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04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에게 믿음과 더불어 사랑을 베푸소서.

 

15 이러한 확신이 있으므로, 먼저 나는 여러분에게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두 번 다시 은혜를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6 나는 여러분에게 들러서,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마케도니아에서 다시 여러분에게로 와서,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서 유대로 갈 작정이었습니다.

17 내가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이 변덕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또는, 내가 육신의 생각으로 계획을 세우기를, '아니오, 아니오' 하려는 속셈이면서도, '예, 예'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겠습니까?

 

18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동시에 '아니오' 하는 것은 아닙니다.

19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셨다가 동시에 '아니오'도 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을 뿐입니다.

20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21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튼튼히 서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2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NIV

Now it is God who makes both us and you stand firm in Christ. He anointed us, set his seal of ownership on us, and put his Spirit in our hearts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21-22절).

 

주석

17절 ‘육신의 생각으로’ 계획하는 것은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쉽게 약속을 어기고 거리낌 없이 ‘예’를 ‘아니’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으로 예정된 계획을 변경합니다. 하지만 ‘육신의 생각’으로 계획을 변경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습니다(15-17절). 바울은 신실하신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21절). 하나님이 약속에 신실하시듯, 바울 또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실했습니다.

 

바울이 신뢰하던 이들의 비난에도 단단히 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자신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십니다(22절). 이는 변치 않는 신실한 약속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있나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 앞에 진실한 태도로 굳게 서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바울은 자신의 선택의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애를 쓰고 있다. 

어찌보면 고린도후서는 교리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자신의 순박함과 진실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고린도 성도 중 일부가 비판을 하기 때문이다. 

약속이 변경되었다. 

방문 계획이 있었지만, 여러 상황상 그 계획을 바꾸어야 했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방식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고린도에 갈 계획이었지만, 그래서 그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바뀌어 어쩔 수 없이 변경한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바울의 속뜻을 의심했다. 

처음부터 갈 마음이 없었는데, 말로만 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변명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속과 겉이 다른 것… 위선… 그건 예수님이 아주 강력하게 바리새인들을 대상으로 비판했던 지점이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에게 위선자라는 공격은 심각한 내적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자신이 버리려고 했던 위선적 바리새인의 모습을 누군가 지적한 것이다. 

바울이라고 마음 속에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과 계획이 왜 없었겠는가!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특히 바울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원래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사실 방문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감정이 들 수 있었던 것. 

그렇다고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재방문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서상, 환영받지 못하는 공간에 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엄격하게 돌아보았다. 

정말 내 마음 속에 “아니오”라는 마음이 있었는가? 

그 마음은 진실한 것이었나? 

말로만 “예”하고 속으로는 “아니오” 하지는 않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것이다. 

답은 아니오였다. 

비록 마음 속에 거리끼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욱 큰 마음은 고린도 교회에 가겠다는 마음, 가고 싶다는 마음, 가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속과 겉을 일치시키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과다. 

예수님의 경고와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바울이 이런 진실성을 연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었던 바리새인의 삶을 청산하고 진심을 담아, 진실하고 신실하게 살아가겠다고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그 노력이 눈에 그려진다. 

매번 자신을 돌아보며,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양심에 비추어 예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단호하게 확신있게 예라고 말해야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연습. 

애매모호하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말하지 않는 훈련. 

 

바울은 결국 이 모든 결정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계획이 변경되었다. 

단순 변심이 아니다. 마음의 오락가락이 아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으며, 그 계획에 따른 사명이 각자에게 주어지고, 바울은 그 사명에 따라 계획을 수정했던 것이다. 

자신의 육신의 상황, 환경의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생각하며 계획을 바꾸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가지 않을 생각인데, 말만 그렇게 했다는 비난은 과도하다. 

 

이렇게 한 번 관계가 꼬이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과거에도 그랬겠지만, 현대 사회는 더욱 그렇다. 

정보의 공유 속도가 너무 빠르다. 

한번 깨어진 신뢰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모든 행동과 말이 고깝게 들리고, 비판의 소스가 된다. 

복잡한 인간 심리를 생각할 때, 과연 진정성이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기가 두렵다. 

아무리 나의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항변해도, 한번 틀어지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느새 거짓말쟁이가 된다. 위선자가 되고, 이기주의자가 된다. 

진정성은 말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과 결과로 증명되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동안은 비난, 비판, 오해, 불명예를 참고 견뎌야 한다. 

정말 진정성과 진실성을 확보하려면 인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성과 신실성은 십자가라는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권력가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때, 그는 죽음을 기다렸다. 

아무 말 없이 행동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그렇지 않고는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많은 경우 속고 속이는 세속 사회의 본질에 혹사당했기 때문일거다. 

 

어제 말씀이 떠오른다. 

주님이 주시는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교인들을 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겠구나 싶다. 

과연 나는 겉과 속이 같은 진정성있는 사람인가? 

그간 나의 노력은 과연 결실을 맺고 있는가?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인가? 

INFJ의 복잡함을 단순명료하게 줄여가고 있는가?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나를 분노케 한다. 

순곡선열의 정신을 이토록 왜곡시키다니, 그는 자꾸 선을 넘는다. 

편향된 외교로 적을 만들고, 단선적 동맹주의로 역사를 왜곡한다.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과연 그의 진정성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인가 일본인가!!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인류 구원에 진심이신 하나님, 

당신의 진심은 당신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 진심을 저는 믿습니다. 

 

저도 당신을 닮아 더욱 신실하고 진실하게 하소서. 

복잡한 내면의 생각 때문에 제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정직하게 돌아보고, 솔직하게 말하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소서. 

많은 사람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저의 주관과 생각을 몰래 감추는 위선적인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이 모순 덩어리 인간을 도와주세요. 

정직한 사람이 되게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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