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08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드로아에 갔을 때에, 주님께서 내게 거기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

셨습니다.

13 그러나 나는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들과 작별하고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14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5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16 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17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NASB

For we are a fragrance of Christ to God among those who are being saved and among those who are perishing: to the one an aroma from death to death, to the other an aroma from life to life. And who is adequate for these things?(15-16절) 

 

주석

14절 로마의 승리 행진에 비유한 표현. 구약에서나 고대 세계에서는 승리 행진에서 향을 피웠다(IVP 성경배경주석).

 

바울은 또 다른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4-15절). 바울의 고난이 누군가에겐 죽음의 냄새였고, 누군가에겐 구원을 얻는 생명의 향기였습니다(16절). 바울은 하나님이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했습니다(17절).

 

썩은 냄새에 뒷걸음치게 되고 감미로운 향기에 뒤돌아보게 되듯, 향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가집니다. 그리스도는 죽음과 고난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죽음과 고난에서 구원받는 이들에게도 드러납니다. 그들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납니다. 말씀에 비추어 나를 돌아봅시다.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됩시다.

 

[오늘의 묵상]

1.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14절)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고, 그 결과와 영향은 어떠한지를 잘 아는 지식, 그 지식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구약에 통달한 바울은 구약의 메시아 사상과 나사렛 예수를 연결시켜 그리스도가 정말 누구신지를 밝혔다. 

지중해 세계를 다닐 때마다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은 끊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가르친다.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말한다.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궁금해한다면 몇날 며칠이고 강론할 수 있다.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바울과 그의 선교단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라고 말할 수 있다. 

 

지식의 향기라는 시적 표현을 썼다는 것이 다시 한번 바울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딱딱한 신학자일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의외로 정서와 감정이 풍부한 시인이다. 

구약의 시편을 외우고 공부했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시인의 감성을 갖게 될 것이다. 

바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그는 탁월한 구약 지식과 시편적 감성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전하는 신학적 시인이었다. 

은유적 표현을 사용할 줄 알아야 각 지역에 맞는 설명 방식, 전도 방식을 개발할 수 있다. 

핵심 내용을 유지하면서 내용의 겉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가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라는 어구를 다시 쳐다본다. 

처음엔 책을 많이 읽는 대학 교수님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자꾸 쳐다보니, 지식으로만 무장하여 설득과 변증에 능통한 교수님만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지식의 향기는 말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외모부터 행동, 풍기는 첫인상, 말하는 방식, 관계맺는 방법 등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초대하는 것이 그 향기다. 

 

2. 그리스도의 향기(15절)

그러니 바울은 자신과 선교단과 고린도교회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15절에서의 그리스도의 향기는 단순히 지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는 지식을 넘어 존재의 변화에서 오는 향기다. 

정말 예수님을 닮은 사람만이 풍기는 향이다. 

믿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 향이 풍긴다.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그 향이 풍긴다. 

지식이 아니라 삶과 존재가 그리스도를 닮았다. 

하나님은 그 향을 기뻐하신다. 

어디에 있건 하나님은 작은 예수님을 발견한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성도는 사이에서도, 비신자들 사이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 향을 숨길 수가 없다. 

자연스레 풍기는 향은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사람들은 그 향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그 향의 출처를 묻는다. 

그렇게 존재로부터 그리스도의 향을 풍기는 사람들을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다. 

 

3. 생명의 향기(16절)

하나님께만 기쁨이 되는 향이 아니다. 

결국 그 향은 구원얻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생명의 향기다. 

삶의 지향점이 되는 향이다. 

삶과 존재의 모델로 삼을 만한 향이다. 

그 향을 따라 살면 어느덧 나도 그 향이 난다. 

향이 몸에 벤다. 

자신은 그 향을 못 느끼는 순간이 오지만, 다른 사람들은 느낀다. 

그 향이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다. 

한번 회심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계속 그 향이 나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명의 향 근처에 자주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자신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 생명의 향기가 되어간다. 

