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7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29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스물두 해 동안 다스렸다.

30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31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

32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33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

34아합 시대에 베델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다. 주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그 성의 기초를 놓으면서는 그의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달면서는 그의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

1길르앗의 디셉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2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3"이 곳을 떠나서, 동쪽으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 요단 강 동쪽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지내며,

4그 시냇물을 마셔라. 내가 까마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날라다 주게 하겠다."

5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가서, 그대로 하였다. 그는 곧 가서, 요단 강 앞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머물렀다.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물은 그 곳 시냇물을 마셨다.

7그런데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얼마 있지 않아서, 시냇물까지 말라 버렸다.

 

주석

1절: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은 단순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여호와의 권능과 바알의 무능함을 드러낼 경쟁 가운데 첫 번째 시도였다(IVP 성경주석).


유다 왕 아사는 정말 많은 일을 겪은 왕이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급변 사태가 너무 자주 바뀌었고, 그 때마다 철저하게 대비해야 했다. 

그렇게 많이 바뀌는데도, 그들의 죄악은 그치질 않는다. 

아마 아사가 끝까지 다윗의 길을 걸었던 것, 죄악의 길로 빠지지 않았던 것은 북이스라엘의 왕들의 역사를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았던 것은 아닌지 추측을 해본다. 

 

오므리도 문제였지만, 그의 아들 아합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더 앞질렀다.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바알을 섬기고 예배했다. 

시돈 왕의 이름이 엣바알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기본적으로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피해야 할 대상이건만, 아합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세라는 거칠 것이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거리낌 없이 진행한다. 

아합 왕을 조종하여 바알을 섬기는 제단과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다. 

이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다. 

비의 신,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기로 결정한 듯 싶다. 

 

하나님의 진노가 점점 끓어 오른다. 

이상한 점은 하나님의 진노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심판의 시기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어떤 왕은 금방 실권하여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악한 왕은 장기집권에 성공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1차원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의인을 통해 악인을 치시는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더 큰 악인을 통해 기존의 악인을 치시는 경우도 있다. 

더 큰 악인이 더 빨리 심판은 받는 것도 아니다. 

심판의 시기는 계산되지 못한다. 

하나님께 달린 일이다. 

그분이 결정하신다. 

언제 심판할 지, 어떻게 심판할 지는 하나님의 판단에 달려 있다. 

 

선지자 엘리야가 갑자기 불쌍하다. 

기껏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나서, 도망해야 했다. 

그릿 시냇가에 몸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아침 저녁으로 까마귀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가뭄이 심해지자 그릿 시냇가도 말라 버렸다. 

하나 같이 열받는 상황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면 하나님께서 좋은 집과 옷과 음식과 편안한 삶을 보장해주셔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렇게 비루한 삶을 살아야 하다니… 

불쌍하다는 생각에 고통스럽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삶이 이러하다니… 

선뜻 이 길을 가자고 말하기가 두렵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그들이 현실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지는 못했다. 

차라기 구약의 족장들을 보면 그래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누렸던 것 같은데 말이다. 

선지자들의 삶,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들의 삶은 누추하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 길을 회피하지 말자. 

둘 다를 얻으려는 억지 욕심을 포기하자. 

이 시대의 엘리야들을 응원한다. 


어제는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렸다면, 오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슬픔과 분노를 느끼신다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당신의 진노를 여전히 촉발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을 도모하고, 살인을 계획하는 사람들. 

거짓과 술수로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는 사람들. 

주님, 이런 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깨닫고 돌아서게 해 주세요.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을 보살펴 주소서. 

 

주님,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 증언하기 위해 헌신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축복하여 주소서. 

때로는 그릿 시냇가가 마르는 좌절스런 경험이 그들에게 찾아 올 수도 있겠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여전히 신뢰하며 인내하는 그들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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