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여는 기도

살아 있는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하니, 주님의 종을 심판하지 말아 주십시오.

 

33유다의 아사 왕 제 삼년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디르사에서 스물네 해 동안 다스렸다.

34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고, 여로보암이 걸은 길을 그대로 걸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는 그 죄도 그대로 따라 지었다.

1주님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내려서, 바아사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2"나는 너를 먼지 속에서 이끌어 내어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았다. 그런데 너는 여로보암과 같은 길을 걸어서, 내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그 죄 때문에 내 분노를 사는구나.

3내가 바아사와 그의 가문을 쓸어 버리겠다. 그리하여 네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만들겠다.

4바아사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성 안에서 죽는 사람은 개들이 먹어 치울 것이고, 성 바깥의 들에서 죽는 사람은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다."

5바아사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것과 그의 권세,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6바아사가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서, 디르사에 묻혔다. 아들 엘라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7주님께서 예언자 하나니의 아들 예후를 시키셔서, 바아사와 그의 가문에게 말씀하셨다.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므로, 주님의 노를 격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의 가문을 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인생이 그렇다.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죄의 영향 속에 살고 자신도 그 죄의 색깔을 더 진하게 만든다. 

죄의 시스템을 강력하다. 

전대 왕의 죄악이 강력한 사회 시스템으로 남아 후대에 전달된다. 

개혁을 위해 반역, 혁명을 일으키지만,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통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반역이 반역을 낳는다. 

처음에는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한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막상 혁명에 성공하고 숱한 도전에 직면해서는 결국 중앙집권화의 길을 걷는다. 

독재 시스템을 견고하게 만든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반역에 대비하느라 더욱 강력한 폭압정치를 펴기도 한다. 

죄가 죄를 낳는다.

인생이 그렇다. 

 

바아사가 여로보암 가문을 멸하고 새로운 통치를 시행할 때만 해도 새로운 세상이 올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기대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나는 너를 먼지 속에서 이끌어 내어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았다. 그런데 너는 여로보암과 같은 길을 걸어서, 내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그 죄 때문에 내 분노를 사는구나.

 

바아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렇다할 큰 가문도 아니고 그 능력도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아사를 왕으로 세우시면서 그의 가능성을 보고 그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바아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여로보암처럼 짓기 시작했다. 

자신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죄를 짓도록 강제한다. 

시스템이 굳어지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백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우상 숭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시켜 바아사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언제나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다. 

바아사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회개의 길을 걸어야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그의 죄를 회개하지 않은 것 같다. 

 

열왕기의 왕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축약적이다. 

바아사의 24년 간의 통치의 자세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간단하게 점검한다. 

24년간 그는 유다의 왕과 전쟁 상황에 있었다. 

매년 백성들은 군사로 차출되어 전장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동족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 24년은 우상 숭배와 전쟁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겠다. 

안따까운 일이다. 

 

나의 47년의 인생은 어떤 단어로 압축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떤 단어로 압축될 것인가? 

다윗과 아사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르호보암, 여로보암, 바아사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하나님, 

제 인생을 압축할 때 등장할 단어를 떠올려봅니다. 

과연 하나님 앞에 정직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했습니까?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교회, IVF, 복음, 청년대학생, 전도, 회심… 

이런 단어들이 후보군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한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온 인류의 주인되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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