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25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믹돌과 바다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쪽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고 하여라.

3 그러면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막막한 광야에 갇혀서 아직 이 땅을 헤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4 내가 바로의 고집을 꺾지 않고 그대로 둘 터이니, 그가 너희를 뒤쫓아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와 그 군대를 물리침으로써 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니, 이집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5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쳤다는 소식이 이집트의 왕의 귀에 들어갔다. 그러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이 백성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게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풀어 주어 놓아 보내다니, 어쩌자고 이렇게 하였는가?" 하고 후회하였다.

6 바로는 병거를 갖추고, 그의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

7 그는 특수병거 육백 대로 편성된 정예부대와 장교들이 지휘하는 이집트 병거부대를 모두 이끌고 나섰다.

8 주님께서 이집트의 왕 바로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하시니, 바로가, 주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나가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뒤쫓았다.

9 마침내 바로의 모든 병거와 기마와 그의 기병과 보병으로 구성된 이집트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여, 그들이 진을 치고 있는 비하히롯 근처 바알스본 맞은쪽 바닷가에 이르렀다.

 

10 바로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개를 들고 보니,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추격하여 오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크게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었다.

11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묘 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다 끌어내어 죽이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다니,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십니까?

12 이집트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13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4 주님께서 당신들을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당신들은 진정하십시오."

 

주석

이집트의 군대(5-9절) 이 시기 대부분의 병거 부대는 10-15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600대는 대규모의 부대다. 오직 바로의 부대만이 그 정도 규모였다(IVP 배경주석).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바다를 등진 채 진을 치게 하셔서, 바로의 군대를 유인하십니다. 이곳에서 바로의 군대는 무너질 것이며, 이로 인해 이집트 사람이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1-4절). 생각을 바꾼 바로는 특수병거 육백 대와 함께 이스라엘 자손을 추격해 왔습니다(5-9절). 바로의 병거부대를 본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하며 모세를 원망합니다(10-12절). 모세는 백성들을 진정시키며, 주님이 행하실 일을 지켜보라고 말합니다(13-14절).

 

이집트의 정치, 종교, 경제, 사회 체계를 붕괴시킨 하나님은, 이제 바로의 군사력마저 물리치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이집트의 주님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이 계획을 믿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병거부대를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심지어 다시 이집트의 노예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두려움에 반응하지 말고 잠시 가만히 멈추어 주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싸우실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핵미사일이 발사되었다. 

곧장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경보기가 울린다. 

어디 갈 데가 없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 

 

홍해 앞에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당대 최고의 군사력과 병기를 가지고 이스라엘에게로 다가온다. 

200만에 가까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앞뒤가 꽉 막혔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 

이제 죽음만이 그들을 기다린다. 

그것도 대량 학살이다. 

어디 피할데도 없다. 

이집트 정예군의 칼날에 도륙될 판이다. 

괜한 짓을 했다 생각한다. 

그저 이집트에서 일하다 죽는 게 낫다. 

어린 아이들과 늙으신 부모들과 함께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될 지경이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 

결국 하나님을 원망한다. 

 

핵미사일이 이제 곧 떨어진다. 

경보기의 싸이렌이 더 격하게 울린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두려워말라고 말한다. 진정하라고 말한다.

우리 민족의 영적 지도자, 모세와 아론! 

과연 그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겠는가? 

도대체 어떤 근거로 두려워말라고 하는가? 

어떤 근거로 진정하라고 하는가? 

물론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메세지를 들었단다. 

하나님이 핵미사일의 공격에서 보호해 주신다고 한다. 

이 공격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도대체 말인가 방군가!! 

이미 발사된 핵미사일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홍해 앞에 진을 쳤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셔서 그에 순종했다. 

그러나 그 순종의 결과가 집단 학살 내지는 집단 수장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백성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은 모세와 아론을 죽이고 다시 이집트 파라오에게 항복하는 것이다. 

원망과 반역의 기운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퍼진다. 

 

과연 나는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을까? 

10가지 재앙을 경험했지만, 

불기둥, 구름기둥을 경험했지만, 

미래의 이스라엘의 삶(유월절, 무교절 등)에 대해 하나님께 설명을 들었지만, 

다시 파라오가 이렇게 뒤쫓아 올지는 몰랐다. 