 

이런 삶을 추구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는 사람. 

완벽하지 않지만, 같이 있으면 좋은 향을 내고, 그 향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안내하는 사람. 

그런 사역자, 목사, 간사가 되고 싶었다. 

 

바울은 이런 향기의 삶을 다른 말로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장사꾼이 아니라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17절)

그렇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가르치는 장사꾼이 아니다. 

오직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진심을 다해 일한다. 

돈이 안되더라도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진심을 다한다. 

때로는 피곤하고,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특별한 이익이 없다고 해도, 진심을 다한다. 

진정성으로 승부를 건다. 

그런데 그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으니 바울이 그렇게 슬펐던 것이다. 

자신의 진정성을 믿어주길 바라면서 바울은 텐트메이킹을 했다. 

말씀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했던 것. 

아마 바울은 텐트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장사꾼의 습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재료를 아끼면서 최대한의 돈을 벌 수 있는지, 그 효율성과 거짓말의 경계선을 알았을 것이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은 장사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효율성을 이유로 적은 재료에 많은 이익을 남긴다면 그는 장사꾼이라 부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 진심을 버린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런 사람이 되지 않고자 결심했고, 최선을 다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대했다. 

아직도 바울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랬듯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사람들을 섬기려고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믿고 있다. 

예수님이 끝까지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바울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끝까지 사랑하려고 한다. 

 

이런 진정성은 말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삶이 받춰져야 한다. 

돈과 시간을 쓰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누구를 얼마나 만나는지를 통해 드러난다. 

 

오늘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가 되고 싶다. 

진심을 다한 사역이 되고 싶다.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오늘의 기도]

당신의 죽음으로 당신의 진심을 드러내신 예수님, 

당신의 진정성 확인 방식은 너무 극단적이십니다. 

저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제 마음을 잘 아신다고 믿습니다. 

제 마음의 동기와 열망을 잘 아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더욱 확장되기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특히 대학 신입생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더욱 알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진심을 잃지 않게 도와주세요. 

장사꾼이 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3월 06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23 내 목숨을 걸고서, 나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모시렵니다. 내가 아직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여러분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24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기쁨을 누리게 하려고 함께 일하는 일꾼일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믿음에 튼튼히 서 있습니다.

 

1 여러분에게 또 다시 아픔을 주지 않아야 하겠기에, 나는 여러분에게로 가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 내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하더라도,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은, 내가 마음 아프게 하는 그 사람 밖에 누가 있겠습니까?

3 내가 이런 편지를 쓴 것은, 내가 거기에 갔을 때에, 나를 기쁘게 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내가 마음 아픈 일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의 기쁨임을, 여러분 모두를 두고 나는 확신하였습니다.

4 나는 몹시 괴로워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내가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NASB

For if I cause you sorrow, who then will be the one making me glad but the one who is made sorrowful by me?(2절)

 

주석

1절 약속했던 두 번째 방문 대신, 편지를 쓴 것은 마음 아픈 일을 당할까 했기 때문이다. 그 편지는 바울이 몹시 괴로워하며 썼으며,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편지를 썼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고린도에 가지 않기로 결심합니다(1절). 교인들을 아끼기에(23절), 또다시 아픔을 주지 않으려고 내린 어려운 결정입니다(1절).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2-3절). 바울은 교인들의 믿음을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기쁨을 누리도록 돕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24절).

 

바울의 결심으로 인해 생기게 될 오해와 갈등은 자명했습니다. 자기변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진실한 고백입니다. 바울은 적당히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서로의 마음이 아프더라도 진실한 마음을 전합니다(4절). 나는 갈등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나요? 갈등을 회피하지 말고, 아프더라도 진실하게 마주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바울의 표현이 절절하다. 

