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28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8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9 "바로가 너희에게 이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지라고 하여라. 그러면 지팡이가 뱀이 될 것이다."

10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갔다. 그들은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하였다.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 자기의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11 이에 바로도 현인들과 요술가들을 불렀는데,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와 똑같이 하였다.

12 그들이 각자 자기의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들이 모두 뱀이 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켰다.

13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석

이집트의 마술사(11절) 바로의 술객들은 징조와 꿈에 대한 문헌에 정통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문을 외우는 데도 전문가였을 것이다. 그들은 감응 마술을 행했을 것이며,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사용하여 신들과 영들에게 명령을 했을 것이다(IVP 배경주석).

 

주님의 말씀대로 모세는 아론을 통해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을 행합니다(8-9절).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같은 이적을 행했지만,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립니다(11-12절). 그러나 주님의 말씀대로 바로는 고집을 부리며 그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13절).

 

드디어 주님이 ‘주님’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적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집트 마술사들의 능력을 압도했습니다(12절).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관념적이거나 교훈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 능력으로 증명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이적으로 ‘주님’되심이 증명되어야 할 삶의 영역이 있습니까? 이를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83세의 아론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모세가 찾아와서는 갑자기 파라오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꿈도 꾸지 못했었다. 단지 이스라엘의 백성에게 가해지는 고통스런 노동 강도를 바라보며 자신도 빨리 죽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느니 눈을 감고 말지. 

그런데 동생 모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세의 가족들은 미디안 사람들이었고, 모세의 히브리어 혹은 이집트어 수준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왕궁에서 살았던 모세가 양을 치는 목자의 복장으로 다가왔다. 

오랜 이야기를 끝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부르심에 대해 이해했다. 

그리고 그를 따라 파라오에게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지난 몇 주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론 자신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파라오를 만났다. 

순전히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은 하나님께서 직접 아론에게도 말씀하신다. 

활은 시위를 떠났다. 

하나님은 아론의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신다. 

이상하다. 왜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고 아론의 지팡이일까? 

모세나 아론이나 나이가 들어 지팡이가 필요하다. 

그냥은 오래 돌아다니지 못한다. 울퉁불퉁한 산길, 오솔길, 오르막길, 내리막길에 지팡이는 유용하다. 

아니 유용함을 넘어 어느 순간에는 필수품이 된다. 

이제 모세뿐 아니라 마음 속에 의심이 있을 수 있는 아론에게도 확신이 필요했다. 

모세의 지팡이도 위대한 일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아론의 지팡이도 이적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이적의 통로가 되는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면 그것 만큼 큰 믿음의 상징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아론의 지팡이는 항상 하나님의 이적을 상기시킬 것이다. 

항상 들고 다니는 지팡이가 하나님을 떠올리게 한다. 

그분의 부르심과 일하심을 기억하게 한다. 

아론도 이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가 된 것이다. 

 

현실에서 이것이 필요하다. 

답답한 상황에서 이것이 필요하다.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일하심을 상기시킬 나만의 지팡이 말이다. 

옷이 될 수도, 책이 될 수도, 차가 될 수도 있다. 

음식이 될 수도, 시간이 될 수도,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매일 사용하고 애용하는 그 무언가가 하나님을 떠올리고 그분의 역사와 능력과 부르심을 상기시킨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좋다. 

그분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그분을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만족한다. 

 

주말 아침, 뭔가 분주하다.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느낌. 

여전히 나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느낌. 

여전히 뒤에 빠져서 관전자가 된 느낌. 

찝찝하다. 

그 지팡이가 내 손에 들렸으면 좋겠다. 

주님께 지팡이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드린다. 

 

 

[오늘의 기도]

능력의 하나님, 

당신의 능력이 제 일상으로 밀고 들어오길 기도합니다. 

저를 향한 당신의 부르심을 매일 확인할 수 있게 도와 주소서. 

그 부르심에 따라 용기 있게 말하고 행동하게 하소서. 

 

주말이지만 부담스럽습니다. 

해야할 일들도 많고, 정서적 부담도 여전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안식의 순간을 허락하소서. 

몸과 마음이 쉼을 누리도록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1월 21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 그 뒤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하셨습니다."

2 그러나 바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주가 누구인데, 나더러 그의 말을 듣고서,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주를 알지도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도 않겠다."

3 그들이 말하였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을 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무서운 질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 것입니다."

4 이집트의 왕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들어라. 너희는 어찌하여 백성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느냐? 어서 물러가서, 너희가 할 일이나 하여라."

5 바로가 말을 이었다. "그들이 이집트 땅의 백성보다도 더 불어났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들이 하는 일을 중단시키려 드는구나."

6 바로는 그 날로, 이스라엘 백성을 부리는 강제노동 감독관들과 작업반장들에게 명령하였다.

7 "너희는 벽돌을 만드는 데 쓰는 짚을 더 이상 이전처럼 저 백성에게 대주지 말아라. 그들이 직접 가서 짚을 모아 오게 하여라.

8 그러나 벽돌 생산량은 이전과 같게 하여라. 만들어 내는 벽돌의 수가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게을러서, 그들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하면서 떠든다.

9 그들에게는 더 힘겨운 일을 시키고, 그 일만 하게 하여서,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여라."