심장이 뛴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온 몸에 긴장의 땀이 흐른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 시대는 위기로 가득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회적, 자연적 위기로 가득합니다. 

위기 앞에서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주님의 인도를 구하게 하소서. 

원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동안 주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역사와 개입을 마음 속에 각인시켜 위기의 순간에도 강력한 방패가 되게 하소서. 

주님, 끝까지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순종의 삶으로 이끌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1월 24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10 이스라엘 백성을 부리는 강제노동 감독관들과 작업반장들이 나가서, 그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였다. "바로께서 명령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더 이상 짚을 주지 않겠다.

11 너희는 가서, 너희가 쓸 짚을 직접 구해 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희의 벽돌 생산량이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하셨다."

12 그래서 백성들은 온 이집트 땅에 흩어져서, 짚 대신으로 쓸 곡초 그루터기를 모아 들였다.

13 "너희는, 짚을 공급받을 때만큼 벽돌을 만들어 내야 한다." 감독관들은 이렇게 말하며 그들을 몰아쳤다.

14 바로의 강제노동 감독관들은 자기들이 뽑아서 세운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반장들을 때리면서 "너희는 어찌하여, 어제도 오늘도, 벽돌 만드는 작업에서 너희가 맡은 일을 전처럼 다 하지 못하느냐?" 하고 다그쳤다.

15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반장들이 바로에게 가서 호소하였다. "어찌하여 저희 종들에게 이렇게 하십니까?

16 저희 종들은 짚도 공급받지 못한 채로 벽돌을 만들라고 강요받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희 종들이 이처럼 매를 맞았습니다. 잘못은 틀림없이 임금님의 백성에게 있습니다."

17 그러자 바로가 대답하였다. "이 게을러 터진 놈들아, 너희가 일하기가 싫으니까, 주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떠드는 것이 아니냐!

18 썩 물러가서 일이나 하여라. 너희에게 짚을 대주지 않겠다. 그러나 너희는 벽돌을, 맡은 수량대로 어김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

19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반장들은 매일 만들어야 하는 벽돌의 수를 줄일 수 없다는 말을 듣고서, 자기들이 곤경에 빠졌음을 알았다.

20 그들은 바로 앞에서 나오다가, 자기들을 만나려고 서 있는 모세와 아론과 마주쳤다.

21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 보시고 벌을 내리시면 좋겠소. 당신들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소. 당신들은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셈이오."

22 이 말을 듣고서, 모세는 주님께 돌아와서 호소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이 백성에게 이렇게 괴로움을 겪게 하십니까? 정말, 왜 저를 이 곳에 보내셨습니까?

23 제가 바로에게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뒤로는, 그가 이 백성을 더욱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구하실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계십니다.“

 

주석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21절) 바로는 벽돌을 만드는 이스라엘의 노역을 더욱 힘들게 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벽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짚도 제공받지 못했다. 히브리인 십장들에게 이것은, 마치 모세와 아론이 바로의 이스라엘 민족 말살 운동을 펼치기에 이상적인 기회를 제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모세와 아론을 바라보았다(IVP 성경주석).

 

바로의 명령을 받은 강제노동 감독관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료를 직접 구해서 벽돌을 만들되, 재료를 공급받을 때처럼 벽돌을 생산하라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립니다(10-13절). 감독관들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이스라엘 작업반장들은 매를 맞았고, 이런 자신들의 억울함을 바로에게 호소합니다(14-16절).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절망뿐입니다(17-19절). 작업반장들은 이런 상황의 원인 제공자인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고, 모세는 주님께 호소합니다(20-23절).

 

바로의 분노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구체적인 폭력과 책임 전가를 낳습니다. 불합리한 지시와 강압, 권위자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작업반장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신의 선의가 도리어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는 모세의 입장은 어떠했을까요?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 봅시다. 혹 내가 비슷한 상황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을 토로합시다.

 

 

[오늘의 묵상]

강제 노동, 쉴래야 쉴 수 없는 쳇바퀴의 삶. 

인간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환경. 

일하는 기계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 

그 강제 노동이 더욱 심화된다. 

재료의 공급이 없이 생산하라고 한다. 

작업 물량도 이전과 같다. 

노동 강도만 더욱 올라간다.

