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16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27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쪽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30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31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33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34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36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ESV

But love your enemies, and do good, and lend, expecting nothing in return, and your reward will be great, and you will be sons of the Most High, for he is kind to the ungrateful and the evil(35절).

 

주석

원수를 사랑하라(27절) 예수님의 명령은 그리스-로마의 상호주의와 자선의 윤리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반응이나 보답을 위한 정치적·경제적 거래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에 훨씬 가깝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1. 원수 사랑 

이 대목에 이를 줄 알았다. 

현대인들이 가장 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다.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 

예수님의 평지 설교가 ‘가난한 사람에게 축복이 있고, 부요한 사람에게 화가 있다’로 시작되었다. 

가난한 사람은 오직 의존한 것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에 복이다. 

부요한 사람은 하나님 외에 의존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화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난받을 것임을 알려주셨다. 

그것도 다른 이유가 아닌 바로 예수님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 다음에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신다. 

이 대목에 이르면, 예수님이 이길도 저길도 막아버리신 느낌이다. 

하나님만 의존하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면, 당연히 핍박이 찾아온다. 

그때, 자신을 핍박하는 그 원수를 저주하거나 미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도리어 그 원수를 사랑하라신다. 

막다른 골목이다. 

그 길 밖에 없어 보인다. 

차라리 시편은 저주시라도 있다. 

그러나 평지 설교는 축복의 말, 기도의 말 밖에 대안이 없다. 

 

원수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원수에 대한 축복과 기도이다. 

과연 처음부터 이것이 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을 죽이려 하고, 모함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을 향해 축복을 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신다. 

예수님은 어떠셨는지 생각해본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날까로운 비판과 함께 욕을 하시기도 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원수를 행해 축복도 안하고 기도도 안하셨다고 봐야 하는데, 이런 모순이 없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행동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은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위선자들을 향해서는 화를 내신다.(눅6:42) 

2)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로마 군인들, 유대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눅 23:33-35)

 

원수를 향해 복을 빌고,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기대하셨고, 그것이 가장 큰 복이다. 

원수도, 모욕하는 사람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있으며, 예수님은 그렇게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도하신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는 잘못이 아무것도 아니거나 무시할 만한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도리어 원수들의 잘못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야 할 사람들을 막는 것이며, 이는 저주 받아 마땅하다. 

때로는 그렇게 비판하고 저주하는 것이 그들에게 복이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원수를 향한 축복과 기도의 기본적인 태도가 있으나, 그것의 표현은 다양했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지도자들을 용서하기 어렵다. 

유대인 학살을 명령했던 히틀러, 캄보디아의 식자들을 학살했던 폴 포트… 이런 사람들을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죽은 사람들을 내가 용서하고 말고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지금도 전쟁을 일으키는 전세계 지도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지금까지의 생각의 끝엔, 결국 그들을 향한 축복과 기도가 자리잡고 있다. 

그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오면 참 좋을 한 명의 사람들이다. 

그런면에서 그들을 축복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동시에 그들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기에 비판도 하고 욕도 한다. 

이 둘이 동시에 일어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위선에 대해서는 “독사의 자식”이라며 비판하고 욕하셨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단순히 기계적인 순종의 문제로 단순화 할 수 없다. 

원수를 위해 축복과 기도를 멈추지 말라. 

그렇다고 그로 인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과감히 비판하라. 

비판이 축복이 되는 경우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마도 고통을 주는 가족이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고통을 안긴다. 

이런 원수가 따로 없다. 

이 경우에는 어떤가? 

과연 용서하고 축복하고 기도할 수 있는가? 

우리 영성의 시험대다. 

 

주님이 어려운 과제를 주셨다. 

 

 

2. 하나님의 인자

악인들에게도 인자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은 참으로 버겁다. 

그들에 대해 화를 내시고, 분노를 쏟아 내시고, 심판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크다. 

인자하신 하나님보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더 좋다. 

사적 복수, 심판의 콘텐츠가 뜨는 이유가 이런 인간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당한대로 갚아 주고 싶은 심리. 

고통당한 것 이상으로 복수하고 싶은 심리.

인간의 자연스런 마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단다. 

고구마처럼 답답해진다. 

사람들은 사이다 하나님을 기대한다. 

신이라면 사이다지…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참으시는 분이신 것은 확실하다. 

한 두 번 참으로시는 것이 아니다. 

한 달 두 달이 아니다. 

몇십년 몇백년을 참으시는 분이시다. 

즉결심판보다는 기본적으로 참고 인내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즉결심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웃사,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오래참으신다. 

 

구약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해왔다. 

예수님도 숱한 모욕과 고통을 오래 참으셨다. 

성령님도 지금 우리를 오랫동안 참고 계신다. 

 

조금 더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기제는 나의 성격과 경험에 따른다. 

내 기준의 가해자, 내 기준의 원수지, 완전 객관적인 가해자, 원수는 사실 드물다. 

내게 찾아오는 분노는 객관적 기준에 의한 분노가 아니다. 

심리적, 주관적, 감정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그러니 무턱대고 분노하는 것, 무턱대고 저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나도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실수 할 수도 있고, 잘못 판단하여 의도적인 죄를 지을 수도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나도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가 될 수 있다. 

나도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때,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자비다. 

그분의 인자다. 

 

그러니 바로 지금 하나님이 누군가에 대해 인자와 자비로 대하신다고 할 때, 너무 분노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인자와 자비의 기다림을 연습한다. 

심판의 때를 하나님께 맡긴다. 

잘못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준다. 

돈을 못갚고 있는 사람 혹은 안갚고 있는 사람에게도 인자와 자비를 보여주고, 기회를 준다. 

쉽지 않지만, 그분의 인자와 자비를 닮아가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이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경우에라도 그분은 오랫동안 기다리시고 인내하시며 참으시고 인자와 자비로 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신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시는 그분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자와 자비로 오래참으시는 그분을 찬양한다. 

 

[오늘의 기도]

어려운 요구를 하시는 예수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참으로 따르기 어려운 요청이십니다. 

그럼에도 그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원수를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의 회개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나와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산다면 박수칠 것입니다. 

주님,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살던 저를 자비의 마음으로 기다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변화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하고 간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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