심지어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해 보이기까지 하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속마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이해받으면 다행이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슬프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단순변심, 갈등회피, 더 나은 전략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성도들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 

바울의 진심과 동기는 하나님이 아신다.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에 잃어버린 두 번째 서신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총 3번의 편지를 썼는데, 그 중에 두 번째를 잃어버렸고, 그 두 번째 편지는 매우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 편지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회개했으나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바울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바울은 그 적대적인 사람들에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마음을 열고 바울의 진심을 받아들이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편지도 눈물로 기도하면서 편지를 썼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걱정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문제는 이것이다. 

아무리 진심을 표현한다고 해도, 한 번 마음이 틀어진 사람들은 그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보다야 글이 조금 더 신뢰감이 가는 표현방식이긴 하지만, 한 번 글로 표현되면 여러 사람들이 읽으면서 비판의 강도가 더 강해질 가능성도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판이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 매일 매일 보고 있다. 

어떤 글이든, 어떤 말이든,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표현은 없다. 

누군가는 그 글과 말로 마음 아파하고 비난한다. 

 

과연 바울의 이 편지는 그 목적하는 바를 성취했을까? 

자신의 뜻을 밝히고 자신의 진정성을 호소하지만, 실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바울의 개인적 감정의 호소는 뒤로 감춰지고, 이 편지에 등장하는 몇몇 교리적, 신학적 단편들만 후대에까지 회자된다. 

편지로 교류하던 옛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바울의 표현을 그대로 받자면, 바울은 정말 오랜시간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고 에너지를 들이고 감정을 쏟아냈던 것으로 보인다.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단 한 문단이 곤욕이다. 

어떤 내용을 넣을지 말지를 계속 고민했을 것이다. 

마음 속에서 수정, 삭제, 보완이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실제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여러번 고쳤을 가능성이 있다. 

글쓰는 사람들은 그 고통이 어떤지 안다. 

특히 감정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에는 더욱 조심스럽다. 

불신이 있는 사람들에게 쓰는 글은 지레 겁먹기 십상이다. 

 

바울은 원래부터도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로 나뉘었던 고린도교회의 상황에서 그 어떤 파도 없고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어야 함을 강변한 적이 있다. 

바울이라고 해서 무조건 편을 들어서는 안된다. 

바울이라고 해서 무조건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그도 인간이고 약점이 있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집중되는 것이었다. 

파벌로 인해 교회가 나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울은 원했다.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나의 지금 마음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때나 양심에 손을 얹고 발언해서는 안된다. 

정말 진심인지 깊이 고민하고 몇번이고 돌아보고 고백해야 한다. 

스스로 속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많은 가면을 쓰고 사는 다중인격같은 사람들도 있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심이 아닌데, 진심인 척 할 수 있다. 

거짓이 반복되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게 정말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언지 헷갈리게 된다. 

진심을 숨기는 게 익숙해진 사람들은 꽁꽁 숨겨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뒤늦게 자심의 속마음을 공개하여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다.

정치인들은 여러 가면 쓰기에 달인들이다. 

협상과 타협을 위해 그들은 스스로를 속인다. 

아… 진심을 표현하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지 누군가 진심을 다해 표현하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한다. 

악어의 눈물이라 비난하게 된다.

 

그저 하나님을 바라본다. 

나의 진심을 알고 계신 분은 오직 그분 뿐이다.  

 

바울이 느꼈을 절망감이 다가온다. 

세계 선교를 위한 그의 원대한 계획과 실천은 종종 진심을 표현해도 먹히지 않는 상황 때문에 더욱 힘들고 고되다. 

그게 사역자의 길인가? 

 

 

[오늘의 기도]

진심을 아시는 하나님,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헌신했던 지난 시간을 아시는 하나님, 

거짓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몸부림 쳤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 사실에 대해서 당신이 증인이십니다. 

진심을 다해 기도했고, 최선을 다해 만났습니다. 

나의 이익과 유익과 미래를 위해 전략적으로 만나기보다

한 사람의 유익을 위해,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 만났습니다. 

그렇게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모든 순간 다 그랬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의 순간도 많았음을 주님은 아십니다. 

그 시간에 대해서는 그 노력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인정해주시고, 칭찬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럼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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