히브리 작업 반장들이 바로를 직접 찾아간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그저 감독관들이 임의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아니면 최고 권력가의 영향인지 확실히 알아야 했다. 

바로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죽음을 무릅쓰는 행위였다. 

용기있게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최악이었다.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가 들린다. 

마치 히브리 민족들이 일하기가 싫어서 광야에 가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알려진 것이다. 

바로 왕에게 미움을 샀다. 

안 그래도 힘든 삶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작업 반장들은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중간 관리자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막노동자들에 비하면 대우도 괜찮았다. 

이제 그 마저도 어려울 상황이다. 

바로에게 죽든지, 동족 사람들에게 죽든지 하는 상황이다. 

 

1. 작업반장 시점

원망이 몰려온다. 제사드리러 광야로 가자로 제안했던 모세와 아론이 원수가 되었다. 

그 제안을 받아들였던 히브리 장로들과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이제는 고스란히 일하다 죽든지, 도망가다 죽든지 할 상황이다. 

별 볼일 없는 리더십이지만, 어쨌든 작업반장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했던 사람들로서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모세와 아론, 그 작자들이 원흉이다. 

살인 충동이 몰려든다. 

언제 모세와 아론이 우리들의 리더였는가? 

언제 그들의 말에 우리가 휘둘렸던가? 

살인자 집안… 한 때 그들 때문에 우리 동족이 큰 위협에 빠지지 않았던가? 

40년전의 그 상황을 여전히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을 규합하여 모세와 아론을 몰아내야 한다. 아니 그들을 살해해서 우리의 뜻을 바로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괜히 방치했다가는 우리가 죽을 판이다. 

우리 동족들이 죽게 생겼다. 

마침 그들을 만났다. 죽이자… 

 

2. 모세의 시점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 

바로가 말을 듣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이 권위가 안 선다. 

나(모세)로서는 예견되었던 상황이다. 

시내산 떨기나무 불 앞에서, 그렇게 안 가겠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제대로 될 일이 아니었다. 

과연 이적으로 바로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의문이 앞선다. 

형을 만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왕궁의 말을 잃어버렸다. 

겨우 일상 생활 용어만 알 뿐이다. 이렇게 중요한 협상을 처리하는 데에 필요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이집트말로 구사할 수가 없다. 

아론 형이 도와줘서 바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일로다. 

히브리 사람들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그들의 분노가 느껴진다. 

바로에게 죽기 전에 동족에게 죽을 판이다. 

아 작업반장들에게 들린 저 작업도구들이 살해 도구로 보인다. 

고통스럽다. 

왜 내가 이런 일을 맡았는가? 

왜 내가 여기에 왔는가? 

이러다간 나와 내 가족 모두 몰살 당할 판이다. 

아…. 도망가고 싶다. 아… 하나님을 만나기 전으로 가고 싶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을 마난 순간부터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결말은 어떻게 될까? 걱정과 두려움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3. 나의 시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도 그렇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다니면서 신비로운 이적을 많이 보았지만, 

그만큼 고통스런 순간도 많았다.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오해와 미움을 샀다. 

제자들 사이에 갈등이라고 있을라치면 그것도 너무 고통스럽다. 

제자의 삶이 이렇다. 

 

나도 예수님을 만나서 힘든 길을 걸어간다. 

기쁨과 즐거움이 없었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어려움과 슬픔과 자기부인과 오해도 있었다. 

나를 계속 말씀 앞에 돌아보는 것 자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이 힘들다. 

나의 욕망을 줄이고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것… 어렵다. 

 

연휴의 마지막 날, 

다시 사역의 현장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소통 속에 지쳐가지 않기를… 

주님의 은혜로 위기의 순간을 넘어가기를… 

힘들고 어려운 순간, 누군가의 원망과 분노를 받아내야 하는 순간, 주님의 도움심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의 기도]

어려운 삶을 부탁하신 예수님, 

싫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쉽지 않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부인하는 삶이 부담입니다. 

주님, 억지로 가지 않게 해 주세요.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가게 해주세요. 

네팔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BWTsnZdajY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이 벌어집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세속 사회, 4차 산업 혁명 시대, 우주 시대를 맞아 교만할 대로 교만해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 무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 세계에는 겸손히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주의 백성 삼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기쁨이 저의 기쁨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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