렸다. 

여러 가지 쓸 수 있는 방법, 예를 들어, 의원을 부른다든가 약초를 구해 써본다든가 민간 요법을 사용해본다든가 등의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인 상황. 

사랑하는 종이었다. 

백명의 군인들을 통솔한다고 백부장이긴 하지만, 부하라기보다는 자기 집안 일을 봐주도 종으로 보는 게 낫겠다. 

그 종을 사랑하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방법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유대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듣는다. 

예수가 하는 수많은 이적들이 신비롭고 대단해 보인다. 

또한 동시에 유대 지도자들의 비평과 비난도 함께 듣는다. 

심지어는 예수를 죽이고자한다는 그들만의 비밀도 듣게 된다. 

죄인들, 이방인들과 어울린다는 이유로, 죄인들을 옹호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이유로 살해 모의를 하고 있는 유대인 지인들의 계획에 순간 움찔한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 이런 믿음 

제2의 고향 같은 가버나움 뿐 아니라, 오랫동안 살았던 고향인 나사렛에서도 예수님은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이 백부장같은 믿음을 본 적이 없으셨다. 

이유는 이렇다. 

일단 유대인 장로를 통해 백부장의 종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한다. 

그 때는 분명히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요청이었다. 

유대 장로들은 이 백부장이 유대인들에게 선한 사람이라고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그의 부탁을 꼭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은 그 권력자의 집에 가지 않는 것이 예수님의 몇몇 말씀과 일관성있는 행동이었다. 

예수님은 1차적 사역의 대상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분 스스로 말하길 유대인들을 회개시키는 것, 유대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1차적 목표였다. 

따라서 정중히 거절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직접 오지 않고 누군가를 대신해서 자기 집에 초대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아할 수 있었다. 

회당장 야이로도 직접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어 간구했었다.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막 5:22-23)

 

그런데 백부장은 유대인 장로들을 보낸 것이다. 

직접 찾아와서 부탁하는 것도 아닌데, 예수님은 장로들을 따라 나선다. 

그의 집으로 가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로마의 백부장의 집으로 말이다. 

이외의 결정이었다. 

제자들도 의아했다. 

비록 유대인들에게 선한 태도의 백부장이지만, 어쨌든 유대인들을 압제하는 로마 제국의 군인아닌가!

 

그의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쯤, 갑자기 일군의 무리들이 예수님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유대인과 로마인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놀라운 말을 전한다. 

바로 백부장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주님, 더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내 집에 모셔 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께로 나아올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서, 내 종을 낫게 해주십시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이건 무슨 말인가? 

기껏 오라고 하더니만 이제 와서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이유는 거창하지만, 꼬아서 들으면 얼마든지 열받을 말이다. 

직접 온것도 아니고, 거의 다 왔는데 집에 들어오지 말란다. 

손님을 초대하는 예가 이게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백부장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셨다. 

괜실히 자신의 집까지 들어오셔서 일부 극단적인 유대인들의 공적이 되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레위의 집에 들어가 잔치 벌였다고 유대 지도자들의 공적이 되었는데, 만약에 백부장의 집에 들어가서 그의 종의 병을 고쳤다는 소문이 돌면 그것도 반로마 무장단체의 공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백부장은 정말로 사려 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의 종을 고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나름의 타협안을 가지고 자신의 친구들을 통해 예수님께 말을 전한다. 

병을 낫게 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는 그분은 말 한마디로 세상을 바꾸시는 위대한 신이었다. 

굳이 직접 오시지 않아도 될만한 분이셨다. 

멀리서라도 말씀만으로라도 충분히 자신의 종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것은 자신의 권한과 영향력만 생각해도 넉넉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말씀만 하옵소서”라는 믿음의 고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야말로 깜짝 놀라셨으며, 이런 믿음의 고백이 유대인들의 입이 아니라, 로마 군대 장교 백부장의 입에서 나올 줄은 꿈에도 모르셨던 모양이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동향 선후배들이 자신을 믿지 않는 모습을 보시고 놀라신 적이 있다. 

이제는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놀라신다. 

 

내가 가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믿음의 고백이 요청된다. 

때로는 지붕을 뚫고 병자를 내려보내는 것이 최선의 믿음이 될 수 있다. 

때로는 예수님께 ‘다만 멀리서 말씀말 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이 최선의 믿음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최선의 믿음의 고백은 무엇인가? 

천 명이 모이는 전국수련회 디렉터로서 최선의 믿음의 고백은? 

청소년 캠프의 주강사로서 최선의 믿음의 고백은? 

청년부 담당 목사로서 최선의 믿음의 고백은? 

나는 주님께 무엇을 어떻게 요청할 것인가? 

오늘의 질문이다. 

 

[오늘의 기도]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 예수님, 

저도 칭찬듣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주님의 칭찬이면 어떤 면에서 여원(남은 소원)이 없습니다. 

주님이 칭찬하실 만한 믿음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의 의를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환히 비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분,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분, 인간의 생사와 영혼을 주관하시는 분.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 믿음에 합당한 기도, 요청, 간구를 드리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 주님에 대한 바른 믿음과 큰 믿음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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