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6. 김혁수 

 

[본문_야고보서 3:1-12]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여러분은 선생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됩니다여러분이 아는 대로가르치는 사람 우리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2우리는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누구든지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몸을 다스릴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3말을 부리려면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그리하여 우리는 말의  몸을 끌고 다닙니다.

4보십시오배도 그렇습니다배가 아무리 커도 거센 바람에 밀려도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여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5이와 같이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엄청난 일을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보십시오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숲을 태웁니다.

6그런데  불이요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우리 몸의  지체이지만 몸을 더럽히며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결국에는  게헨나의 불에 타버립니다.

7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 놓았습니다.

8그러나 사람의  길들일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겉잡을  없는 악이며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있습니다.

9우리는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나의 형제자매 여러분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11샘이  구멍에서  물과  물을   있겠습니까?

12나의 형제자매 여러분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있겠습니까마찬가지로  샘은  물을   없습니다.

 

[설교]
0.
들어가며

-

여러분 인생에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계시나요?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떠올려 봤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났지만,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분은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체육 선생님이셨어요. 학기 초였습니다. 당시에는 공부를 시키기 위해 정규 수업 이외에 특별반 수업이 편셩되었던 때였습니다. 지금도 그럴 있겠지만, 당시에는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었죠. 하지만, 특별반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별도의 수업료를 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도 수업을 들으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리셨죠. 그런데 저희 집은 가난해서 사실 특별 수업료를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가시는 선생님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수업료를 없어서 특별반 수업을 들을 수는 없겠다고 말씀드렸죠. 체육 선생님은 저의 귀싸다귀를 날려버렸습니다. 눈물이 돌았습니다. “김혁수, 뭐가 이렇게 약해 빠졌어. 수업료는 내가 해결할테니 그냥 들어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분은 저의 소심하고 약해빠진 태도, 당당하지 못한 태도가 못마땅했었나 봅니다. 지금이야 있을 없는 일이지만, 뺨을 때리고 수업료도 내주시는 그분이 이상하게 기억에 가장 오래남습니다. 

 

가지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체육 선생님의 힘은 정말 세다. 그리고 인생은 조금 당당하게 살아도 된다. 등등..

여전히 저는 소심한 측면이 있지만, 인생을 살펴보면 소심함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마도 때부터였던 같아요. 저의 소심함이 생각보다 저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때가 말입니다. 

 

우리는 많은 선생님들의 영향을 받아서 곳에 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수많은 선생님들이 우리의 인격과 지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읽어볼까요?

 

1. 선생님 전성시대(1)

- 초대 교회 선생님들 

초대교회에도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새롭게 생겨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삶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사도 바울도 중에 분이죠. 사도들을 비롯하여 바나바와 아볼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등의 12사도 이외의 사람들이 등장해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반복해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쩔 없이 조금씩 말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다뤘던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서 너무 강조한 선생님들이 등장했으며,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공동체의 연약하고 가난한 지체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가르쳤던 것이죠. 

 

- 너에게는 나에게는(2:18)

혹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등장했습니다. 야고보서 2:18절인데요. 

 

2:18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리하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

 

그렇습니다. 믿음과 행동을 구분하고 마치 믿음이 행동과는 따로 노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는 것이죠.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둘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마치 선한 행동이면 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로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전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1절입니다.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정말 무서운 생각들이 듭니다. 하나님은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시는 분이라고 야고보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가르침을 보고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마태복음 15:14) 

 

- 신앙 인격을 좌우하는 설교들

사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엄청 많은 설교를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예배 드릴 때마다 설교 시간만 되면 졸음이 몰려옵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었던 설교들이 우리의 신앙 인격을 형성하는 크게 기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매주 죄에 대해 생각하고, 죄를 용서하시는 분을 떠올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매주 듣는 삶은 기독인들의 특수한 성품을 낳습니다. 성경의 여러 인물들과 특히 예수님의 이야기는 우리의 세계관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듣는 설교, 성경 해석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실제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로서 두려운 마음입니다.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성경을 제대로 해석했는가, 적용점이 적실한가, 가르침과 행동이 일치하는가 등등 생각할 내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제대로 설교자들은 이런 싸움을 계속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제대로된 설교자가 있도록 말입니다. 

 

2. 말의 (2-8)

- 현실적 인간론 

야고보는 인간에 대해 지극히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실수가 많습니다.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특별히 말의 실수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누군가를 씹는 대화를 시작하면 어느덧 욕이 나오고, 이러저러한 비난이 수위를 넘습니다. 뒷담화, 험담이 안주가 되면 술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8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Horse and Ship 

야고보는 말이 가지는 무서운 힘에 대해 말하면서 혀를 언급합니다. 우리 몸에서 작은 지체에 속하는 혀가 우리의 행동과 존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말과 배를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말에 재갈을 물려 말을 조종합니다. 배도 마찬가지죠. 배가 결국 배의 뒤에 있는 작은 키로 방향을 조정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작은 신체 기관인 혀에 의해 우리의 생각, 행동, 존재가 영향을 받는다고 적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존재가 영향을 받습니다. 쉴새 없이 욕을 하며 남을 헐뜯는 말을 하는 사람은 생각과 행동과 존재가 터프해집니다. 부드러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 행동, 존재가 부드럽기 마련입니다. 이건 어쩔 없습니다. 

