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16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9 때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말하였다. "제가 임금님에게로 달려가서, 주님께서 임금님을 원수에게서 구원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20 그러나 요압이 말렸다. "오늘은 아무리 좋은 소식이라도, 네가 전하여서는 된다. 너는 다른 좋은 소식을 전하여도 된다. 그러나 오늘은 날이 아니다. 오늘은 임금님의 아들이 죽은 날이다."

21 그리고는, 요압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명령하였다. "네가 가서, 대로 임금님께 아뢰어라." 그러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요압에게 절을 하고 달려갔다.

22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또다시 요압에게 말하였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으니, 저도 에티오피아 사람과 같이 가서 보고할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요압은 말렸다. "아히마아스야, 네가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보아야, 소식으로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한다."

23 아히마아스가 또다시 말하였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으니, 저도 가겠습니다." 요압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말리지 않겠다." 아히마아스는 요단 계곡을 지나는 길로 달려서, 에티오피아 사람을 앞질렀다.

24 때에, 다윗은 성문 안문과 바깥문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파수꾼이 성문의 지붕 위로 올라가서, 성벽 위에서 멀리 바라보고 있다가, 어떤 사람이 혼자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25 파수꾼이 큰소리로 사실을 왕에게 알리니, 왕은 "혼자 오는 사람이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람이 점점 가까이에 이르렀다.

26 파수꾼이 보니,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파수꾼이 큰소리로 문지기에게 " 사람이 달려온다" 하고 외치니, 왕은 "그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다" 하고 말하였다.

27 파수꾼이 알렸다. "제가 보기에, 앞서서 오는 사람은 달리는 것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전하러 것이다."

28 아히마아스가 왕에게 가까이 이르러서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며, 얼굴이 땅에 닿도록 왕에게 절을 하며 아뢰었다. "높으신 임금님께 반역한 자들을 없애 버리시고, 임금님께 승리를 안겨 주신, 임금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9 왕이 " 어린 압살롬도 평안하더냐?" 하고 물으니, 아히마아스는 "임금님의 신하 요압이 종을 보낼 때에, 소동이 있었습니다마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30 왕이 "물러나서 곁에 있어라" 하고 말하니, 그는 곁으로 물러나서 있었다.

31 바로 때에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왔다. 에티오피아 사람이 왕에게 아뢰었다. "높으신 임금님께 기쁜 소식을 가져 왔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임금님께 반역한 자들을 없애 버리시고, 임금님께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32 왕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물었다. " 어린 압살롬이 평안하더냐?" 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높으신 임금님의 원수들을 비롯하여, 임금님께 반역한 자들이 모조리 젊은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33 왕은 말을 듣고,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성문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울었다. 그는 올라갈 때에 " 아들 압살롬아, 아들아, 아들 압살롬아,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아들아, 아들아!" 하고 울부짖었다.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승리의 소식을 알리려고 합니다. 요압이 만류하고 에티오피아 사람을 보내지만 아히마아스는 끝내 다윗을 향해 출발합니다(19-23절). 다윗은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4-27절). 관심은 압살롬의 생사 여부에 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전해들은 다윗은 울부짖습니다(28-33절).

 

아히마아스는 상을 받기 위해 왕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하려 합니다. 압살롬의 죽음이 다윗 왕에게 어떤 의미인지 압살롬에게 듣고도 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생사 여부를 묻자, 그는 모르는 척 답을 피하고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넘겨버립니다. 그는 받을 상에 마음이 급해 슬퍼하는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합니다.

 

 

——

마음의 동기

 

아하스마스는 요압 장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식을 전하러 갔을까? 

결국 질문에 답을 내려야 오늘의 중심 메시지가 도출될 것이다. 

아하스마스는 다윗이 심어두었던 첩자였다. 

요나단과 함께 아히도벨의 계책과 후새의 대응, 그리고 압살롬의 움직임에 대해 다윗에게 전달했던 사람이었다. 

아하스마스 덕분에 다윗과 그의 군대는 시간을 있었고, 에브라임 수풀 전투에서 승리할 있었다. 그러니 아하스마스는 승리를 누리고 승리에 대한 응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있다. 물론 순전히 빨리 승전보를 알림으로써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왕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일 수도 있겠다. 