 

주석

그 주가 누구인데(2절) 바로는 모세와 아론, 특히 하나님을 향해 철저한 모욕을 드러냈다. ‘여호와가 누군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여호와’를 아는 주제가 이후의 장들에서 빈번하게 되풀이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IVP 성경주석).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주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지만, 바로는 그 ‘주’가 누구냐고 모욕하며 비꼽니다(1-2절). 모세는 바로의 거절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지만 쫓겨나고 맙니다(3-4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전보다 더 강도 높은 노역을 시키도록 명령합니다(6-9절).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무능함 사이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넘어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갖고 바로에게 당당하게 나아갔지만, 강력한 반대를 마주합니다.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다가 강한 반대에 직면한 적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내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파라오는 역시 왕이었다. 

왠만한 말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 신이라고 여기고 있다. 

수 많은 신들이 있는데, 도대체 어떤 신이 자신들의 노예를 데려간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신이 신전을 짓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을 데려간단 말인가? 

납득하기 어렵다. 

안그래도 인구가 늘어 산아제한 정책을 펴기도 하고, 노동 강도를 높여 가며 통제하고 있는데, 

그들이 광야에 나아가 몇십만명이 집회를 가지면, 그동안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성토 대회를 가지면, 

그 위력과 위협이 얼마나 클 것인가? 

파라오 입장에서는 결코 허락해 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모세와 아론이 뭐기에… 

모세는 왕궁에 있었던 히브리 사람이지만, 과거에 살인을 저질러 광야로 도망친 작자 아닌가? 

아무런 권세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와서 몇십만명의 노동자들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하니, 이건 미쳤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파라오 입장에서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이 두 사람을 없애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집트의 왕은 역시 파라오였다. 

 

파라오는 묻는다. 

도대체 그 주가 누구냐고. 

도대체 히브리 백성을 끌고 나오라고 말하는 신이 누구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신의 명령을 들을 리 만무하다. 

도리어 더 강력한 노동명령을 내린다. 

노동강도를 더 높여서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도록 강경책을 구사한다. 

모세와 아론의 말들이 파라오의 화를 돋구었다. 

 

상황은 더 악화일로다. 

자칫하면 파라오의 근위병에게 잡힐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소식을 접하면 모세와 아론에게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박해고 고난이다. 

상황을 타개할 만한 일들이 보이지 않는다. 

며칠 동안 모세와 아론이 겪었을 고통이 눈에 들어온다.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가족들은 챙길 여력이 없다. 

상황을 통제하기 어렵다. 

겨우 몸을 일으켜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대로 진행하려고 해도, 모든 일이 다 수월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꼬이고, 사람들의 마음도 묶인다. 

꿈과 비전을 말하고, 미래의 소망을 말해도 꿈쩍도 안한다. 

도리어 비난과 비판이 난무하고, 인신공격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왜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 어렵고 힘든 길을 제시하는지 묻는다. 

마음이 떠나고 몸도 떠난다. 

공동체가 와해되고 하나됨이 무너진다. 

갈등과 긴장이 증폭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진다. 

한 팀이 되어야 할 사람들끼리 와해되고 분열되어 산산히 흩어진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도 왜곡되고 저 운악산 꼭대기에 버려진다. 

 

그런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계속 말할 수 있는가? 

과연 하나님의 뜻이란 것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겠는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혹시 잘못된 것이라고 회의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헬륨 풍선처럼 북녘으로 사라진다. 

 

절망의 순간, 실패의 순간, 비통의 순간, 원망의 순간. 

우리 인간이 겪는 삶의 많은 부분이 이런 순간들이다. 

기대가 낭패가 되고, 소망이 원망이 되며, 비전이 허상이 된다. 

포기하고 싶어진다. 

원래도 그렇게 예상했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예상했었고, 그 중에 하나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 원망의 마음이 돌아간다. 

왜 나를 부르셨나? 왜 나를 이곳으로 이끄셨나? 

모든 것이 그분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날이 있다. 

그런 일주일이 있다. 

그저 그럴 때는 그냥 있어야 한다. 

그분이 일하시길 멍하니 쳐다본다. 

하늘이 조율해 주시길…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길… 

기도의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흩어졌던 꿈들이 다시 모이기를 바라며 운악산 정상을 쳐다본다. 

 

 

오늘 본문에서 도출할 수 있는 사실과 적용이다. 

 

1. 세상은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 파라오는 일의 관점에서만 히브리 백성들을 대한다. 

- 모세와 아론에게도 너희가 할 일이나 하라고 말한다. 

- 노동강도를 더 높여서 다른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 원래도 그랬지만, 당시에는 안식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 

-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 예배드리는 그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려고 한다. 

- 공동체적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한다. 

 

3. 한 번의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마라. 

- 파라오에게 한 번 협상해서 실패했다고 그것이 실패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 원래 큰 일일수록 오랜 걸리는 법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라. 남북의 통일은 아직도 달성되지 못했다. 

- 실패로 여길 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으로 전환하라. 

 

구정이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세상의 효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관점에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자. 

그리고 실패의 순간에도 절망하지 말고 다시 그분의 일하심을 기대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새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 명절을 통해 새해를 다시 시작하게 하시고, 

새로운 다짐들을 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세상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지 않게 하시고, 

예배드려야 살 수 있는 예배자의 관점으로 보게 하소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을 때,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처량한지 알게 하소서. 

주님, 세상의 변화가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임을 알게 하소서. 

그 올바른 관계에서 올바른 변화가 일어남을 믿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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