 

- 불의

단순히 자신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혀를 어떻게 놀리는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굳이 실험 결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쉽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매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상대방의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난 동안 마음 상했던 떠올려 보세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말로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100밀리미터의 철갑판을 대고 사는 같습니다. 살살 웃으면서 말로 공격하고 방어하는 모습을 보면, 전쟁터와 다름 없습니다. 한마디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장 끔찍한 말을 사용했던 사람은 아마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갈라치기의 대마왕이었죠. 잠잠했던 인종 차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민자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자국 이기주의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평화/환경 공조가 흐트러졌습니다. 혀가 너무 가볍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말을 안하고 수는 없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화병에 걸려 죽을 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고유한 중에 하나가 화병이라고 합니다. 꾹꾹 참으면서 살다보니 섞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서 결국 화병이 나고 마는 것이죠. 지난 20세기 한국이 당한 역사를 보면 화병이 생길 수가 없었을 같긴 합니다. 36년의 일제치하에서 눌려 살아야 했습니다. 해방되자 좌우 이념 대결 때문에 숨죽이고 살다가 동족 상잔의 한국 전쟁이 터집니다. 남한에 살던 사람들은 반공주의와 군사독재의 권위주의 시대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화병이 생기죠. 이해할만 합니다. 

 

우리는 말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혀를 놀려야 합니다. 크게 웃어야 합니다. 때로는 분노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말과 말의 태도를 항상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의 근원은 우리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3. 말의 중심(9-12)

- 말의 근원 

 

12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 샘은 단 물을 낼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말은 사람의 중심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을 없습니다. 포도나무가 무화가 열매를 맺을 없습니다. 짭짤한 샘에서는 물이 나올 없습니다. 바닷물에 영향을 받고 있는 샘에서는 사람이 마실 있는 민물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 속에 분노가 가득한데 부드러운 말이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마음 속에 사도들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마음이 가득한데, 사도들 가르침 그대로 말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 말과 말의 태도 

마음의 중심에서는 말의 내용 아니라 말하는 태도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말의 뉘앙스를 파악합니다. 말의 내용 아니라 바디 랭귀지가 의사소통에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줌에서 오랫동안 대화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서로 마주보며 눈과 손짓과 제스처를 봐가며 말의 뉘앙스를 파악하면서 대화를 해야 하는데, 말의 내용만으로 소통하려고 하니 더욱 피곤해지는 것이고, 충분히 소통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런 말의 내용 아니라 말의 태도도 바로 우리의 마음 중심에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기 마련이다.

 

4. 축복의 말이 넘치는 공동체 

- 용서 그리고 평안 

야고보가 보고 있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실상을 그려보실 있으시겠어요? 가르치는 사람들의 말이 일파만파 퍼져나갑니다. 사도들이 원래 가르쳤던 내용을 넘어서는 말들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어떤 공동체는 파괴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분열을 일으킵니다. 말의 힘이 그렇게 무섭게 초대 교회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선택했습니다. 사람을 비판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을 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으로 형제자매들을 저주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당한 판단이라는 것이 있을 겁니다. 잘못에 대해 잘못이라고 말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를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분노가 도를 지나쳐 욕을 하거나 저주를 부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언어 속에 용서의 말이 조금 늘어나야 합니다. 형제 자매의 약점과 실수와 잘못에 대해 용서를 통해 평안을 전하는 말들이 늘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용서의 말들이 사라지는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잘못했다는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용서한다는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서로 말없이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용서는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언어를 회복해야 합니다. 어색하지 않는 분위기가 연출하기 위해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웃음으로 뭉개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용서의 말과 용납의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 비판 보다는 축복

비판 보다는 축복의 말이 우리의 일상의 언어에 많이 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축복의 말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동안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던 삶에 대해 서로 축복의 말로 위로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고,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5. 나가며 

- 바른 설교자 그리고 축복의 성도들
오늘 야고보는 가지를 한국 교회와 우리 공동체에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바른 설교자입니다. 말로 다른 사람들의 신앙 인격을 좌우하는 저를 비롯한 설교자들이 더욱 최선을 다해 바른 말씀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것입니다. 둘째는 성도들의 말이 축복의 언어로 바뀌어야 합니다. 말만하면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처음 배우는 언어는 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축복의 말이 흘러가야 합니다. 이번 주는 어떤 축복의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생각해 문제 & 기도] 

1.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누구인가요? 그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2. 초대교회 최고 지도자 야고보는 우리의 언어 생활에 변화를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평소에 쓰는 언어 중에 삭제하고 싶은 말과 말의 습관 혹은 장착하고 싶은 말과 말의 습관이 있다면 나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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