 

성경저자는 아하스마스가 상당히 빨리 달려서 에티오피아 사자보다 먼저 도착했음을 적고 있다. 

아하스마스는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에티오피아 전령도 제법 빠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령은 기동성과 민첩성 생존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뽑힌다. 

그런 에티오피아 사람을 제끼고 앞서서 달려 나가고 있다. 

상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지 아님 순전히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어서 그랬는지는 쉽게 분간이 안된다. 

 

이상하게 오늘은 그의 순전함에 표를 던지고 싶다. 

성경 인물들의 행동과 선택의 의도를 사건마다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경우는 그냥 추측하거나 그날의 마음 가짐에 따라 선택을 수밖에 없다. 

오늘은 아하스마스가 순전히 빨리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어한다는 선한 동기에 주목하고 싶다. 

자신의 달리기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마치 마라톤 전투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40KM 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 갔던 그리스의 병사처럼 전령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충성스럽게 달려간다. 

지난 자신과 요나단의 첩보를 통해 다윗과 그의 군대가 살았고, 이제는 반란군이 진압되었다. 

다시 다윗 왕국이 새롭게 시작할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자신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것도 대견하지만, 안에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간의 노고도 대단했다. 

기쁨의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하스마스는 요압의 예상대로 다윗왕이 승전보에 기쁨을 드러내기 보다 압살롬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던 모양이다. 

당연히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 전령의 입장에서 왕의 질문에 거짓을 보태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은 솔직히 아니었다. 

요압이 충분히 당부했었고, 그간의 다윗의 태도를 비추어 ,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예상할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에티오피아 전령보다도 빨리 왔는지도 모르겠다. 

슬퍼할 것은 숨기고 기뻐할 내용만 전달하기 위해서는 에티오피아 전령보다 최소한 10-20 빨리 와야 했다. 

그는 첩자였으며, 주변의 누군가를 계속 속여야하는 사람이었고, 말은 주변 사람들의 심리 파악에 능하고, 모든 상황을 이용할 있으며, 순발력과 판단력이 좋은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는 가능하면 빨리 달려서 슬픈 소식이 아니라 기쁜 소식만 전하려고 했다. 

 

이렇게 보니, 초반에 순전히 기쁜 소식만을 전하려고 했다는 나의 선택은 다소 순진한 느낌이 든다. 

인간에게는 여러 마음이 존재한다. 

아하스마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면서도 왕의 반응에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며, 여러가지로 판단했을 , 에티오피아 전령보다 가능한한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때로 어떤 성경 본문은 당위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자신의 마음과 삶을 반추하도록 돕는 역햘에 국한되기도 한다. 

오늘 본문이 조금 그런 쪽에 속한다. 

아하스마스처럼 되라, 되지 마라가 아니라, 아하스마스와 같은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이 개인에게 있을 있으며, 자신 또한 순전한 마음과 계산적인 생각이 동시에 든다는 것을 부인 없다. 

순전함 그리고 순발력 

순발력은 잔머리와 연결된다. 

가지 아니라 더욱 다양한 마음의 동기가 속에 있다. 

주님 앞에 마음을 드러낸다. 

말씀을 거울 삼아 삶을 비춰본다.

성경 본문은 내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본문으로부터 나를 본다, 

 

 

——

누구보다도 저를 아시는 하나님, 

때로는 저도 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순전함인지, 자기 잇속 챙기기인지, 아님 습관인지, 어떤 의도가 담긴 건지 

이렇게 복잡한 저의 마음을 오히려 아시는 주님, 

오늘도 저를 기억하시고 저와 대화를 나눠주시고, 주님의 생각과 감정을 나눠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마음과 생각과 뜻으로 공동체를 섬기기 원합니다. 

다가와 주세요. 

내면의 밝은 빛이 되어 주셔서 마음의 순전함의 정도, 의도의 정도에 대해서도 드러나도록 하시어 더욱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를 주께 맡깁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과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다시 삶과 사역을 감당할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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